年華圮望錄

CoC 1:12020. 4. 25. 18:41
내 함께한 시간을 모조리 기억하는 것이 그대요,
그러니 부디 이마저 잊지 말고 들어주오, 
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요……

 

 

 

 

 

 

 

 

 

 

 

 

 

개요

 

 

번성하고 찬란했던 역사도 이제는 옛말입니다. 우리는 망국의 가시밭길로 걸어들어가는 시대 속입니다. 이 나라가 타국과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황폐하고 지난한 생의 끝에서 곡성과 원성이 궐을 향합니다. 스스로를 불운하다 여깁니까? 불행하다 여깁니까? 그러나 당신, 적어도 그보다는 서럽지 않을 텝니다. 이 나라의 그 누구도 그보다 비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KPC. 위대한 군주였던 그 말이에요. 당신이 언제고 왕좌에 올라 우러러보아야 했던 용안은 사흘 뒤면 가장 낮은 땅에 이마를 찧으며 치욕스럽게도 타국의 제왕에게 경배와 충직의 절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참담해야 할 그는 기어코 돌아버린 걸까요. 갖은 정사를 폐하며 사실상 국왕으로서의 책임을 놓기 시작한 와중 KPC는 정말로, 광인처럼, 웃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미쳤다며 수군거리는 궁인들의 말과 마침내 그를 멸시하기 시작한 왕가의 사람들도 뒷전으로, 그는 전에 없이 행복하고 해사한 얼굴로, 곁에 있는 탐사자에게 자신, 이토록 환희했던 나날이 없노라고……

어느 날은 함께 후원을 거닙니다. 이제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마구잡이로 우거진 나무와 삐걱, 삐걱 소리 나는 낡은 다리 위를 걷다 멈추며, KPC가 당신을 돌아봅니다. 더없이 화창하여 무참한 이 날, 지금조차 웃는 낯입니다.

"나를 죽여다오."   

 

 

 

 

 

 

 

 

 

크툴루의 부름 7판 룰 기준

1:1 타이만 시나리오

인원 : PC 1인+KPC 1인

배경 : 중~근세의 동양, 가상 국가

플레이 타임 : 3~5시간

플레이 난이도 : 낮음

키퍼링 난이도 : 중간
(RP를 요하는 NPC들이 다소 있습니다.)

권장 기능 : 관찰, ★대인기능★, 자료조사

준 권장 기능 : 듣기, 심리학

 

 

 

 

 

 

 

※ 여전히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키퍼링 및 플레이 예정인 분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양해를 구합니다.

※ 본 시나리오의 노룰북 키퍼링 및 키퍼링 커미션을 금지합니다. 본 시나리오에 연관되어 금전 거래가 오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세션카드에 한해 커미션 및 금전 거래를 허용합니다. 

※ 키퍼링 해주실 분을 따로 두고, KPC 역할을 하는 PC를 포함한 PC 2인으로의 개변이 가능합니다. 단, KPC 역할의 PC를 플레이하시는 플레이어 분은 키퍼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키퍼링을 해주실 분은 진상을 읽어보시고, KPC 역할의 플레이어가 알아야 하는 정보를 골라내어 주세요. 2인 개변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KPC와 PC의 백스토리에 기반한 자유로운 개변을 권장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개변하여 플레이해주세요. 이에 대한 문의는 송구하오나 답변 드리지 않습니다.

※ 본 시나리오 내에서 KPC와 PC는 각각 패전국의 왕과 그 왕의 곁을 오래 지켜온 호위무관으로 상정하며, 개변을 통하여 PC의 직업 및 지위를 바꿀 수 있습니다(KPC는 왕으로 고정됩니다.). 둘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는 것 이외의 관계성을 크게 타지 않습니다. 기존 탐사자라면 AU 개념으로 가볍게 즐겨주세요.

※ PC의 성향은 그다지 타지 않으나, KPC는 다수를 지키고자 하는 선 성향이거나,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 혹은 자기 것을 지키려는 성격이라면 잘 맞을 듯합니다.

※ PC가 KPC, NPC들과의 RP에 적극적이면 즐거울 것 같습니다.

※ KPC와의 RP 구간이 많지 않습니다! 

※ 본 시나리오는 배포 계정의 700팔로우 기념으로 트위터 투표를 통해 만들어진 개요로 구상되었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 관점에 따라 완벽한 해피 엔딩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 테스트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않은 대신, 시나리오 하단에 플레이 타임 수집 폼이 있습니다. 플레이를 하셨을 시 평균 플레이 타임 명시와 이외 더 나은 방향으로의 수정을 위해 작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본 시나리오는 상해 및 살해 요소를 포함합니다.

※ 본 시나리오에서는 신화생물 및 주문에 대해 독자적으로 창조, 해석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CoC 원작의 코즈믹 호러적 분위기와 상이할 수 있습니다.

※ 본 시나리오에 대한 공계에서의 무례한 언행, 스포일러성 발언이 발견될 시 즉시 비공개 처리됩니다.

※ 플레이 로그, 후기 및 감상, 피드백, 그 외 문의는 @henceihateu의 DM이나 본 포스트 비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아래부터 시나리오의 배경(스포일러)이 있습니다. 키퍼(GM)가 아니라면 열람을 삼가주세요!

 

 

 

 

 

 

 

 

 

진상

 

 

 

 

수천, 수백만 년 전 공룡이 지구를 활보하기도 전에 번영을 누리는 왕국을 세운 이들이 있습니다. 뱀 인간(룰북 p. 291)입니다. 그 시대에 뱀 인간들은 강대한 마법사들이었고, 공포의 악마들을 불러내고 강력한 마법을 쓸 줄 아는 종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빙하기를 맞아 최초의 왕국을 잃은 뱀 인간들은 인간의 선사시대에 두 번째 왕국을 건설했으나, 인간들에 의해 첫 번째 왕국보다도 빠르게 몰락했습니다. 소수의 생존자와 쇠퇴하여 작아진 아종만이 남았습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성의 왕국을 세워도 정복욕 그득한 인류의 야만적인 무력 앞에서 몇 번이고 무너지는 것은요. 이야기의 첫머리로 신화의 고루한 역사를 꺼내는 것은 이들의 생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생존한 뱀 인간들은 동면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에게는 재앙이 될 문제이나, 동면에서 깨어난 뱀 인간은 숨어 사는 동족들보다 더 이지적이며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지요. 마침 그들 중 하나가 깨어나고 보니, 이 시대였습니다. 인간들의 다른 왕국이 세워지고 전란이 어지러운 시대. 그 나라들 중 하나가 KPC가 다스리는 나라, 탐사자가 있는 나라였습니다. 기나긴 전쟁에서 마침내 패전하고 있는, 그리하여 마지막 제왕이 될지도 모를 KPC의 왕국.

그토록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며 사악하고 강력한 지성과 힘을 가졌던 그들입니다. 백 년, 이백 년, 천 년을 넘은 잠에서 깨어났다 해도 인간을 향한 악의가 어떻게 한순간에 사그라들겠습니까. 그는 그의 동족의 왕국이 수 번 몰락하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저 하등한 인간, 제왕 KPC와 자신들 국가의 권위가 당위라 믿는 탐사자도 그처럼 절망을 느낄까요. 뱀 인간은 골몰합니다, 저 패배하는 이를 어떤 식으로 더욱 절망하게 할 수 있을지, 동족의 원한을 갚을 수 있을지, 악의는 동질을 느끼는 한 국가의 인간들의 왕을 향합니다. 자신들을 망하게 하였듯이 인간들의 역사에도 타종에게 처절하게 몰락한 치욕을 새겨주겠노라고요. 외의 다른 인간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의 안중에 없고 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을 KPC가 가져갔으니 이는 차라리 KPC를 향한 유희에 가까운 보복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희망이 있어야 절망이 있는 법입니다. 지능이 뛰어난 그, 당연히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함락당한 나라, 열흘 뒤면 KPC는 가장 낮은 땅에 이마를 찧으며 타국의 제왕에게 경배와 충직의 절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KPC의 성정에 그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수도, 혹은 백성의 안위에 대한 불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 앞에 뱀 인간이 나타납니다. 그는 KPC에게 자신의 마법으로 전쟁에서 패한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조건은, 'KPC 자신이 자신의 존재 자체에게 살해당하는 것'. 존재란 기억으로써 정의되는 것이므로, KPC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계약에 대해 설명하지 아니하고 세 번 죽임을 당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면, 마법의 조건으로서 죽임당하는 것이므로 KPC는 죽더라도 시간이 어그러지며 다시 살아난 때로 돌아갑니다.

그의 성정에, 혹은 그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목적에,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죽음만큼의 딱 세 번의 고통. 희망의 전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뱀 인간의 제안에 KPC는 자신을 가장 온전히 기억하는, 자신을 죽여줄 이를 골랐습니다. 고르고 고른 이가 각각 자신을 가장 오래 보아온 주치의(NPC)와 자신을 돌보다시피 했던 내시/상궁(NPC), 그리고 탐사자입니다. 어떤 설득을 하여서든 KPC는 시나리오의 NPC들에게 한 번씩 살해당하였고 이제 사흘이 남았습니다. KPC에게는 탐사자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죽어야 한다는 과제만이 남았습니다. 한 고비만 넘기면 이 나라의 모든 패배와 절망이 씻은 듯 사라질 것입니다.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맹점이 있지요. 뱀 인간은 세 번째의 죽음 이후에 패배한 전쟁을 없던 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은 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KPC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하지 못합니다. 그는 시간을 일그러뜨리는 마법은 부릴 수 있지만 완전히 대가로 바친 생명조차 온전한 새 세계를 구축할 신과 같은 힘은 가지지 못했거든요. 애초에 세 번이라는 제약을 건 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라의 영광은 보장되어 있으나 탐사자가 KPC를 죽이면 그 죽음으로 마법의 대가였던 KPC의 명은 완전히 끊어지고 그 영혼은 시간의 틈새에 영원히 갇혀 떠돌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마법은 대가를 필요로 하므로, 인과율과 운명이 어그러져 그 조건이자 제물이었던 KPC가 죽는 순간 KPC를 마지막으로 죽인 존재이자 KPC의 기억을 나누고 있는 자, KPC와 가장 가까이 있던 탐사자가 KPC의 존재를 대체하게 됩니다. 즉, 아무 일도 없던 태평성대의 제왕은 처음부터 탐사자였고 KPC는 없었던 것으로 전제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뱀 인간이 자신들의 한계로써 탐사자에게 준비한 절망은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내리는 추락의 형태와 닮았습니다. 아득한 낭떠러지와 낙하하는 뒷모습 그리고,

연화비망록, 

이것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年華을 무너지며圮 바라는望 어떤 제왕과 그 곁의 이의 기록錄입니다.

 

 

 

 

 

 

 

 

 

 

 

시나리오 본문

(*키퍼용 정보는 앞에 *을 붙였습니다.
KPC의 모든 대사는 KPC의 성격에 맞게 변용해주세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탐사자의 지위는 왕족이 아니며 제왕 KPC의 곁을 오래 지켜온 호위무관으로 상정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상 국가이니만큼 고증에는 철저하지 못하나) 시나리오 내에서 탐사자가 불리는 호칭은 무관이 불릴 만한 것으로 고정되나… 캐릭터성과 관계에 따른 적극적인 개변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예로 호위무관→같은 왕족이나 왕이 되지 못한 대군, 옹주/왕의 부군 혹은 처인 중전/사이가 막역한 문관/KPC의 전속 궁인 등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는 전제만 충족되면 어떤 관계든 환영합니다. 시나리오 내 KPC에게 요청받아 KPC를 이미 죽인 전례가 있는 NPC 어의 손태정孫泰貞와 KPC의 대부 혹은 보모 격인 NPC 전속 내시/상궁 김정임金程臨(둘 모두 성별 자유 설정)와 겹치지 않는 선이라면 번거로움이 덜어질 듯합니다.

 해당 지위로 개변하였을 경우에 시나리오 내 NPC가 탐사자를 대할 때에는 각각 마마+극존대/마마+극존대/나으리 혹은 지위+존대/자네, 지위 혹은 이름+하대하는 말투로 바꿔주시면 되겠네요.

 본 시나리오의 배경이 되는 국가는 여성 역시 보위에 올라 왕이 되거나 문무관 등 관직을 얻을 수 있으며, 따라서 '나리, 나으리'라는 호칭은 남성 캐릭터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여성 역시 고위 상궁이나 왕가의 자손, 나인(궁녀)들만 아니라면 대부분 쓰일 수 있습니다. (여성 배제하는 유교 문화 걷어차요) 

 궐 안의 지위와 관청의 명칭 등 몇몇 부분은 조선 전·후기의 그것에서 따온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역사에 있었던 조선이 당한 침략과 식민지화를 낭만화하기 위함은 결코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더하여, 시작 전 플레이어에게 아래 표를 핸드아웃으로 전해주시면 플레이가 수월할 듯 싶습니다. (저는 못 외웠거든요…)

 

명칭 시간
자子  오후 11:30~오전 1:30
축丑  오전 1:30~오전 3:30
인寅  오전 3:30~오전 5:30
묘卯  오전 5:30~오전 7:30
진辰  오전 7:30~오전 9:30
사巳  오전 9:30~오전 11:30
오午  오전 11:30~오후 1:30
미未  오후 1:30~오후 3:30
신申  오후 3:30~오후 5:30
유酉  오후 5:30~오후 7:30
술戌  오후 7:30~오후 9:30
해亥  오후 9:30~오후 11:30

 

 

 

 

 

 

 一,

 

 

번성하고 찬란했던 역사도 이제는 옛말입니다. 우리는 망국의 가시밭길로 걸어들어가는 시대 속입니다. 이 나라가 타국과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황폐하고 지난한 생의 끝에서 곡성과 원성이 궐을 향합니다. 스스로를 불운하다 여깁니까? 불행하다 여깁니까? 그러나 당신, 적어도 그보다는 서럽지 않을 텝니다. 이 나라의 그 누구도 그보다 비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KPC. 위대한 군주였던 그 말이에요. 당신이 언제고 왕좌에 올라 우러러보아야 했던 용안은 사흘 뒤면 가장 낮은 땅에 이마를 찧으며 치욕스럽게도 타국의 제왕에게 경배와 충직의 절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참담해야 할 그는 기어코 돌아버린 걸까요. 갖은 정사를 폐하며 사실상 이제 일국의 국왕으로서의 책임을 놓는 와중 KPC는……

 

"나으리, 후원에 계신 폐하께서 찾으시나이다." 고개를 듭니다. 바깥에서 당신을 부르는 궁인의 목소리입니다. 어찌하여 친히 부르신다니 채비를 하고 나가 뵈어야지요. 이제 곧 당신의 군주를 부르는 칭호는 폐하가 아닌 전하로 끌어내려질 것입니다, 여즉 폐하라 부르는 궁인의 말에 새삼 그런 감상을 갖는 것도 잠시.

호위청을 나섭니다. 

관찰 성공 시▶ 실상 작금에 이르러서는 궐 안에서 제 기능을 하는 데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수라를 준비하는 나인들이나 좀 바쁠까요. 근무를 서는 금군도 거의 없고, 궐 담장 안쪽에서 빨래를 하거나 수다를 떨던 궁녀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뿐입니까, 이대로는 아니 된다며 다시 한 번의 전쟁을 주장하면서 상투를 죄인처럼 풀어헤치고 대전을 향해 읍소하는 문관들이 보입니다. 서느런 바람이 소매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관찰 실패 시▶ 실상 작금에 이르러서는 궐 안에서 제 기능을 하는 데가 없습니다. 매일같이 수라를 준비하는 나인들이나 좀 바쁠까요. 유난하게 궐 안은 조용합니다. 서느런 바람이 소매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당위입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전쟁통에 백성 중 징병된 장정들이 절반은 죽어나가고 전국에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여력도 없고 침범당한 땅은 매일같이 불탔습니다. 도성 가장 높고 지엄한 군주를 지키는 당신이 경계를 놓지 않아야 할 것은 당연하였으나, 그조차 군사들이 사기 높여 싸우고 있을 적의 이야기이죠. 속국이 될 나라의 왕을 굳이 암살할 이도 없으니 지켰던 시간도 지켜야 할 의무도 한단지몽으로 사그라듭니다. 당신이 KPC의 곁이 아닌 호위청에 머무르고 있던 까닭도 그러했습니다.

이 와중에 KPC가 당신을 불러낸 연유를 생각해봅니다. 그러고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죠? 아, KPC가 어쩐지, 이제와서 기어코 돌아버린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을 하고 있었죠.

듣기 성공 시▶ 스친 모퉁이, 담장 뒤에서 어린 나인들의 담화를 듣습니다.

"주상께서 오늘도 수라를 기쁘게 자셨다 하더라. 외려 전쟁 전보다 태도가 너그러워지셨다니."
"글쎄, 작금 들어 웃음이 끊이질 않으시니 기어이 광증에 걸리신 게 아닌가 싶어. 변방의 군사들이 투항했다한 것이 열흘 전에 나라가 기어이 망한다 들은 것이 바로 여드레 전인데. 처음 하루는 시름에 가쁘시더니."
"우리 같은 것들이 어찌 주상의 속을 알겠어… 어쩌면 속국의 왕이나 되시어 제왕의 일은 도로 물리고 비위나 맞추며 호위호식하는 것이 그리울 수도 있지 않겠니?"
"얘! 쉿! 누가 들으면 경을 치겠어!"

듣기 실패 시▶ 스친 모퉁이, 담장 뒤에서 어린 나인들의 담화를 듣습니다.

"주상께서 오늘도 수라를 기쁘게 자셨다 하더라. 외려 전쟁 전보다 태도가 너그러워지셨다니."
"글쎄, 작금 들어 웃음이 끊이질 않으시니 기어이 광증에 걸리신 게 아닌가 싶어. ▒▒▒ 군사들이 ▒▒했다 열흘 전에 나라가 기어이 망한다 들은 것이 바로 ▒▒▒ 전인데. 처음 하루는 ▒▒▒ ▒▒▒▒▒."
"우리 같은 것들이 어찌 주상의 속을 알겠어… 어쩌면 속국의 왕이나 되시어 ▒▒의 일은 도로 물리고 ▒위나 ▒추며 ▒▒▒▒하는 것이 ▒▒▒ 수도 있지 않겠니?"
"얘! 쉿! 누가 들으면 경을 치겠어!"

 *10일 전 군사들이 투항하고 8일 전 KPC의 국가가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공식적으로 속국이 되겠다는 투항식을 올리기까지 8일이 남았고, 하루 동안 고뇌하던 KPC에게 7일을 남기고 뱀 인간이 찾아왔습니다. '살 방법이 생겼다'라고 KPC가 생각하게 된 것은 그 이후부터입니다. 물론 KPC의 성정에 따라 크게 변한 것이 없어보인다, 라고 변형해주셔도 무방합니다!

 

한 시절 가장 높았던 주상에 대하여 이토록 험흉한 말들이 도는 것도 사람들은 숨기지 아니합니다. 진정 망조입니다.

걸음을 옮겨 후원으로 향합니다. 아름다운 못을 파고 그 가운데 섬을 만들었지요. 한때 영롱한 비늘을 자랑하는 잉어들이 연꽃 그득히 핀 못을 노닐었습니다. 그러나 철이 바뀜에 백련은 다 지고 물빛은 탁하여 물고기 지느러미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만 화창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혹은 궐 안의 모두가, KPC가 돌아버렸다고 생각하는 이유.

 

"왔나? 탐사자." 

 

당신은 그가 티끌만치의 시름도 없이 환하게 웃는 낯으로 당신을 맞는 것을 봅니다.

 *짧게 자유로운 RP가 가능합니다. 근황을 물으면 KPC는 처음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다소 얼버무릴 수도 있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으나 자신이 두 번에 걸쳐 죽었다는 이야기와 뱀 인간과의 계약에 대한 말은 하지 않습니다(계약의 원칙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왕으로서의 책임을 놓고 있다, 대신들이 일제히 사임하며 투항하여 종속되는 것만은 아니 된다 대전을 향하여 탄원하는 것에 어떤 답을 내어줘야 할지 궁리 중이다, 외교권을 넘겨주는 서류에 날인하기 위한 옥새를 가져오라기에 순순히 그러하였다, 등의 이야기를 웃는 낯으로 말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함께 후원을 거닙니다. 이제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마구잡이로 우거진 나무와 삐걱, 삐걱 소리나는 낡은 다리 위를 걷다 멈추며, 어느 순간 말을 끊어낸 KPC가 당신을 돌아봅니다. 화창하여 무참한 이 날, 그는 지금조차 웃는 낯입니다.

"탐사자." 간절함 깃든 옥음.

 

"나를 죽여다오."

 *역시 자유로운 RP. 다시 언급하지만 KPC는 계약의 조건에 의해 계약 자체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도 답답한 RP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탐사자가 KPC에 대해 심리학 성공 시 그가 간곡하고도 지금 이 순간 더없이 기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KPC는 탐사자의 심리학 판정에 대인기능으로 대항 가능합니다.

 혹여나 탐사자가 왜 이래? 정신 차리셈 님 왜 이럼? 스탠스를 취하지 않고 진짜로 여기서 별 말 없이 KPC를 죽이려 한다면(…) 답이 없습니다…… 서둘러 다음으로 진행하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란 말입니까? 왕의 의무를 저버리더니 이제 목숨마저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까? 제왕이었습니다, 그대 어찌 되었건 한 시절 한 국가를 짊었던 군주였단 말입니다. 그러면 당신 발 아래 당신 뒷모습만 보고 있는 문무백관은요? 백성들은요? 그리고 나는?

화창한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의문스러움에 충분한 대답을 주지 않고서 KPC는 그저 사흘, 사흘의 시간을 주겠노라 말합니다. 그가 적국에 나라를 바치기까지의 시간입니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겠어. …다행이 아닌가, 흉년이 들지는 않을 테니." 혼잣말 같은 말마디를 남기고 탐사자에게 물러가라 명한 그는 허허로이 먼저 뒤돌아 처소로 향합니다.

나를 죽여다오. 훤히 웃으며 말하던 그와 여전히 흉작을 걱정하는 군왕 같은 그가 같은 사람인지조차,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二,

 

 

일거리가 없으니 후원에서의 한나절이 지나도 밤까지는 한참입니다. 호위청까지 다시 돌아가는 걸음은 느적느적합니다. 천천히 길을 돌아보면 학사들은 대제학이며 말단 학사까지 다를 것 없이 대전을 향해 읍소합니다. 이 나라의 명맥을 끊을 수는 없다며. 하나 달리 무슨 방도가 있단 말입니까. 이미 전쟁은 패한 채로 끝났고, 우리의 왕은……

아, 반대편에서 의원 셋이 걸어옵니다. 도성 바깥에서 약재를 구해다오는 말단 의원들입니다. 

관찰 성공 시▶ 그런데 저들… 어쩐지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말다툼일까요. 서로 맞네 아니네 얼굴 찡그리며 서로 따져대는 것이 가관입니다. 너무 몰두한 탓에 당신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관찰 실패 시▶ 뭐에 대해서인지는 몰라도 퍽이나 열심히 이야기들하고 있군요. 너무 몰두한 탓에 당신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듣기 성공 시▶ 그들의 언성이 슬슬 높아집니다.

"아니 진짜 봤다니까? 시방 자네 나를 못 믿는 겐가?"
"글쎄 주상께서는 정정하시대도? 아니 정정한 게 아니지, 아주 미쳤다니까? 여하간에 미쳐서 허실허실 웃고 다니시지마는 제정신이 아니래도 살아계시는 것은 맞다니까!"
"허, 그러면 내가 닷새 전에 본 건 대체 무언가? 태정 나리께서 무엇하러 극약을 준비했단 말이야?"
"무어긴, 자네가 대는 근거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 스무 개쯤은 될 걸세. 자네 이제 망국이 되었노라 어의 나리고 폐하고 전부 씹어뱉기로 한 게 아닌가?"

듣기 실패 시▶ 그들의 언성이 슬슬 높아집니다.

"아니 진짜 봤다니까? 시방 자네 나를 못 믿는 겐가?"
"글쎄 주상께서는 정정하시대도? 아니 정정한 게 아니지, 아주 미쳤다니까? 여하간에 미쳐서 허실허실 웃고 다니시지마는 제정신이 아니래도 살아계시는 것은 맞다니까!"
"허, 그러면 내가 본 건 대체 무언가? 태정 나리께서 대체 왜 그런단 말이야?"
"무어긴, 자네가 대는 근거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 스무 개쯤은 될 걸세! 자네 이제 망국이 되었노라 어의 나리고 폐하고 전부 씹어뱉기로 한 게 아닌가?"

 

저들이 말하는 태정 나리는 오랜 시간 동안 제왕의 상태를 극진히 살펴온 왕의 주치의인 손태정孫泰貞 어의원을 이르는 겝니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열띤 말다툼 중에 그제야 의원 하나가 당신을 알아봅니다.

방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걸까요? KPC와 손태정 어의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의원들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질문 하나마다 대인기능 판정과 함께 합니다. 탐사자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대인기능 판정에 실패하면 의원들은 급격하게 말을 아끼고 정보의 극히 일부만을 전달해주며, 계속 주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대인기능 실패 시 대강 두 번째 문장부터는 끊어주시면 되겠습니다. 대화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상이 미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아무리 전쟁에 패하였다지만 무례하기 짝이 없다.
- 송구하여 몸 둘 바 없다. 그저 이레부터 폐하께서 기어이 광증에 걸리시었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소인도 모르게 입을 함부로 놀렸다. 면목 없다.

'진짜 봤다'는 것은 무얼 봤다는 것인가.
- 궁이 근래에 알다시피 어수선하여 밤중이 졸렵지 아니한 중에 본 것이니 그리 신경쓸 만한 것이 못 되오나… 닷새 전 주상께서 내의원각에 들르시었다. 때가 인시寅時(오전 3:30~5:30)였으니 급히 옥체가 불편하여 찾아오신 것인가 하였는데……

손태정 어의 나리에 대한 이야기는 무슨 말인가.
- 재차 말하나 소인 침침한 눈으로 엿본 것이라 올리는 말씀 감히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러니 듣고 그저 흘려넘기시라. 내의원각에 들르신 폐하께서는 태정 나리와 바깥에서 이야기를 하다 내의원 안쪽으로 들어가시었다. 그러고 오래 나오지 아니하셨으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찰을 받고 계시다 생각하였다. 한데… 안에서 어렴풋이 투구꽃 뿌리를 달이는 냄새가 났다.

 *투구꽃의 뿌리는 맹독성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탐사자가 앞선 듣기 판정에서 실패하여 투구꽃의 용도를 유추하지 못한다면 옆의 다른 의원이 극약을 만드는 재료입니다, 나리. 맹독이지요. 말해줍시다. 지능/의료 판정을 통해 탐사자에게 정보를 전달해주어도 좋습니다.

한데 폐하는 멀쩡히 살아계시지 않은가? 나만 해도 방금 뵙고 오는 길이다.
- 그것이……  (한참 말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마는, 그저 느낌이 좋지 아니하였다. 폐하께서 그 뒤로 나오는 것을 못 봤거니와…… (*대인기능 한 번 더 판정하여 어려운 성공 시에만 추가 정보 제공) ……아침에 태정 나리를 뵈러 갔을 적에 웬일로 처소가 아니라 내의원각의 방에서 늦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그런데 그 바닥에 선혈을 토한 흔적이 남아 무척 당혹하였다.

어의 나리와 그것에 대해서 대화는 해봤나?
-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흘린 피가 누구의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씀으로 일관했다. 핏자국을 보고 본인도 놀란 것을 보면 진심인 듯 싶었으나… 정황이 그렇지 아니하여 혼란스럽다. 

 

지능 성공 시▶ 여즉 정정한 KPC, 광증에 걸린 KPC, 패망한 왕국의 제왕 KPC. 나라 바깥에서는 전쟁이 끝났고, KPC를 해할 이는 없습니다. 지금 그가 죽는다 해도 이 나라가 속국이 될 것임은 변할 리 없으니까요. 그는 이제 한때 왕관을 썼던 다만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게다가 어의가 아닌 주상이 직접 의원각을 찾아갔음은 또 무슨 연유에서일까요. 자결이라도 시도한 것이었을까요? 어의가 그를 도운 것일까요? KPC는 대답치 않을 겁니다, 어의도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였지요.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능 실패 시▶ 패망한 왕국의 제왕입니다. 나라 바깥에서는 전쟁이 끝났으니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KPC를 해하려 드는 이가 없을지 몰라도, 어쩌면 궁 내부의 사람이 그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할 수는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왜? 지금 그가 죽는다 해도 이 나라가 속국이 될 것임은 변할 리 없습니다. 게다가 왜 어의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상 자신이 찾아간 것일까요?

 *죽음과 더불어 시간이 어그러지고 KPC는 되살아나지만, 이를 도운 손태정은 그것을 무의식에 기억하고 있어 꿈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광경을 엿본 의원이 기억을 그대로 가진 것은 뱀 인간의 마법이 KPC의 좁은 반경에만 특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의원들은 대화를 얼추 마치고서 고개 조아려 인사를 하고서는 다시 갑론을박하며 저쪽으로 멀어집니다. 탐사자도 호위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다시금 향합니다. 날 흐린 와중에도 길에 볕은 불그스름하여 색 번지니 이제야 서녘으로 해가 향하나 싶습니다.

호위청에 다시 돌아가 문지방을 넘으면 역시 말단 겸사복들이 당신을 보고 꾸벅 인사합니다. "나으리, 오셨습니까." 필시 순찰을 돌러 나가는 것일 겝니다.

지능 성공 시▶ 그러고보니 닷새 전의 당직을 섰던 이도 함께군요. 나라에 병졸이란 병졸은 전부 전쟁에 나가 반절이 목숨을 잃었으니, 겸사복이 순시병 역할을 대신하는 중입니다. 보통 해가 지는, 신시申時의 말미에서 유시酉時로 넘어가는(오후 5:30~6:00)즈음의 말 순찰하는 병사들은 이때부터 다음날 묘시卯時(오전 5:30~7:30)까지 궁 곳곳을 돌았으니 분명 내의원각도 그 시간 중 형식적으로나마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그날 인시에 내의원각에 있었더라면 전말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지능 실패 시▶ 그러고보니 닷새 전의 당직을 섰던 이도 함께군요. 나라에 병졸이란 병졸은 전부 전쟁에 나가 반절이 목숨을 잃었으니, 겸사복이 순시병 역할을 대신하는 중입니다. 보통 해가 지는, 신시申時의 말미에서 유시酉時로 넘어가는(오후 5:30~6:00)즈음의 말 순찰하는 병사들은 이때부터 다음날 묘시卯時(오전 5:30~7:30)까지 궁 곳곳을 돌아 살핍니다.

 *겸사복에게 탐사자가 대화를 시도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세요! 의원들을 마주했을 때처럼 질문마다 일일이 판정을 할 필요는 없으나, 앞이 (*)으로 표시된 문장부터는 대인기능 판정이 성공했을 시 얻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닷새 전에도 당신이(자네가) 순찰을 하지 않았나?
- 그렇다. 원래 오늘 당직을 맡을 이가 닷새 전에 다리를 다치게 되어 내의원에서 휴식을 권장하여 부득이 소인이 오늘까지 대신하게 되었다.

오늘 원래 당직을 맡을 이는 내의원각에 있나?
- 그렇다. 내가 부축하여 데려갔을 때에 어의께서는 자리를 비운 도중이었고, 지금 관청에 남아있던 의원들이 치료를 해주고 있을 것이다.

혹시 그날의 순찰에서 특이한 점은 없었나?
- 어떤 특이한 점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리께서도 아시다시피 순찰은 이제 거의 형식상의 일이다. (*) 아, 그런데…… 그날 우연히 용안을 뵙기는 하였다.

KPC를 뵈었다고?
- (*앞서 성공했을 시) 그렇다. 걸음하시는 것을 보아 침전으로 돌아가시는 길인 듯했다. (*) 그때가 아마… 인시쯤이었을 테다. 인시를 알리는 종을 친 지 몇 각 지나지도 않은 때였다.

주상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 순찰 중에 폐하를 뵙는다 절을 드렸더니 웃는 낯으로 화답하셨다. 궐내에 도는 소문처럼… 퍽이나 환한 낯이어 당황했던 것도 같다. (*) 그 밤이 그믐이었는데다 그 시진이 깜깜하여 주상께서 곤룡포를 입으셨는지는 모르겠사온데, 그러고보니 스쳐지나가실 때에 비린 철 냄새가 났다. 흐릿하긴 했으나 이리 뵈어도 병졸인 바로 가로되 그것은 피냄새였으며 착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잖아도 좋지 않은 시국인데 불미스러운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이것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달라.

 *KPC는 내의원에서 어의 손태정에 의해 첫 번째로 죽었다 되살아났습니다. 시간이 어그러지는 것뿐이지 실상 흔적까지 전부 지워지는 마법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야 멀쩡하지만, 극약을 마시고 토혈한 흔적이 내의원에도 의복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로 순찰을 도는 겸사복과 마주쳤습니다.

 

"순시 때가 되었으니 얼른 가보겠습니다, 나으리." 얼마쯤의 대화를 이어가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고서 퍼뜩 고개를 든 겸사복이 당신과 대화를 하던 이를 툭툭 칩니다. 그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일행들과 함께 당신 앞을 지나쳐갑니다.

서산은 그림자에 지며 점차 깜깜합니다. 닷새 전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三,

 

 

찾아온 밤은 달도 구름에 가리어 적막합니다. 밤바람은 계절을 막론하고 서늘하여 사람의 살갗을 저며내지요. 사람들이 밤에 잠드는 이유는 단지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목숨이 지고 차례차례 나라의 산성이 함락되고 한 달여만에 도성에 적군이 육박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당신의 주군이 무력에 무릎꿇기까지 이 밤이 지나면 단 이틀만 남게 됩니다.

"나으리. 늦은 시각에 지시를 받아 전해드리옵니다." 잠 못 들어 등을 켠 호위청에 어린 내관이 찾아옵니다. 조정의 중요 문서를 폐기하라는 명입니다. 특히 불리하건 이득이건 주상에 대하여 적힌 것을 모두 파기하라고. 지시를 내린 이는 KPC가 아니라 제왕을 오래도록 살펴왔던 내시/상궁 김정임金程臨입니다. 

지능 성공 시▶ 이런 일은 호위청의 당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하달할 이를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지만 이 밤중에 구태여 서관에서 멀리 떨어진 처소로 찾은 것을 보면 실수는 아니지 싶습니다. 게다가 KPC의 대부/보모 격으로 살아온 정임의 지시가 아닙니까. 다만 속국이 되고 나면 기록이란 자연히 폐기되고 묻어질 것을 이 시점에 급하게 당신을 불러 처리하려는 연유는 물어야 하겠습니다.

지능 실패 시▶ 이런 일은 호위청의 당신이 할 일이 아닙니다만, KPC의 대부/보모 격으로 살아온 정임의 지시입니다. 이 시점에 급하게 당신을 불러 처리하려는 연유가 무어든 주상을 위함이겠지요.

 

어찌 되었든 당신보다 높은 직위의 이에게 하달받은 명입니다. 망국이라 해도 궐에는 왕이 있고 군이 있고 환관과 상궁들이 남아있습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존의 것들, 익숙한 법칙이 언제 깨어질지는 지나치게 명료하나, 당신은 서관으로 향합니다.

 *왕의 전속 내시/상궁보다 높은 직위(예: 왕실의 방계 등)로 개변하였을 시 이 부분은 어린 내관/궁녀가 처소로 찾아와 NPC 김정임이 간청하였다는 것으로 맥락을 바꾸어주세요. 못 이겨 호기심에 일단은 가보든, '아랫것이 함부로 오라 가라 한다'는 분노로 찾아오게 만들든 만날 수 있도록 힘내주세요!

 

목적지에 도달하면 내시/상궁 정임이 이마를 짚고 다소 어질러진 서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인사를 하거나 기척을 내면 탐사자를 돌아봅니다.

심리학 성공 시▶ 탐사자의 낯을 보고서 일순간 시름이 더욱 깊어지는 얼굴의 그늘을 봅니다. "자네 왔는가." 그가 힘없이 말합니다.

심리학 실패 시▶ 어째 심기이든지 신변이든지 불편한 데가 있는 모양입니다. "자네 왔는가." 그가 힘없이 말합니다.

오밤중에 관할도 아닌 곳으로 굳이 당신에게 명 내리는 까닭이 달리 있을까요? 일단은 어떤 것을 어떻게 파기하여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깜깜한 이 서가부터요. 듬성해졌으나 여전히 온통 주상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이것은 사관의 시선에서 바라본 KPC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함께 지난 시절.

 *탐사자가 NPC 김정임와 얼마의 대화를 하든 별 말 없이 서고를 정리하든 얼마간의 RP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5일 전 손태정에 이어 두 번째로 바로 어제 KPC를 죽였던 김정임 역시 꿈에서의 기억이 남아 초반에는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탐사자가 주상에 대한 모든 문서를 파기해야 하느냐,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서책도 폐기하는 종류가 맞냐 등 정임에게 그가 내린 명에 대하여 물으면 김정임은 대답 이전에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김정임은 탐사자가 온 때부터 책을 정리하는 척을 하며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김정임은 서고에서 KPC를 죽였습니다. 꿈인 줄 알았건만 실제로 남은 핏자국을 발견하고 당황하여 그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 때에 (타이밍을 잘 보시고!) 다음으로 진행해주세요.

 

툭. 서책 하나가 떨어집니다. 반사적으로 시선이 돌아갑니다. "좀 주워주겠나." 그것을 바라보는 정임의 목소리가 어째 떨리고 있습니다.

지능 성공 시▶ 그러고보니 내시/상궁 정임, 탐사자가 서관으로 온 때부터 기록을 정리하고는 있던 듯했으나 계속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금도 봐요, 떨어진 책은 그의 발치에 더 가까운데 결코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저 자리에만 우두커니 서서 당신에게 요청하지 않습니까.

지능 실패 시▶ 떨어진 책이 정임의 발치에 더 가까운데 왜 탐사자더러 주워달라 하는 걸까요?

심리학 성공 시▶ 바닥에 떨어진 서책에서 눈을 옮기면, 시름 그득한 낯을 하고 있는 정임은 가히 두려운 듯도 합니다. KPC의 기록을 파기하려는 데에도, 다른 궁인들을 충분히 부를 수 있었을 터인데 굳이 당신을 여기에 부른 데에도 한 뿌리가 되는 까닭이 있을 텝니다. 그러니 정임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만은 자명합니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심리학 실패 시▶ 바닥에 떨어진 서책에서 눈을 옮기면, 시름 그득한 낯으로 정말 떨고 있는 듯합니다. 당신을 굳이 이 시각에 여기에 부른 것도 여즉 까닭을 모릅니다. 이것만은 확실하지요, 정임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

 *내시/상궁 김정임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질문 하나마다 대인기능 판정과 함께 합니다. 탐사자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대인기능 판정에 실패하면 정임은 정보의 극히 일부만을 전달하거나, 별 것 아니라며 말을 돌리는 등 계속 주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앞이 (*)으로 표시된 문장부터는 대인기능 판정이 성공했을 시, 혹은 실패하였어도 심리학이나 대인기능 강행, 재량껏 적극적인 RP 등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나를 여기에 부른 이유가 뭔가. 
- 그저 무안하다, 믿고 맡길 이가 그대 정도였건만…… (*) 실은 물을 것이 있어 긴히 자네를 불렀다.

본디 이 일을 하는 궁인은 따로 있을 텐데 왜 굳이?
- 주상에 대한 불온한 것들이 언제 닥칠지 모르니, 상황이 시급하여 신임이 두터운 자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싶었다. 지금의 폐하는 명백히 이상하다.

물어볼 것은 무엇인가.
- 최근 주상이 기행을 보이지 않는가. (*) 그것에 대해 탐사자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왜 하필 내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 해괴한 꿈을 꿨다. (*) 나라의 망조도 그러하고 내용이 내용인지라 탐사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징조 같았다. 선뜻 입에 담기에 흉흉한 꿈이어 저어된다. 

연유가 그것이 전부인가? 꿈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그러는가?
- (*) ……내가 이곳에서 폐하를 시해하는 꿈. 끔찍한 흉몽이었다. 폐하께서…… 내게 자신을 죽여달라 간청하시었다. 몇 번이고 거절하고 아니 된다 아뢰었으나 몽중에 결국 감히 그 옥체에 검을 꽂고 말았다. 꿈이니 용서하시라고. 꿈이니 소인을 용서하시라고. 깨어보니 진정 꿈이라 다행이었으나… 다행이라 말하는 것도 천인공노할 짓이어 조심스러웠다. 한데 꿈에서 깨어나기 전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피를 토하며…… "…이젠 탐사자만," ……이라고.

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가? / 또 더 숨기고 있는 것은 없나?
- (*) 분명 꿈이었을 터인데…….

 

머뭇거리던 김정임이 자리를 비키면 의복의 그늘에 가리었던 바닥이 드러납니다. 바닥에는…… 굳어 하루쯤 된 핏자국이 선명합니다. 혈흔은 어찌 여태 정임이 가렸나 싶을 정도로 선연히 붉고 검은, 누가 봐도 치사량만치 흘린 피. (SANC 0/1)

지능 판정, 성패 상관없이▶ "나를 죽여다오." 말하던 KPC를 떠올립니다. 열흘 전 군사들이 투항하고 여드레 전 나라가 함락당했습니다. 적국의 군주가 필히 군신의 맹약을 이행하라 사실상 협박한 날 KPC의 얼굴이 어땠습니까. 한데 이레 전부터 외려 화양연화마냥 웃던 KPC는 또 어땠습니까.

정임이 불안 역력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오늘 폐하를 뵙고 왔다 들었네. 어떻던가? 폐하께 아무 징조도 없던가?"

"주군이기 이전에 내 화창한 한철 보살폈던 사람, 내 사람 한 사람이었네. 나라가 망하든 속국이 되든 설령 군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등을 돌려도 나는 폐하의 편일세."

"내 헛걱정을 하는 것이라 말해주게. 노인네가 그저 역몽에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화창한 한철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의 말은 간절을 넘어 처절한 데가 있습니다. 탐사자 역시 KPC의 한철 혹은 그 이상을 함께 하였지요. 순간순간에 어떤 마음이 뒤섞이고 어떤 눈길이 혼재하고 어떤 언어가 우리의 사이를 정의하였는지는 모르나, 같은 시간 속에 있었다는 것만은 명징합니다.

(*탐사자가 여기에서 무슨 대답을 하든, (사실상 탐사자도 뭘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을 겁니다…)) 내시/상궁 정임은 "우선 알겠네. 자네도 몸조심하게." 하는 당부와 함께 사라집니다. 돌아보면 처소로 향하는 걸음걸음의 무게가 당신에게까지 푹푹 와닿습니다. 차라리 무어라도 묻기 위해 주상의 침전에 들이닥치고픈 의문이야 굴뚝 같지만, 나라가 망하여도 엄연히 법도가 있는 법, 우선은 처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닷새 전에 내의원에 퍼졌던 극약의 냄새, 불과 하루 전 내시/상궁이 꾼 악몽과 실제로 남아있는 혈흔…… 그리고 KPC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 죽여달라는 간청.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뒤안길로 스러져가는 이 나라에 마지막까지, 기어이.

 

 

 

 

 

 

 

 

 四,

 

 

눈을 뜨면 새벽입니다. 그리 일찍이 잠에 든 것도 아니며 몸이 영 개운치 않은 것이 선잠을 잔 모양입니다. 피로는 한데 잠을 청해도 눈이 편히 감기질 않아 결국 일어나 담장 바깥을 나섭니다. 어제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던 KPC의 말대로 창공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오늘도 별일 없이 어수선하겠지요. 대신들은 여전히 읍소하고 궁인들은 수런거리고 누군가는 설워하고 누군가는 미친 듯 웃고…… 그러나 차차 식을 올릴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고작 이틀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이 나라의 이름이 지워지고 적국의 땅덩어리로 전락할 날까지. KPC는 적국의 제왕이자 주군에게 절하며 그의 나라를 바치겠노라 직접 말하게 될 것입니다.

어김없이 정리되지 않은 궐 안을 걷다보면 어느새 궁궐 가장 외곽의 외소주간에 가까워집니다. 말이 소주방이지 전쟁통에 나랏님이라고 어찌 사치스레 육고기를 자시겠습니까. 이곳을 지키며 돼지나 소를 잡는 데 칼 쓰는 일하던 백정은 전쟁 말미에 기어이 궐에서 도망을 치고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 결국 버려둔 헛간처럼 남은 장소일 뿐입니다.

듣기 성공 시▶ 한데 안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무슨 일인가?"
"아, 맙소사,"
"시신 상태를 보아 우선은 타살인 듯 하온데…… 의원들을 불러야 할까요?"
"도대체 말단 학사가 여기서 죽을 연유가 무어지?" 

듣기 실패 시▶ 한데 안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무슨 일인가?"
"아, 맙소사,"
"▒태를 보아 타▒인 듯 하온데…… ▒▒▒을 불러야 할▒요?"
"도대체 말단 학사가 여기서 ▒▒ 연유가 무어지?"

 *당연하게 탐사자가 그냥 지나치면… 쓴 제가 슬픕니다. 그 경우 죽은 학사의 시체에 대한 아래 내용을 넘겨도 무방하긴 하나… 가급적 탐사자가 외소주간 안으로 들어간다 선언하기까지 기다려주세요.

 

문을 열면, 훅 끼치는 묵은 비린내와. 

"자살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다면 궁에 살인귀가 있다는 것인가, 해괴하지… 해괴해, 나라가 진정 흉조인가, 애먼 사람까지 죽어나가고…" 등진 관복 뒤로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떨리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립니다. "제 벗입니다, 나리, 제 벗이란 말입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당신의 기척에 늦게 반응하여 돌아본 병졸들이 탐사자를 보고 급히 허리를 숙입니다. "나으리." 당신은 그들이 수습하고 있는, 문관의 의복을 입은 채 죽은 시체를 봅니다. 구더기가 들끓습니다. (SANC 0/1d3)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이 시기에 궐 안의 사람이 죽어나가다니. 먼저 왔던 병졸들에게 무언가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병사들과는 대인기능 없이도 마음껏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 대화로 말미암아 탐사자가 이후 내의원에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면 됩니다. 아래는 대화 예시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 어쩌다 발견했나. / 아는 것을 고해보라.
- 보시다시피… 저희들 역시 지금에서야 발견했다. 시체가 며칠 되면 들끓는 냄새가 있지 않나. 그것 덕분에 알긴 하였건만… 그 이전에는 냄새가 퍼지지 않아 순시를 도는 이들이 여기까지 살펴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기사 외소주간에서 학사가 죽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이 시국에 자결한 것이라면 차라리 낫겠다마는… 타살이라면 조사할 것이 생겨도 당장 국가 존속의 일과 겹쳐 묻히게 될 것이다. 일단 내의원에 검시를 맡기기는 하겠으나 가능하다면 폐하께 말씀드리지 않으셨으면 한다.

폐하께 말씀드리지 말라는 까닭은?
- 그도 그런 것이 폐하의 상태가 불안정하지 않은가. 나리도 알고 계실 것이리라 생각한다. 궐내의 모두가 그가 진정 설움에 미쳤노라 여기고 있다. 송구하오나 저 또한 그러하다. 소문에 자해를 하신다는 험흉한 말들도 돌고 있어……

자해를 한다니?
- 처음에는 의원들에게서, 그 다음에는 항아들 몇몇으로부터 퍼진 소문이다. 태정 나리께 극약을 받아 스스로 마셨다는 소문도 있다. 그것보다 이상한 것은 궁궐 나인이나 내관들 중 한둘씩이 자꾸 폐하와 관련된 이상한 꿈을 꾼다는 것에 있는데, 꿈은 꿈일 뿐이니 넘기시라.

혹 꿈의 내용을 들었나?
- 폐하께서 밤중에 자주 나가시는 꿈,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악몽이라던가, 깨어나고 나서도 어쩐지 시각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기는 하였다.

내의원에 검시는 언제 맡길 것인가?
- (문관의 친우라 말하는 병졸의 눈치를 살피며) 가능한 빠르게. 아니 된다면 시체가 썩어가고 있으니 수습이라도 빨리 하려 한다. 내의원에 계신 태정 나리께서 보아주셨으면 하는 바도 있건만 아무래도 그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높은 분께서 말씀이야 올리면 또 모르겠지마는 여하간 의원들에게 우선 맡기려 한다.

 *이 죽은 학사는 뱀 인간이 KPC에의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 형상 흡수(룰북 p. 263)할 목적으로 미리 죽여놓은 사람입니다. 이후 죽은 문관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KPC와 조우하는 것을 탐사자가 목격합니다. 궁인들이 꾸는 꿈이나 착각은 KPC의 돌아간 시간에 의한 마법의 잔재 여파입니다. 뱀 인간의 마력도 사실상 13밖에 되지 않아서… 강한 마법이라도 흠이나 실수가 있을 수 있지요. 

 

"나으리, 어떻게 아니 되겠습니까?" 내내 말이 없던 병졸 하나가 눈시울 붉어진 채 입을 뗍니다. 고개 숙이며 간곡히 말합니다. "망국이라 하나 함께 폐하를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문무가 다르다 하나 화양연화 푸른 시절 함께 보낸 친우입니다. 어쩌다 변고를 당하였는지 소인 알고 싶습니다, 어떻게… 태정 나리께, 말씀만이라도, ……"

어떻게 할까요, 탐사자. 굳이 이 이의 간청이 아니라 하더라도 당신은 그에게서 들을 말이 있을 겁니다. 

 *탐사자가 내의원으로 가기로 결정한다면 아래 부분으로, 애초에 외소주간 안을 들어가지 않고 지나쳐 다시 처소로 향한다면 바로 五 부분으로 넘어갑니다. 

 

내의원으로 향합니다, 다시 어제 백중처럼. 낮임에도 흐려 어둑한 날.

내의원은 다른 관청과 같이 헐빈합니다. 지체없이 의원들이 숙식하는 각과 진료 받는 청, 약방을 지나쳐 어의가 머무르는 방으로 향합니다. 아직 어린 의원이 당신을 보고서 어의 태정 나으리를 뵈러 오시었냐 묻고는, 장지문을 엽니다.

안에는 온통 향과 약재 냄새가 배었습니다. 손태정이 당신을 보고 "……왔구먼." 

심리학 성공 시▶ 어쩐지 당신이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씁쓸히 말합니다.

심리학 실패 시▶ 어쩐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앉게나. 물어볼 것이 많을 테지." 손태정은 퍽 체념스러우면서도 호의적인 태도입니다. 그의 말투가 느릿합니다.  

 *어의 손태정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태정은 기본적으로 탐사자에게 정보를 기껍게 내어주나, (*)가 표시된 대답은 대인기능 판정을 하여야 얻을 수 있습니다. 탐사자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대인기능 판정에 실패하면 태정은 정보의 극히 일부만을 전달하거나 계속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며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실패하였어도 심리학이나 대인기능 강행, 재량껏 적극적인 RP 등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엿새 전 새벽에 독약을 만들고 있었다 했다. 연유가 무엇인가?
- 궐이 황량함에도 소문이 퍽 빠르다.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은, '나도 모르겠다'는 말뿐이다. (*) 내시/상궁 정임도 같은 질문을 했다.

폐하가 다녀갔다고 의원이 말했었다. 사실인가?
- 알지 못한다. 정확히는…… (*) 폐하가 다녀왔다 가시는 꿈은 꾸었다.

정임이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은? / 폐하가 다녀왔다 가시는 꿈이라니?
- (*앞선 질문의 경우만 첫 문장을 포함합니다.) 그와 대화를 오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흉조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어쩌겠는가, 나라 꼴이 종극에 이리 되어버린 것을. (*) 우리의 흉조는 꿈이 같았을 뿐인 게지. 폐하가 나의 앞에서 죽여달라 간청하고, 감히 나는 엎드렸다 읍소하였다 결국에 그 원하시는 대로 극약을 달여 바치는 꿈을…….

그렇다면 의원이 말한 실제로 있었던 핏자국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정임도 그러하였댔지. 어쩌면 내가 마시고 죽으려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정임도 몽유병증처럼 자신을 찌르는 식으로 홀린 것이 아닐까 싶고. 내 황망하여 자국을 곧 치웠으나 정임이 그대로 그것을 두었다면 한 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내 귀기를 잘 아는 이는 아니나, 게다가 사람 낫게 하는 팔자로 태어난 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우스우나, 궐에 흉조가 깃드니 삿된 기운이 도처에 낭낭함만은 알겠다.

삿된 기운이라 함은?
- 그저 흘려들으라. (*) 정확히는 여드레 전부터였다. 궐 안에 무언가가 심히 변하였는데 무엇이 변하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마 같은 기운이다. 

KPC가 자해를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 소문만 들어 알지만…, 사실이 맞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이 또한 주상을 향한 험흉한 것들 때문이 아닐지. 직감에 이 기운은 전부 KPC를 향하고 있다.

말단 학사가 죽었다. 알고 있나?
- 그건 무슨 일인가? 궐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니? 말세다. 실지로 기어이 사람이 죽어나간단 말인가? 더 자세히 말해달라.

외소주간에 시신이 버려진 채였다. 병졸들의 말로는 죽은지 며칠이 지났다 하였다. 그들이 검시를 맡기러 올 것이다. 가능하면 어의께서 변고를 당한 까닭이라도 소상히 밝혀달라 하더라.
- 가능하면 그리 하겠다. …한데 학사들이라면 지금도 대전을 향해 투항하지 말자는 상소를 올리느라 궁 내에서 가장 바쁠 터인데, 말단이라 해도 어째서 다른 문관들이 그가 없어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가? 이상하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느릿느릿 말하는 태정의 표정은 내내 침울합니다. 창 너머는 어느덧 붉어 해가 서녘으로 넘어가네요. "자네도 알겠지." 허망한 음성이 내려놓아집니다.

 

"나의 군주이기 이전에 내내 보살폈던 사람, 내 사람 한 사람이었어. 보잘 것 없는 생을 전부 그에게 바치며 깨달았네, 보잘 것 없던 것이 아니라 나의 한철 역시 화양연화였노라고."

"폐하를 부탁하네."

 

나를 죽여다오, 미치광이처럼, 혹은 목단처럼 웃던 KPC가 알까요?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토록……,

탐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손태정의 방에서 나온 후, 탐사자에게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물어주세요! 어디를 향하든 도중에 KPC를 만나는 五 부분으로 넘어갑니다.

 

 

 

 

 

 

 

 

 五,

 

 

온통 흐린 하늘에 깜깜한 저녁이 내려앉고 당신은 ( )로 향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서산으로 지는 노을은 그래도 가리운 구름 너머로 붉고 또 붉습니다. 그때에,

터벅,

어떤 소리가 있습니다, 확신할 수 있는. 곁에 어떤 식으로든 있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누구의 것인지 알 수밖에 없는 발소리가 있습니다. 당신은 ( )로 향하던 걸음을 멈춥니다.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탐사자."

 

아, 해는 지고 붉게 피 흘리는 하늘. 구름 새로 비치는 등진 태양빛이 강렬하여 KPC, 당신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주 잠깐 역광에 눈만 부십니다.

 

"아직 나를 죽일 마음이 들지 않았나?"

 

 *자유로운 RP가 가능합니다. KPC는 다급하고 간절합니다. 이제 곧 하루밖에 남지 않게 될 테니까요. 이제와서 다른 사람을 찾을 수도 없고, 어쩌면 탐사자가 꼭 자신의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계약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으니 또 답답한(…) RP일 겁니다. KPC는 체면도 자존심도 전부 내려놓고 간청합니다.

 탐사자가 KPC의 몸을 살펴보면 다친 흔적은 없습니다. 시간은 KPC의 몸에 한해 완전히 되돌아갔습니다. 손태정과 김정임에게서 들은 정보에 대한 말을 꺼내면 KPC는 침묵합니다. 그들의 꿈에 대해선 그저 꿈이라 치부합니다. 이 판국에 죽는 것이 더 낫겠다며 상황을 깨우쳐줘도 좋습니다. 맘껏 탐사자의 화를 돋워주세요. 문관에 대해서 묻는다면 움찔하였다가, 회피합니다. 뱀 인간이 형상 흡수 주문을 쓰기 위해 학사를 죽인 것이라면 그도 알고 있었거든요. 화를 돋우기 위해서라면 나도 그렇게 만들어달라, 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네요.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행할 수 없는 것들만 당신이 내어놓습니다, 나는 치가 떨리고 의문만 줄곧 잇고 또 잇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밤은 끝내 나리고, 어스름 다 진 땅으로 시선을 떨어뜨린 KPC가 말합니다. 

 

"나를 위한 것이라면 나를 죽일 수 있겠나?"

 

알량한 핑계 혹은 얕은 연유들. 나라는 망해도 절망만 있을 수는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이라도 했던가요. 아니면 시간이 흘러감에 절망마저 무뎌진 것일까요. KPC는 사흘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틀째의 밤이 발치에 들어찼습니다. 그의 시선이 똑똑히 탐사자를 마주합니다. 결심이라도 한 얼굴입니다.

 

"나는 괜찮아. 죽어도 죽는 게 아닐세. 모든 것은 나를 위함이니……"

"감히 의심스럽다면 내 흔적을 밟아 나를 찾아오게나."

"내일 인시에 후원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지능 성공 시▶ 흔적을 밟아 그를 따라가는 것. 흔적이라는 말에 여태 이어지던 모든 말들과 본 모든 것들을 생각합니다. 죽은 학사와 죽여달라 청하는 주군과 연달아 그를 죽이는 꿈을 꾼 어의 손태정, 내시/상궁 김정임, 한철 함께한 당신…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정임이 당신을 고의로 불러내어 보여주었던 핏자국 뿐입니다.

지능 실패 시▶ 흔적. 흔적이라는 말에 무엇이 떠오르다 맙니다. 정임이 보여주었던 서고의 핏자국.

 *강행 가능합니다. 서고로 무조건! 가게 합시다!

 

KPC는 등을 돌려 떠나고, 하늘을 올려보면 흐린 구름 사이로 새까맣게 불탄 듯 재 같은 별무리만이 흩뿌려졌습니다. 언젠가는 아름답다 생각했던 듯도 한데 이상하지요, 끝내 패배한 망국의 하늘이란 이런 식으로밖에 묘사할 수 없는 걸까요.

당신이 갈 곳은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KPC가 갈 길도 하나뿐일까요. 하여 우리 여로는 끝내 어드메로 이어집니까.

탐사자는 서고로 향합니다.

 

 

 

 

 

 

 

 

 六,

 

 

서고에 발걸음했을 때에는 이미 밤이 깊어 궐 안 지리에 눈이 익지 않았다면 헤매기가 십상일 시각입니다. 술시가 된 지 몇 시진 정도 되었을까요. 주상에 대한 무언가를 처분해버리고자 하는 정임이 있던 어제와 달리 등불이 아무 데도 켜져있지 않아 책을 살피기에 난감할 것 같습니다. 처소로 돌아가 초롱이라도 들고 오는 것이 좋을까요.

그때입니다.

 

"나으리?"

 

누군가 사박이는 발자국으로 다가옵니다, 등불에 그의 옷자락이 비치는데, 복장을 보니 학사입니다. "예서 무어하십니까? 밤이 깊었습니다." 의아하게 묻는 목소리, "서가를 살피려면 등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하며 그가 든 초롱불을 건넵니다. 어쩐지 웃음기 담긴 목소리…,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며 등불에 일렁이며 비치는 낯을 봅니다. 

관찰 실패 or 성공, 어려운 성공 시▶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달갑지 않게 그 얼굴을 맴돕니다.

관찰 극단적 성공 이상일 시▶ 저 학사, 오늘 아침에 본 외소주간에서 죽어있던 그 학사가 아닙니까? …아닌가요? (SANC 1/1d3)

 *뱀 인간입니다. KPC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이인 탐사자를 볼 겸 나타났습니다. 이후 KPC에게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경고를 하고 사라집니다. 만약 탐사자가 그의 그림자를 살핀다면, 그림자는 원래의 모습대로 보이므로 (SANC 0/1d3+1).

 

"그럼, 소인은 물러가보겠나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꾸벅 여상히 인사하고 사라지는 뒷모습. 착각처럼 피어오르는 불안을 누르고 그가 건넨 초롱을 듭니다. 어쨌든 이걸로 서고 안의 서책을 살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서고의 바닥, 늘어선 책장, 탁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바닥정신력 성공 시▶ 얼핏 KPC가 칼에 맞아 주저앉고 토혈하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고개를 흔들어 떨쳐냅니다. 장면 속의 KPC는 웃, 고, 있습니까, 웃고, 있습니까? 정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탐사자만. 이제 탐사자만……
  • 정신력 실패 시▶ KPC가 칼에 맞아 주저앉고 토혈하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장면 속의 KPC는 웃, 고, 있습니까, 웃고, 있습니까? 정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탐사자만. 이제 탐사자만…… KPC는 말했습니다. 나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닐세. 정녕 당신이 그를 죽이려 한다해도 그는 죽지 아니하는 것일까요?
  • 먼지 한 번 그득합니다. 궁인들이 더이상 쓸고 닦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그나마 남아있는 발자국은 상소를 올리는 학사들의 것일까요, 어제 이곳에 있던 정임의 것일까요. 어제 김정임이 있던 자리를 살펴보자면 핏자국은 검게, 아주 검게 변색되어 없어지지 않는 흉처럼 남아있습니다.
  • 책장자료조사 성공 시▶ 아마 내시/상궁 정임이 전부 치운 것일 겁니다. 그가 말했듯 주상의 약점이 될 것, 이어 주상에 관련한 것은 모두 폐기하고자 한다 했으니, 남아있는 것은 그나마 고대의 책들 뿐입니다. 그것도 궐에 관하여 기록한 것은 전부 없고, 남은 것을 펼쳐보면 나라에 있던, 지식으로 밝혀낼 수 없는 현상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정도군요. 몇 장은 심지어 뜯겨있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탐사자가 책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자료조사를 한 번 더 굴립니다.
    자료조사 실패 시▶ 거진 지워진 기록 속에 어떤 그림이 있습니다. 뱀과 같은 머리와 비늘, 꼬리에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괴상한, 날카롭고 긴 손발톱을 가진 그림……. (SANC 0/1d2) 이런 생물이 실재하기라도 했던 걸까요?관찰 성공 시▶ 서가를 빠져나오기 전 책장 아래 깔린 파지 귀퉁이를 발견합니다. 꺼내보니 아까 살펴본 고대의 책에서 나온 아주 오래된 종이입니다. 그리고 적힌 것은,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하는 삿되고 사악한 주술. 죽음으로써 시간을 되돌리거나 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거나 하는…… 그러나 반드시 생명이라는 대가가 필요한. *탐사자가 KPC를 죽인다고 해도 KPC가 다시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힌트입니다!
  • 관찰 실패 시▶ 서가를 빠져나오기 전 책장 아래 깔린 파지 귀퉁이를 발견합니다. 꺼내보니 아까 살펴본 고대의 책에서 나온 아주 오래된 종이입니다. 적힌 것은 단 하나, 行不無得행불무득.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지도 치르지도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세 살 배기도 알겠습니다, 이런 건.
  •  *탐사자가 다른 곳을 조사하려하면 그 직전, 관찰을 굴립니다.
  • 자료조사 성공 시▶ 어떤 그림과 함께 드문드문 지워진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은 아이들 잠자리 머리맡에서나 읽힐 건국 설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몇 천 년 전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며 강력한 지성과 힘을 가졌던 삿된 뱀을 닮은 종족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 왕국을 세웠다는. 뱀과 같은 머리와 비늘, 꼬리에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괴상한, 날카롭고 긴 손발톱을 가진 그림……. (SANC 0/1d2) 이 종족이 실재하기라도 했던 걸까요? 
  • 자료조사 실패 시▶ 아마 내시/상궁 정임이 전부 치운 것일 겁니다. 그가 말했듯 주상의 약점이 될 것, 이어 주상에 관련한 것은 모두 폐기하고자 한다 했으니, 남아있는 것은 그나마 고대의 책들 뿐입니다. 그것도 몇 장은 심지어 뜯겨있기까지 합니다.
  • 빼곡히 늘어선 서가입니다. 그러나 꽂힌 서책은 정작 듬성듬성합니다. 아예 몇 칸은 완전히 비어있기도 합니다.
  • 탁상관찰 성공 시▶ 그 사이로 멀쩡한 서간을 발견합니다. KPC의 글씨체입니다.「자네라면 나의 기억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이를 고르라면 누구를 고르겠는가. *KPC가 서고로 가라 말한 것은 본래 이것을 보라는 의도였습니다. KPC는 자신이 두 번 되살아났으니 세 번도 되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 다행과 불행 중 택하라면 다행을 고르는 것이 인간이요, 승과 패 중 고르라면 승에 손을 뻗는 것이 사람일진대 군왕이라 하여도 어찌 내 한 사람 아니겠는가. 몇 번 고통하기만 하면 불행이 행이 되며 패가 승이 된다는 것을, 내 어찌 고르지 아니하겠나.」
  • 관찰 실패 시▶ 그 사이로 멀쩡한 서간을 발견합니다.
  • 이것저것 정리된 서류들이 그득했을 탁상도 먼지만 앉았습니다. 탁상 아래 수납함에 둘둘 말린 두루마리와 파지들. 날짜가 지난 상소와 사관의 기록 중 걸러낸 부분들… 그리고,

서고 바깥으로 나오면 검고 흐린 밤이 물밀듯 들이닥칩니다. 밤보다도 당신 눈앞이 더 깜깜한 듯합니다. 멀리서 들리는 축시가 끝나고 인시가 시작됨을 알리는 종지기의 종소리. 잠 못 이루는 이가 당신과 KPC만이 아니어 다행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기다리고 있겠다 하였습니다, 당신과 이 나라의 마지막 군주가 당신에게. 이제 그에게로 갈 때입니다.

 

 

 

 

 

 

 

 

 七,

 

 

탐사자는 후원으로 향합니다. 까만 새벽 아래에도 우거진 꽃나무와 잘 정리된 정자, 아름다운 못을 파고 그 가운데 섬을 만들었지요. 한때 영롱한 비늘을 자랑하는 잉어들이 연꽃 그득히 핀 못을 노닐었으나 철이 바뀜에 백련 홍련 다 지고 물빛은 탁하여 물고기 지느러미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철이 바뀜 뿐입니까, 국가의 이름이 바뀌기까지 이제 꼭 하루 남았네요. 나를 죽여다오. 아직도 나를 죽여주지 못하겠나. 간절한 음성은 철 바뀌는 바람소리처럼 들립니다, 서러운 필연처럼 들립니다.

끝내 빗줄기가 뚝, 떨어집니다.

그날. 죽여달라 처음 청한 그날 섰던 못 위의 구름다리 위 KPC의 등이 섰습니다. 적요한 새벽 속에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생각했건만 일순간 그가 돌아섭니다. 웃고, 웃고 있습니다. 금이 간 사기처럼 위태로이 웃고 있습니다. 그의 손에 오래도록 쥔 검이 들려 있습니다. 나는 압니다. 저 날 벼린 검이 왕가에 내려오는 것이며, 당신이 산 세월 동안 아꼈던 물건이라는 것을. 하필 나는 오래 압니다. 당신을.

 

"화양연화를 생각하고 있었네. 나의. 이 나라의."

 

정임이 말했습니다. 태정이 말했습니다. 병졸이 말했습니다. 그들 모두가 이 나라의, 어떤 이의, 자신의 화양연화를 겪었다고. 모두에게 우리에게 당신에게 나에게 찬란한 계절이 한때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그 시절 당신과 함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내 바라는 것도 오직 하나네."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어도 하늘은 희한하게 파랗게 밝아오는 것이 여우비인 모양입니다. 허공에 지는 별빛이 재처럼 부서집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뜨겠지요. 이 나라의 연호로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의 태양입니다. 이 나라의 마지막 왕을 두고, 그의 마지막의 마지막 청에 대하여.

 

"탐사자."

 

대답을 내릴 순간입니다. 

 *엔딩 분기. 자유로운 RP를 권장합니다. 이쯤 되어 탐사자가 진상의 계약 내용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KPC는 어필을 좀 해줘도 괜찮습니다… 대신 자신이 죽어도 죽지 않음을 은근히 강조하되, 모든 선택을 탐사자에게 맡깁니다. (어차피 자결하여도 자신이 스스로 죽는 것은 무효이기 때문입니다…) 탐사자가 KPC를 끝내 죽인다면 Ending 1, 탐사자가 KPC를 결국 죽이지 못한다면 Ending 2, 탐사자가 KPC와 함께 죽는다면 Ending 3으로 진행합니다.
 + 200126. 남겨주신 어느 분의 후기를 읽고 Ending 4를 추가하였습니다. 탐사자가 자살을 택하면 Ending 4로 진행합니다. 

 

 

 

 

 

 

 

 

엔딩

 

 

 

 

 

 

1. 탐사자가 KPC를 살해할 경우

 

 

 

나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네. 그 말만 믿고 당신을 죽입니다. 무참하게 당신의 검으로 당신을 살해합니다. 기억을 죽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피 묻히며 생각합니다, 당신의 뜨거운 피 자꾸 튀기며 생각합니다. 쿨럭이는 기침과 함께 핏물이 쏟아져나오고. 당신은 아픈 와중에도 웃습니다. 여태껏 시절을 함께 해왔으니 앞으로도 함께일 겁니다. 앞으로도. 이 한순간만 견딘다면 우리 화양연화는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요.

비가 내립니다. 비가 KPC의 어깨를 적시고 나의 이마를 뺨을 적시고 우리의 턱을 타고 흐르고……

 

"내 제왕이 되겠네."

 

이윽고 칼에 완전히 관통당한 KPC가 탐사자에게로 무너져내리고, 세 번째로 숨이 끊어질 적에. 빗소리 사이로 KPC가 말합니다. 환희 어린 목소리가 어째 참혹합니다. 

 

"절대 패배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는……"

 

그리고,

깜빡. 시야가 뒤집힙니다.

 

다음 순간 당신은 화창한 아침임을 깨닫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면 비도 내리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더불어 있습니다. 당신에게 양산을 씌워주던 환관이 어리둥절하게 묻습니다. 

 

"폐하?"

 

아. 

부지불식간에 나는 깨달아버리고 맙니다. 대가 없는 것이 어찌 있겠습니까. 세 번을 죽으면 다시 살려준다는 법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바보 같은 당신. 나라가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전쟁이라뇨. 그런 것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KPC도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희망을 절망처럼 받고 절망을 희망처럼 끓이다 깨달은 것.

실패한 제왕. 잊힌 재앙. 목숨을 대가로 하여 만든, 영원한 미완성의 평화.

이제 그러니 당신, 부디 절대 패배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는,

 

 

Ending 1. 성군이 되소서.

탐사자 생존, KPC 로스트.
전쟁에서의 패배, 하물며 전쟁은 없던 일이 됩니다. 탐사자는 처음부터 태평성대를 다스리던 왕으로 기록되며, 탐사자의 기억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KPC에 대한 흔적은 남지 않습니다.

 

 

 

 

 

 

 

2. 탐사자가 KPC를 살해하지 않을 경우

 

 

 

당신을 죽일 수 있었을 겁니다. 여태껏 시절을 함께 해왔으니 앞으로도 함께일 겁니다. 앞으로도. 이 한순간만 견딘다면 우리 화양연화는 내내 지속될 것이라고요.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충분히.

하나 대가 없는 것이 어찌 있겠습니까. 세 번을 죽으면 다시 살려준다는 법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대가 없이 승리한다면 죽어가고 불탄 목숨과 땅들이 되돌려지고, 또 되돌려지고, 우리는 그저 나란히 행복한 이야기 속 이들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 어쩌면 무미한 행복만큼 더한 재앙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검을 완전히 떨어뜨리자 KPC가 웃습니다. 끝내 벼랑에서 떨어지는 사람처럼 웃습니다. 비가 울음처럼 우리를 적십니다.

 

"내가 제왕이 아니어도 괜찮은가?"

 

참혹한 목소리가 울음 비슷한 것에 일그러질 것도 같고, 빗줄기가 눈물자욱처럼 뺨을 무참히 가르고.

 

"패하여 무릎꿇고 불행케 하는…… 사람이어도 괜찮은가?"

 

감히 끌어안을까요, 마지막 제왕이여, 당신을.

죽어간 목숨도 불탄 땅도 두 번 살아난 당신도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패배하여 재앙입니다, 그러나 삶이 거기서 끝은 아니지 않나요. 다음 생을 꿈꾸기 위해서는 이번 생을 전부 앓아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번 생은 지난 생의 간곡한 꿈이었을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살아갈 뿐입니다. 삿된 기운도 마법도 대가를 주어야 하는 목숨 건 기약조차 전부 끝났습니다. 그 어느 것도 화양이 아니고 연화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살아갈 날들 중에서 가장 푸르게 젊은 날. 결국 무너지는 당신께 나 이제 고합니다,

 

 

Ending 2. 부디 살아가소서.

탐사자, KPC 생존.
다음 날 KPC는 예정대로 절을 올리고, 진정 KPC의 나라는 적국의 속국이 됩니다.

 

 

 

 

 

 

 

 

3. 탐사자가 KPC와 함께 죽을 경우

 

 

 

무참하게 당신의 검으로 당신을 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멀쩡하게, 그저 죽어가는 당신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함께 목숨을 끊습니다, 주군이여. 당신이 죽여달라는 청을 들은 당신보다 낮은 데 있지 않을 수 없는 나는 결국 당신과 함께 죽어야만 합니다. 

칼에 완전히 관통한 심장이 펄떡입니다. 기억을 죽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피 묻히며 생각합니다, 뜨거운 피 온도는 우리 하나인 듯 똑같습니다. 생각합니다. 쿨럭이는 기침과 함께 핏물이 쏟아져나오고. 당신은 아픈 와중에도 웃습니다. 여태껏 시절을 함께 해왔으니 앞으로도 함께일 겁니다. 앞으로도. 이 한순간이 어쩌면 우리 화양연화일지 모르지요.

가장 아름다운 시절.

빗줄기가 시야를 적십니다. 햇빛에 무지개가 보이는 환상. 이윽고 칼에 완전히 관통당한 KPC가 탐사자에게로 무너져내리고, 세 번째로 숨이 끊어질 적에. KPC가 말합니다.

 

"후회하지 않겠지."

 

어쩌면 후회하게 될까요. 그러나 나의 군주여, 여전히 당신은 나의 주인이요 제왕이요 태양입니다. 영원한 나의 주군. 당신이 나를 끌어안습니다. 피가 쏟아집니다, 숨이 꺼지고, 눈 감습니다. 비가 웃음처럼 눈물처럼 내립니다. 나의 태양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영영 뜨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나는 압니다. 

 

"만약 서럽더라도……"

 

 

Ending 3. 함께 설워하자꾸나.

탐사자, KPC 로스트.
KPC가 죽음으로 전쟁은 없던 일이 되고 나라는 태평성대를 누리나, 탐사자의 사망에 대한 기록은 있어도 KPC의 일생에 대한 흔적은 하나 남지 않습니다.

 

 

 

 

 

 

 

 

4. 탐사자가 KPC를 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살할 경우

 

 

 

무참하게 당신의 검으로 당신을 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멀쩡하게, 그저 죽어가는 당신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군이여. 당신이 죽여달라 말한 것은 군왕의 도리가 아니니, 나 또한 불충을 저지르는 것 용서해주소서.

당신의 검을 빼듭니다, 망설임없이 스스로를 찌릅니다. 칼에 완전히 관통한 심장이 펄떡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세 번 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 하면, 기실로 진실로 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이라 하면 나는 얼마든지 불충으로 당신 앞에 죽겠습니다, 스러지겠습니다. 여태껏 시절을 함께 해온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화양연화는 끝났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어떻게." 빗줄기가 시야를 적십니다. 눈물줄기처럼 KPC의 뺨을 내리긋습니다. 햇빛에 무지개가 보이는 환상. "어떻게 네가."

 

 *탐사자가 원한다면 약간의 RP를 해도 좋습니다.

 

어쩌면 후회하게 될까요. 그러나 나의 군주여, 여전히 당신은 나의 주인이요 제왕이요 태양입니다. 영원한 나의 주군.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제왕이 아니더라도 그저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무너지는 나를 끌어안습니다. 피가 쏟아집니다, 숨이 꺼지고, 눈 감습니다. 비가 웃음처럼 눈물처럼 내립니다. 

"탐사자," 비에 우는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나는 압니다. 

 

"불충하기 짝이 없는 나의 사람이여. ……"

 

 

Ending 4. 내 너를 기억하겠으니.

탐사자 로스트, KPC 생존.
다음 날 KPC는 탐사자 없이 예정대로 절을 올리고, 진정 KPC의 나라는 적국의 속국이 됩니다.

 

 

 

 

 

 

 

 

추천 BGM

백일의 낭군님 ost - 떠오르는 단 한 사람 :: https://www.youtube.com/watch?v=majVB1M3cFY (一)

7일의 왕비 (7일의 왕비 OST) - 이필호, 박종미 :: https://www.youtube.com/watch?v=KJ-9lTMS-fM (二)

끝내 (공주의 남자 OST) - 이지용 :: https://www.youtube.com/watch?v=WJbxw_Ik-XA (三)

APNA (대장금 OST) - 임세현 :: https://www.youtube.com/watch?v=8fO5Giy29v0 (四)

얼음 연못 - 두 번째 달 :: https://www.youtube.com/watch?v=bfcL8KqpgKs&t=4s (五)

哀 - 이 비가 그치면 (조선 총잡이 OST) - 이지용 :: https://www.youtube.com/watch?v=-665e4jhoH8&t=14s (六)

War of the Arrows Soundtrack [07] Pitiful (哀(애)  :: https://www.youtube.com/watch?v=bKN4iQgzijY (七)

추노 OST - 잃어버린 낙원 :: https://www.youtube.com/watch?v=sAXsyc9KNMI (엔딩 1)


Dreaming (7일의 왕비 OST) - 프롬 :: https://www.youtube.com/watch?v=3Ey5S3DaEbs (엔딩 2)

Neal K 구름이 피워낸 꽃 팬 ost 피아노 버전 :: https://youtu.be/yE-GXvYkC7o (엔딩 3)

안예은 상사화 Instrumental :: https://www.youtube.com/watch?v=4KqoClAoDaw  (엔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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