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란성 녹음

CoC 1:12020. 4. 25. 19:03
환각이 일 것 같은 초록 안에서, 당신은 말했습니다.
"널 사랑해."

 

 

 

 

 

 

 

 

개요

 

 

언젠가부터 세상이 온통 초록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가던 것이 어느새 온통 녹음으로 번진 것을 눈치챈 것은 오직 당신뿐인 것 같아요. 숲처럼 흔들리는 건물의 녹색 그림자와 나뭇잎처럼 흩날리는 먼지와 빛살들. 녹색의 잔디밭 같은 길 위를 걷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혹은 어지러워지는 색채와, …… 저 멀리 걸어오는 KPC.

KPC의 시선이 당신과 마주칩니다. 녹색으로 번지는 모든 빛나는 것들. 환각이 일 것 같은 초록 안에서, 그는 말합니다.

"널 사랑해."   

 

 

 

 

 

 

 

크툴루의 부름 7판 룰 기준

1:1 타이만 시나리오

인원 : PC 1인+KPC 1인

배경 : ?

플레이 타임 : (ORPG 기준) 3시간

플레이 난이도 : 낮음~중간

키퍼링 난이도 : 어려움
(얼굴에 철판 까는 RP력이 필요합니다.)

권장 기능 : 관찰, 듣기, 위협 제외 대인기능

준 권장 기능 : 심리학, 영어, 전투기능

 

 

 

 

 

 

 

※ 여전히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키퍼링 및 플레이 예정인 분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양해를 구합니다.

※ 본 시나리오의 노룰북 키퍼링 및 키퍼링 커미션을 금지합니다. 본 시나리오에 연관되어 금전거래가 오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 키퍼링 해주실 분을 따로 두고, KPC 역할을 하는 PC를 포함한 PC 2인으로의 개변이 가능합니다. 단, KPC 역할의 PC를 플레이하시는 플레이어 분은 키퍼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 KPC와 PC의 백스토리에 기반한 자유로운 개변을 권장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개변하여 플레이해주세요. 이에 대한 문의는 송구하오나 답변 드리지 않습니다. 

※ KPC와 PC의 관계는 아주 보통의 관계를 상정하고 쓰였습니다. 친구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지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서로의 전부를 지극하게 원할 만큼 가깝지도,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아예 신경을 끄고 살 만큼 멀지도 않은 관계. 가끔씩 만날 약속을 잡을 수는 있는 관계. 상기 조건이 충족된다면 어떤 관계든 가능합니다. 혐오 관계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네요. 위의 이유로 이른바 소중한 관계나 연인 관계는 반드시 개변을 거쳐야 합니다.

※ 개요에서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KPC의 캐릭터 붕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KP분의 RP가 본 시나리오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기존의 탐사자와 KPC라면 AU 느낌으로 가볍게 즐겨주세요.

※ RP 위주의 시나리오입니다. RP 타임에 따라 플레이 타임도 상이해질 수 있습니다. 테스트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시나리오 하단에 플레이 타임 수집 폼이 있습니다. 플레이를 하셨을 시 평균 플레이 타임 명시와 이외 더 나은 방향으로의 수정을 위해 작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삼원색 3부작의 시작 시나리오이나 단독으로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특정 엔딩의 약간의 개변이 필요합니다.

※ 본 시나리오는 폭력, 살해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본 시나리오에서는 신화생물 및 주문에 대해 독자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존재하며, 신화생물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CoC 원작의 분위기와 상이할 수 있습니다. 

※ 본 시나리오에 대한 공계에서의 무례한 언행, 스포일러성 발언이 발견될 시 즉시 비공개 처리됩니다.

※ 플레이 로그, 후기 및 감상, 피드백, 그 외 문의는 @henceihateu의 DM이나 본 포스트 비밀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아래부터 시나리오의 배경(스포일러)이 있습니다. 키퍼(GM)가 아니라면 열람을 삼가주세요!

 

 

 

 

 

 

 

 

 

 

진상

 

 

 

 

아주 보통의 관계인 KPC와 탐사자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신경쓰지 못할 만큼 멀지도 않은 관계에 있지요. 친구라고 해도 알맞겠고, 지인이라고 하면 좀 멀어보이고, 어쩌면 이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아직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불운이라고 하면 오직 그 관계였다는 것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운 없게도 수많은 그러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 중 하필 그들이 툴즈차(룰북 p. 335)의 몇 없는 신도들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겠지요. 녹색의 불길 같은 기이한 형상, 그리고 죽음과 타락, 부패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이 신의 신도들은 지면의 아래에서 기어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했고, 자연히 그들의 관계도 함께 주의 깊이 보았습니다. 광기 어린 신도들은 지하의 신전에서 닥치는 대로 금지된 서적들을 읽고 연구하며 한편으로 인내심 깊게 세상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어떤 부패가 가장 저들을 고통스럽게 파멸시킬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어떠한 것이 가장 나락으로 여겨질까. 마침내는 정신마저 타락하여 자발적으로 죽음으로, 혹은 파멸로 뛰어들 지옥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무릇 인간의 파멸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인간이던가요. 아주 오래 지켜봐온 결과 툴즈차의 신도들은 알게 됩니다. 인간을 가장 극적으로 파멸로 이끄는 것은 감정, 양극의 감정임을. 도무지 함께 품고는 견딜 수 없는 친밀과 혐오 같은 것, 사랑과 증오 같은 것, 헌신과 보복심 같은 것들. 다른 것은 손도 대지 않고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살해하도록 시키는 것에 감정만큼 적절한 수단이 없음을 그들을 깨닫습니다.

한편으로 툴즈차를 기쁘게 할 방법을 연구하던 신도들은 에이본의 서(룰북 p. 229)에서 주문, 신이 보내는 꿈을 습득합니다. 본래는 위대한 크툴루가 악몽을 통하여 인간과 접촉하는 방식이지요. 이 주문의 응용을 통해 툴즈차의 신도들은 사람을 주문의 술자가 설계하는 죽음 같은 꿈에 가두어 미친 채로 깨어나게 하고자 했습니다. 다만 결함이 많고 불완전햇던 탓에 제대로 된 주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실험체가 필요했지요. 여기서부터 앞서 말한 KPC와 탐사자의 불운이 시작됩니다. 우연히 눈에 띈, 어쩌면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었던 관계의 둘. 세상의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발견되는 애매한 관계의 거리. 하여 그들은 불완전한 주문을 KPC와 탐사자에게 사용합니다. 주문의 완성도를 실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설계한 주문은 이렇습니다. 우선 신이 보내는 꿈 주문의 응용으로 둘을 얕은 꿈에 가둡니다. 천천히 꿈에 잠식되는 둘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다음, KPC에게만 탐사자에게 극단적인 감정을 느끼도록 암시 주문을 겁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주문을 걸지 않는 것은 술자의 마력 경제성을 위함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그들이 숭배하는 신 툴즈차의 형상은 녹색의 불꽃. 사람들에게 녹색은 평화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탐욕과 질투, 이기적인 갈망이라는 의미를 띠기도 하는 색채이지요. 하여 그들은 섬기는 신을 경애하는 의미로서 주문에 의해 증폭되는 감정을 갈망, 집착, 탐욕으로 설정했습니다. 어찌 보면… 사랑의 일그러진 한 형태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리고 꿈속의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어 두 사람이 받아들이는 현실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야만 깨어나고서도 KPC도 탐사자도 제대로 미쳐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광기 어린 감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살육하는 파멸. 타락과 죽음을 사랑하는 신의 신도들은 이제부터 KPC와 탐사자를 지켜보려 합니다. 감정의 파도란 어떻게 평범한 관계를 망가뜨리는지. 알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을 전부 손 안 대고 파괴할 수 있지 않겠어요?

다만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니알라토텝은 KPC와 탐사자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이루게 될 파멸에도, 혹은 끝까지 거부하고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인지의 여부에도 호기심이 생겨,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열쇠를 하나 만들어둡니다. 바로 탐사자가 주문으로 인해 억지로 만들어진 KPC의 감정을 끝까지 수용하지 않고 거부하는 의사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KPC와 탐사자를 원래 세계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글쎄요.

우리는 원래의 적당한 거리, 그 거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시나리오 본문

(*키퍼용 정보는 앞에 *을 붙였습니다.
KPC의 모든 대사는 KPC의 성격에 맞게 변용해주세요.)

 

 

 

 

 

 

 *다음은 KPC에게 적용된 주문으로 인해 본 시나리오에서 KPC가 보이는 광기에 가까운 증상이며, 탐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주문의 효과로 KPC는 시나리오 시작 지점에서 이성이 반으로 깎여 있으며, 상태 1에 해당합니다. KPC는 지정된 분기마다 상기 표의 다음 단계로 상태가 심화됩니다. 탐사자는 언제든 심리학 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며, 1-2분기에는 보통 성공, 3-4분기에 어려운 성공일 시 KPC의 정확한 상태를 알게 됩니다.  

1 애정: 애틋한 마음과 애착을 느낍니다. 아, 그래요. 이건 사랑이에요. 사랑이라고밖에 명명할 수 없어요.
2 갈망: 나는 당신을 원해요. 당신은 나를 원하지 않나요? 손을 잡고 곁에 가까이 거리를 좁힙니다. 어떤 마음이든 내 곁에만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찹니다. 
3 집착: 왜 당신은 나를 거부하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 원하는데. 따라붙는 손길은 진득합니다. 집요하게 들러붙습니다. 떨어지기 싫어요. 당신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4 살해충동: 차라리 당신이 죽으면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지 않을까요?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내 곁에 머무르는 것이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사랑하니까요. 

 

 

 

 1.

 

 

언젠가부터 세상이 온통 초록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가던 것이 어느새 온통 녹음으로 번진 것을…… 눈치챈 것은 오직 당신뿐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녹색의 옷을 입고, 초록의 거리를 거닐고, 하늘도 어느새 연둣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아니, 원래는 하늘이 무슨 색이었던가요? 사실은 원래부터 이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평화롭습니다. 온통 녹음인 것만 제외하자면 세상은 다를 것이 하나 없습니다. 

숲처럼 흔들리는 건물의 녹색 그림자와 나뭇잎처럼 흩날리는 먼지와 빛살들. 당신은 녹색의 잔디밭 같은 길 위를 걷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혹은 어지러워지는 색채와, ……

관찰 성공 시▶ 언뜻, 시야에 노이즈처럼 흩어지는 아주 오래 전의 색깔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푸른색, 도시의 회색, 길바닥의 흙색, 그런 것들이요. 그리운가요? 그러나 밟고 선 땅은 어느새 녹색으로 다시 번집니다. 이 색이, 이 빛만이 진짜라는 듯이. 당신의 세상에는 이제 녹음만 그득할 뿐이지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관찰 실패 시▶ 언뜻, 시야에 노이즈처럼 흩어지는 형상들. 언젠가 녹음이 아니었던 나날들을 기억하나요? 그리운가요? 밟고 선 땅은 여전히 녹색입니다. 이 색이, 이 빛만이 진짜라는 듯이. 당신의 세상에는 녹음만 그득할 뿐이지요. 처음부터요.

 

 *꿈과 현실의 경계. 탐사자는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꿈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깨어 있는 상태로 꿈을 걷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현실 속의 풍경은 그 색깔 그대로입니다. 탐사자의 배경에 맞추어 적당히 바꿔주셔도 좋아요.  

 

오늘 탐사자가 녹색 일색인 바깥으로 나온 까닭은 KPC와의 약속 때문입니다. 말이 약속이지, 이전의 평범했던 만남들과 달리 이번의 KPC는 만나서 어딜 가는지, 무얼 하는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지요. 그가 대화의 끝무렵에 붙였던 네가 보고 싶다, 는 말이 애매하게 낯간지러운 듯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면, 저 멀리 걸어오는 KPC.

KPC의 시선이 당신과 마주칩니다. 가까이 다가서는 것에 인사를 할까도 싶었습니다. 평소보다 빠른 걸음, 상기된 낯, 그리고 처음부터 이러하였음에도 문득 위화감이 드는 풍경 속만 아니었다면 말이에요. 

환각이 일 것 같은 초록 안에서, 그는 말합니다. 그의 손에 온통 녹색인 꽃다발이 들렸습니다. 흐드러지게 향이 어렸습니다.

 

"탐사자."

"널 사랑해."

 

……그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죠? (SANC 0/1)

관찰 성공 시▶ 그의 눈동자 안도 녹색으로 물들었습니다. 홍채뿐 아니라 동공까지요. 초록이 착란처럼 일렁이는 그의 눈, 기이합니다. (SANC 0/1)

관찰 실패 시▶ 애정이 묻어나오는 시선, 얼핏 걸린 미소, 누가 보더라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이군요.

 

 *짧게 자유로운 RP. (아마 짧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KPC의 상태 1분기입니다. 광기에 걸린 것과 비슷한 KPC의 상태는 '애정'에 머물러 있습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드디어 고백을 결심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다음은 RP 예시입니다. 탐사자는 위협을 제외한 대인기능을 사용하여 괄호 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KPC가 말하는 '꿈'은 곧 탐사자와 KPC의 진짜 현실을 뜻합니다. 어느 정도 대화를 마치고 나면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주세요.

 

갑자기 왜 이러느냐.
- 내가 보고 싶다고 했지 않느냐.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날을 기다려온 것 같다. 더이상 너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보통 성공 시▶ 꿈속에서조차 너를 봤다. / 어려운 성공 이상 시▶ 꿈속에서조차 너를 봤다. 온통 녹색 아닌 색깔로 가득한 세상에 너와 나만이 있는 이상한 꿈이었다. 운명처럼 그랬다.)

나는 받아줄 수 없다.
- 어째서? (성공 시▶ 꼭 내가 꾸는 악몽처럼 말하지 말아달라…….)

너 지금 이상하다.
- 내가 어째서 이상한가? 네가 당황스럽거나, 당혹스러운 건 알겠지만 나는 완전히 제정신이다. (보통 성공 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원래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 어려운 성공 이상 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원래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네게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거짓말처럼.)

오늘 약속은 설마……
- 이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서가 맞다. (보통 성공 시▶ 더이상 꿈속에처럼 머무는 건 싫다. / 어려운 성공 이상 시▶ 더이상 꿈속에서처럼 머무는 건 싫다. 꿈의 우리는 소원했다. 평범하고, 너무나 보통에 머물렀다.)

 

당신 손 안의 녹색 꽃들은 흐드러지고, 당신은 나를 향해 웃고, 문득 KPC가 늘 일정하게 유지하던 거리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침범입니다. 일상의 균열입니다. 연둣빛 하늘에서 미온 어린 바람이 불어오고.

 

"대답을 바로 듣고자 하는 게 아냐." KPC가 말합니다. 정말로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진심에 젖어 담담합니다.

"보고 싶었어, 같이 걸을까. 그런 말이 하고 싶어서."

"부디 그래줄래."

 

이것은 침범입니다. 일상의 균열입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착각 같은 녹음 안에서 손을 내민 KPC. 우선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도록 할까요.

 

 *자유로운 RP가 가능합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녹색 길을 따라 걷습니다.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고 지나갑니다.

 

 

 

 

 

 

 

 

 2.

 

 

길을 걷다 보면 카페가 하나 나옵니다. "목마르지 않아? 내가 불러낸 거니까, 내가 살게." 이제는 여상스럽게 들리는 애정 묻은 목소리. KPC의 걸음을 따라 카페 문을 열면 문 위에 달려 있던 종이 작게 울립니다.

관찰 성공 시▶ 원래 이 거리에 있었던가요? 녹색에 가려 모든 것이 익숙한 듯 보이지만, 확실히 이 길에서 못 보던 카페입니다.

관찰 실패 시▶ 사방이 익숙한 녹색이군요. 카페 문마저도 녹음으로 번졌습니다.

 

들어선 카페 안은 한산합니다. 느긋한 음악이 흐르고, 창가의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는 하지만요. 무슨 생각인지 모를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KPC는 메뉴판을 들었습니다. "너도 골라." 그가 하는 말에 창가에 비치된 작은 메뉴판을 탐사자 역시 들어봅니다.

영어 성공 시▶ 이게 뭐죠? 카페에 당연히 있어야 할 음료의 메뉴는 물론이고 음식 이름은 하나도 없어요. '신이 보내는', '위대한', '꿈', '가라앉은', '를리에', '바닷속의'…… 읽어내릴수록 불완전한 문장과 알 수 없는 단어들, 오싹한 공기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갑니다. (SANC 1/1d3)

영어 실패 시▶ 이게 뭐죠? 분명 영어인 것 같기는 한데…… 읽을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카페에 당연히 있어야 할 'coffee'라는 글자도 없어요, 그 정도는 읽을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째서 읽을 수 없는 글자에서 오싹함을 느끼는 걸까요?

 

 *이 사태를 만든 주문의 원본 격인 에이본의 서의 일부입니다. 니알라토텝의 이곳이 꿈과 현실의 경계, 꿈의 전송 주문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상냥하지 않은 힌트로, 애초에 탐사자가 이해할 수도 없으며…… 원어가 영문판으로 번역된 것이라 매우 불완전합니다.

 

"왜 그래?"

 

부르는 소리에 아찔한 글자에서 눈을 떼면, KPC는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서 탐사자의 손등에 손을 얹습니다. "괜찮아? 어디 안 좋은 거야?" 물으며 안심하라는 듯 매만지며 손을 떼……는가 싶더니, 떼지 않네요. 살갗을 쓸어 진정시키는 손길은 길어집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요. 손을 여전히 잡은 채로, KPC는 주문을 마칩니다. "너는?" 돌아보는 눈길에 읽을 수도 없는 메뉴판을 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가 멋대로 같은 것을 둘 주문합니다.

 

 *자유로운 RP. KPC의 상태 2분기, '갈망'입니다. 애정이 담긴 행동은 물론이고, 탐사자가 손을 빼거나 이제 그만 잡고 있어도 좋다는 뜻을 표해도 계속 잡고 있으려고 하거나 아쉬운 티를 팍팍 내주세요. 아까보다 좀 더 질척(!)해져도 좋습니다. RP하며 탐사자가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냐는 식의 물음을 던지면 그런 식으로 취조하듯 물어야 하나, 하는 등 대강 얼버무려 넘어가주세요. 실상은 본인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대화를 마치고 나면 종업원을 등장시켜주세요.

 

말을 주고 받고 있으려니 종업원이 찻잔 둘이 얹힌 쟁반을 들고 다가옵니다. 옅은 녹색의 찻잔은 나무 덩쿨 무늬로 손잡이가 장식되어 무척 아름답습니다. KPC의 앞에도, 탐사자의 앞에도 찻잔을 내려두고서 종업원은 돌아섭니다. 옅은 녹색의 찻잔 안, 찻물도 선명한 녹색입니다.

관찰 성공 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언뜻 수면 위로 일렁이나 싶더니, 녹색의 찻물 위로 일순 강렬한 색채가 비칩니다. 카페는 녹색 안이 아닙니다.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은 새카맣게 칠해져 있고, 녹색의 햇살로 비치는 평화로운 바깥은 수면 위에서 온통 이해할 수 없는 형체로 가득 차 있어요. (SANC 0/1) (*악몽 안이라는 증거입니다. 주문에 걸리지 않은 탐사자에게만 보이는 것으로, KPC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관찰 실패 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언뜻 수면 위로 일렁이나 싶더니, 잠잠합니다. 착각이었던 걸까요?

 

찻잔에서 다시 눈을 뗍니다. 손도 대지 않은 잔에서 다시 KPC의 낯을 보면, 그의 시선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당신에게 따라붙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샅샅이 곁에서 살피려는 듯이. "왜 그래?" 그가 다시 묻습니다. 재차 탐사자에게로 손을 뻗는데, 

탐사자, 당신은 어떡하나요? 다시 그 손길을 받아들이나요, 역시 오늘의 그는 이상하니 물러날까요?

순순하게 받아들일 시▷ 또다시 닿아 익숙한 온도에 눈을 내리깝니다. 손목을 쓰다듬는 손길은 애정 어려 거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것과 똑같이 하나도 줄어들지 않은 찻잔은 식어가고, 낡아빠진 노래는 고장난 것처럼 돌아가지만, 평화롭긴 하네요. 지독하게요. KPC는 배고프지 않아? 물으며, 조각 케이크를 하나 시킵니다. 종업원은 케이크를 곧 내옵니다. 나이프와 포크를 냅킨에 잘 말아, 역시 녹색의 말차 같은 부드러운 크림 케이크입니다. 

 *별 건 아니고… 이후 상태 4의 KPC는 나이프를 획득합니다. 자유로운 RP.

물러나거나 거부의 의사를 보일 시▷ 당신의 행동에 허공에 그의 손이 멈춥니다. 테이블이 잠깐 흔들리고, 따라 찻물의 수위도 흔들리고, 마주한 그의 눈동자도 잠시 불안으로 흔들리고.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을 때에 KPC는 순순하게 손을 거두었습니다. "차가 식겠어, 탐사자." 조금 기운이 빠진 듯한 목소리에 서먹하게 차를 듭니다. KPC는 그 후로 한참 말이 없습니다.

 *역시 별 건 아닙니다… 이 경우 이후 상태 3부터 KPC는 대인기능이 통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RP.

 

(케이크 접시와) 찻잔을 비우고나면 KPC는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창밖은 여전히 고요하고 안온합니다. 옅었던 연둣빛의 햇살이 바닥에 짙게 녹음의 그늘을 만들 정도로 짙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요. 느즈막이 햇빛의 색이 진해지는 오후인가봅니다. 카페 안에 흐르는 음악을 빼면 세상도 놀랍도록 조용합니다. 꼭 이곳에 발붙이고 서 있는 사람은 우리 둘뿐인 듯이.

아이디어 성공 시▶ 여기까지 오던 길을 더듬습니다. 그러고보면, 지나쳐온 길에 KPC를 제외한 사람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었던가요. 모두가 묵음으로 지나쳐갔습니다. 녹색으로 흔들리던 건물의 그림자와 연둣빛 하늘과, 찻잔 속에 비치던 노이즈 같은 형상들……. 꼭 꿈 같죠. 비록 세상이 꿈처럼 찰나처럼 온통 녹색이라 한들, 지금은 분명한 현실인데도요. 

아이디어 실패 시▶ 꼭 꿈 같죠. 비록 세상이 꿈처럼 찰나처럼 온통 녹색이라 한들, 지금은 분명한 현실인데도요.

 

창밖을 보고 있자니 계산을 마친 KPC가 어느새 팔을 약하게 붙들어옵니다. 그의 체온이 뭉근하게 살갗에 눌러붙고, "탐사자?" 호명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친근하게 또 긴밀하게 붙는 KPC는 여전히 낯설고……

탐사자/KPC는 문을 밀어 엽니다.

듣기 성공 시▶ 카페 안에 띄엄띄엄 앉아 있던 인상이 흐릿한 사람들. 일제히, 소름끼치게 웃는 소리를 냅니다. (SANC 0/1) 

듣기 실패 시▶ 문 위에 달린 도어벨이 들어올 때처럼, 작게 종소리를 내며 문이 열립니다.

 

"조금 걷고 싶어."

 

KPC의 무게가 은근하게 기대옵니다. 당연스레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처럼. 여전히, 여전히, 낯섭니다. 

 

 *RP와 함께 느긋하게 진행해주세요.

 

 

 

 

 

 

 

 

 3.

 

 

초록의 시곗바늘은 녹색 얹은 숫자 위를 띄엄띄엄 달립니다. 녹음의 계절은 겨울처럼 저물어도 색채만은 변하지 않아요. 옅은 초록 구름이 하늘에 둥둥 떴고, KPC를 막 만났을 때의 시간보다 짙어진 초록 볕이 발 아래 드문드문 빛그물을 만듭니다.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음에도 짙게 녹색 칠한 길 위를 걷다보면 모르는 풍경이 천천히 지나가고. KPC는 손을 놓지 않고서, 결코 놓지 않을 것처럼 당신 손을 잡고서 걸음을 옮기는데. 어느새 모르는 거리를 지나 모르는 길목으로 들어서서 모르는 곳으로, 모르는 곳으로…… 언제까지고 걸을 것처럼.

지나치는 길가에 바람이 붑니다. 아까보다 온도가 낮아진 공기.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KPC의 손에 힘이 은근하게 들어가고, 당신은 무심코 눈을 돌렸다, 녹색의 거울 같은 호수를 목도합니다.

첫 번째 관찰 성공 시▶ 호수의 수면에서 그리고, 스쳤으나 선명했던 것은 당신과 나의 그림자. 아니, 그것을 당신과 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표면에 비친 세상은 호수의 밑바닥보다 새카맣게 물들었고, 기이한 것들이 발밑에 기어다니고 있으며, 악몽 같은 당신은 흉측하게 돋은 손으로 나를, 나를, 더듬는데. (SANC 1/1d3)  

첫 번째 관찰 실패 시▶ 호수의 수면에서 스치듯이 본 당신과 나의 그림자. 아니, 그것을 당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온통 새카맣게 악몽, 악몽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이의 손을 잡고서 기어코 따라가고 있는 나와…… (SANC 0/1d2)

두 번째 관찰 성공 시▶ 퍼뜩 눈을 들어 KPC의 등을 봅니다. 앞서 이끌고 가고 있는 그의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입니다. 꽉 쥔 손은 여전한데, 목적지는 어디에도 없는데, 그의 발걸음은 다급합니다. 하늘을 봅니다, 문득 사금파리처럼 깨져 있습니다. 틈새로, 틈새로, 모르는 색깔들이 보입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것들은 정말 당신이 모르는 색깔인가요? 정녕?  

두 번째 관찰 실패 시▶ 퍼뜩 눈을 들어 KPC의 등을 봅니다. 앞서 이끌고 가고 있는 그의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입니다. 꽉 쥔 손은 여전한데, 목적지는 어디에도 없는데, 그의 발걸음은 다급합니다. 

이후 아이디어 성공 시▶ KPC는 정말로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요? 거리를 좁히고 웃고 달뜬 고백을 뱉고 닿고 싶어하고 사랑스럽고 끔찍하고 사랑스럽고 지독하고……, 당신의 손을 뿌리치고 싶어집니다. 당장, 당장.

아이디어 어려운 성공 이상 시▶ KPC는 정말로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요? 거리를 좁히고 웃고 달뜬 고백을 뱉고 닿고 싶어하고 사랑스럽고 끔찍하고 사랑스럽고 지독하고……, 다시 표면을 보면 사라지지 않는 잔상이 더듬더듬 팔을 기어올라옵니다. 짙은 녹빛으로 사위는 모든 것들, 이건 악몽입니다. 악몽, 악몽?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손을 뿌리치고 싶어집니다. 당장, 당장.

아이디어 실패 시▶ KPC의 손을 뿌리치고 싶어집니다. 당장. 당장.

그의 손을 뿌리치면 KPC는 당혹한 낯으로 휙 돌아봅니다. 호숫가에 두 사람은 멈춰섭니다. 녹색의 구름이 뭉게뭉게 그의 머리 위로 치솟은 연둣빛 하늘에 퍼지고 스며들고…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칩니다. 그의 눈동자 안에 자리잡은 선명한 초록도 살을 저밀 듯이 선득하게 차갑습니다. 

 

"왜?"

"왜 손을 놨어?"

"왜 나를 놨어, 탐사자?"

 

 *자유로운 RP. 소위 '내가 사랑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래?' 하는(…) 집착적인 모습으로 탐사자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현실에서는 건강한 사랑을 합시다.) 앞서 파트 2에서 손을 뻗치는 것에 물러서거나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면 이 시점부터 탐사자의 대인기능이 통하지 않습니다. 손을 뻗치는 것에 순순하여 KPC가 나이프를 획득했을 경우, 대인기능 어려운 성공 이상 시 KPC가 다시 손을 잡은 채 일시적으로 진정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됩니다.

 

"나를 놓지 마." 그는 거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호소합니다. "나는 여기 있어."

듣기 성공 시▶ 나즈막히 따라붙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만할래. 그만한다고 말해. 여긴 지옥이야. 날 구해줘. 꿈으로 돌아가지 않아. 사랑해."

듣기 실패 시▶ 나즈막히 중얼이는 음성, "……고 말해. ……구해줘. 꿈으로 돌아가지 않아. 사랑해."

심리학 성공 시▶ 지독하게 혼란스러운 표정, 일순간 다른 사람처럼 사라집니다.

심리학 실패 시▶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 얼굴입니다.

 

 *주문에 완전히 잠식되지는 않은 KPC의 구조 요청입니다. RP로 혼란스럽게 인격이 뒤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이디어나 심리학을 굴려 성공했을 시 KPC 역시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알려주셔도 좋습니다. KPC는 이 시점부터 대화가 거의 이어지지 않습니다. 뚝뚝 끊기는 말마디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만, 나를 떠나지 말라, 빨리 대답해달라, 하고 싶은 말만 마구 쏟아내셔도 괜찮습니다. 우당퉁탕 RP를 어느 정도 마치면 다음 지문대로 진행해주세요.   

 

"무거워."

"무거워. 마음이 너무 무거워."

"고작 마음 하나로 사람이 망가질 수 있단 걸 알아?"

 

툭,

그의 얼굴은 처참합니다. 당혹스럽게만 하는 KPC의 목소리, 짙은 녹빛 그림자가 신발등에 내려앉았다고, 느낄 때쯤이었습니다. 툭, 투둑, 낙하하는 소리에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4. 

 

 

아, 비입니다. 여우비입니다. 녹색의 해가 지는 초록의 노을, 그 위로 투명한 비가 화려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햇무리마저 연둣빛에서 청록으로 퍼지는 아름다운 녹음의 안에 갇힌 우리. 수면 위에 이는 파장은 원형으로, 원형으로 끝없이 일그러지고… 잠시 넋을 놓고 위를 보고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부질없는 고백도 전부 거기 녹아버린 것처럼. 평온일까요? 소강일까요?

 

"널 사랑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일순 들리고, 아, 당신은 그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꿈 같은 현실, 이 현실 같은 꿈, 악몽, 악몽이, 끝나지 않습니다. 고작 감정 하나로요. 그가 품었을 리 없다고 생각되는 고작 그 감정 하나로. 고작 하나로 지옥이 되는 세상도 있습니다.

 

"그리고,"

 

녹음으로 빛나는 역광을 받고 비에 젖은 KPC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잠깐 웃습니다. 기괴합니다.

 

"이제 그만할래."

 

일순간 녹음으로 물들었던 세상이 뒤집힙니다. 정확히, 당신에게 달려든 KPC를 기준으로요.

 

 *상태 4의 KPC, 잠깐 전투 페이즈…라기보다는 육탄전. 탐사자의 전투기능을 써도 좋습니다. KPC가 나이프를 가지고 있다면 기능 근접전(격투), 피해 1D4+피해 보너스……지만 탐사자의 체력이 무진장 깎인다면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에 탐사자는 몸 위에 올라탄 KPC에 의해 잠깐 제압당합니다.

 

풍경이 난폭하게 돌아갑니다. 질퍽이는 흙, 잡아당기는 우악스런 손길에 미끄러지며 호숫가에 쓰러집니다. 비에 시야가 자꾸 젖습니다, 호숫물에 폭력처럼 머리를 처박았다 도로 고개를 들린 것처럼 수면 같은 세상, 일그러집니다, 일렁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수없는 색채가, 원래 있었어야 할 색채가, 신기루처럼 시야를 가렸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몸 위에 올라탄 KPC의 얼굴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목을 감싸는 당신의 손 안에서 나의 박동이 뛰고, 움켜쥐는 당신의 악력은 진심입니다. 언제든 숨통을 조일 수 있을 듯합니다. 그가 울듯이 웃습니다. 씹어뱉듯이 한 자 한 자 짓이겨 말합니다.

 

"선택해."

"아주 쉬운 선택지를 주지. 너도 날 사랑한다고 말하면 돼. 결코 날 떠나지 않겠다고. 어떤 세상에서든 내 곁에 있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넌 죽어. 내 손에."

"선택해, 탐사자."

 

시야를 가득 채우는 이기적인 갈망의 색깔. 나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당신. 아,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있습니까? 후두둑 쏟아지는 비처럼 무자비한 무방비한 무의미한― 습기 어려 눅눅한 웃음.

 

"너를 사랑해."

"나를 사랑해?"

 

*엔딩 분기입니다. 크게 엔딩을 두 갈래로만 나뉘었으므로, 엔딩 지문은 대부분 개변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날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No의 대답으로 볼 수 있는 반응이 나왔다면 Ending 1, Yes의 대답으로 볼 수 있는 반응이 나왔다면 Ending 2. 가급적 탐사자가 KPC에게 반격하는 행위 이전에 '대답'을 하면 바로 엔딩을 진행해주세요. (KPC가 탐사자한테 죽기 전에요……)

 

 

 

 

 

 

 

 

엔딩

 

 

 

 

1. 탐사자가 KPC의 말을 어떤 이유에서든 거부 / 부정의 의사를 표했을 경우

 

 

나는 압니다. 당신이 진짜 KPC가 아니라는 걸. 진심 따위가 저런 참혹한 모습일 리 없습니다. 빗물에 자꾸 젖어들어가는 시야로 말합니다. 아니, 널 사랑하지 않아. 그리고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알잖아요, 우리 둘 모두.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에서 감정이 사라집니다. 악에 받친 손길에 숨통이 틀어막히고 헉, 턱끝으로 숨을 쉬기 벅차다고 생각했을 때쯤에,

빗물처럼 세상이 무너집니다.

일순간 막혔던 숨이 기침과 함께 다시 터져나옵니다. 하늘이 저런 색이었던가요. 새파란 색상이 눈에 들어찹니다. 지긋지긋한 녹음. 질투와 갈망과 불꽃 같은 어떤 한 계절의 색깔이 녹아내리며 하늘은 그저 새파랗게, 푸르게, ……

몸을 일으킵니다. 무너지는 녹음 조각들이 머리 위로 빛살처럼 부서져내리고, 처참한 사랑 아닌 사랑을 말하던 KPC는 없고, 몽중 같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집니다. 고작 하나로 사람은 지옥으로 곤두박질쳤다 돌아올 수도 있지요. 마음 따위가, 마음 같은 게, 마음씩이나 하는 것들이.

 

온통 차게 시리게 아름답게 샛푸른 이곳을 바라봅니다. 여기는……

 

 

Ending 1. 녹음의 착란은 가고

탐사자, KPC 생환?
(*이후 《수용성 파랑》 플레이가 가능한 엔딩입니다. 《수용성 파랑》을 플레이하지 않고 단독으로 끝내고 싶으실 경우,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으로 개변해주세요. 모든 것은 키퍼 분과 플레이어 분의 자유입니다.) 

 

 

 

 

 

2. KPC의 말에 수용의 반응을 보였을 경우

 

 

안 됩니다. 그래요,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손에 죽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해? 묻고, 숨통 조이며 나는 너를 사랑해. 대답합니다. 종국에는 위안 같은 거짓을 꺼내놓고야 말았습니다. 아니, 거짓이든 진심이든 이제 진위는 필요가 없는 부분인가요. 당신은 진짜 KPC일까요? 괴물 같던 그 형상들은 다 무엇이었을까요? 당신 손 안에 내 박동은 자꾸 뛰고, 하염없이 내리는 빗물은 자꾸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도대체 뭐가 이렇게 엉망진창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해?" KPC가 웃습니다. 빗물에 젖은 낯은 꼭 우는 것 같습니다.

"틀렸어."

 

다음 순간 나이프가 치켜들리고, 번쩍, 녹음이 빛나고, 세상이 찢어지고, 아찔하고, 

 

……

눈을 뜨면 언젠가부터 세상이 온통 초록입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가던 것이 어느새 온통 녹음으로 번졌습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걸지도 몰라요. 우리의 세상은 이것이 전부. 

숲처럼 흔들리는 건물의 녹색 그림자와 나뭇잎처럼 흩날리는 먼지와 빛살들. 녹색의 잔디밭 같은 길 위를 걷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혹은 어지러워지는 색채와, …… 저 멀리 걸어오는 KPC.

KPC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녹색으로 번지는 모든 빛나는 것들. 착란성의 녹음 안에서, 그는, 당신은, 말합니다. 나는 당신이 이 다음 할 말을 압니다.

 

"널 사랑해."

 

거짓말.

속절없이 달콤한 채 우리는 갇힙니다.

 

 

Ending 2. 착란하는 녹음 속에

탐사자, KPC 로스트.

 

 

 

 

 

 

추천 BGM

Chouchou - Lost Utopia (inst ver.) :: https://www.youtube.com/watch?v=fWkqroCeiRs (파트 1) 

Avicii - Wake Me Up (Piano Cover) :: https://www.youtube.com/watch?v=M44uvYTHu4o (파트 2)

Tomoya Naka - Meteore :: https://www.youtube.com/watch?v=SVXetGZJO7Q (파트 3)

Undertale - Waterfall Orchestral Cover :: https://www.youtube.com/watch?v=k4jZuqay0-c (파트 4)

Marika Takeuchi - Driven  :: https://www.youtube.com/watch?v=Vo3g71IRugM (엔딩 1)

Tomoya Naka - Bouquet de Lumière :: https://www.youtube.com/watch?v=a-RB0QWy_P4 (엔딩 2) 

 

 

 

 

 

플레이하신 뒤 여유가 있으시다면 작성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https://url.kr/i2oxp7 <

 

'CoC 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성 자홍  (0) 2020.04.25
수용성 파랑  (0) 2020.04.25
Mad Sonata  (0) 2020.04.25
年華圮望錄  (0) 2020.04.25
Lenok Syndrome  (0) 2020.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