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을
CoC 1:12020. 4. 25. 14:03옛날 옛날에, 어떤 용사가 있었습니다.
용사의 사명은 사악한 마왕을 무찌르는 것이었죠.
그 용사의 이야기는……
개요
당신은 운명의 부름으로, 오직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단 한 번도 그 의무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지요. 마왕을 처치하면 이 나라를 위협하는 마물들 역시 전부 섬멸될 것입니다. 수많은 기대와 축복을 받고 당신은 자신을 갈고 닦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세계에는 단 하나의 용사,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년이 된 오늘, 모든 준비가 끝나고, 황제께서 당신을 부릅니다. 때가 되었으니, 용사님이시여. 이제 부디 마왕을 무찌르고 돌아와 달라고!
자, 여행을 떠나볼까요? 마왕 KPC를 무찌르러 가는 여정을!
크툴루의 부름 7판 룰 기준
1:1 타이만 시나리오
인원 : PC 1인+KPC 1인
배경 : 중세
플레이 타임 : 4~7시간
(물론 RP에 따라 20시간을 한 탁도 있다고 합니다…)
플레이 난이도 : 중간
키퍼링 난이도 : 중간
권장 기능 : 관찰력, 듣기, 전투 기능(근접전: 도검)
준 권장 기능 : 심리학, 은밀행동
※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키퍼링 및 플레이 예정인 분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양해를 구합니다.
※ 개인에 따라 취향을 탈 수 있는 소재가 있습니다. 플레이어를 속이고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 본 시나리오의 노룰북 키퍼링 및 키퍼링 커미션을 금지합니다. 본 시나리오에 연관되어 금전 거래가 오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세션카드에 한해 커미션 및 금전 거래를 허용합니다.
※ 키퍼링 해주실 분을 따로 두고, KPC 역할을 하는 PC를 포함한 PC 2인으로의 개변이 가능합니다. 단, KPC 역할의 PC를 플레이하시는 플레이어 분은 키퍼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 본 시나리오에는 신화생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작 크툴루에서 요구하는 분위기와 다른 부분이 존재합니다.
※ KPC와 PC의 성향에 기반한 자유로운 개변을 권장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개변하여 플레이해주세요. 이에 대한 문의는 송구하오나 답변 드리지 않습니다.
※ KPC와 PC의 관계는 크게 타지 않습니다. 애초에 마왕과 용사인, 초면인 채로 시작하는 시나리오입니다. (당연히 서로… 죽일 수 있어야 함을 상정합니다!) 기존 탐사자라면 AU 개념으로 가볍게 즐겨주세요.
※ 전투가 필수적입니다. 다이스 판정과 행동에 적극적이신 플레이어 분이라면 즐기기 좋습니다.
※ 보기에 따라 완벽한 해피엔딩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PC와 PC, 둘 중 하나가 거의 확정적으로 로스트합니다.
※ 본 시나리오에는 살해, 사망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시나리오에 대한 공계에서의 무례한 언행, 스포일러성 혹은 자작 발언의 발견 등 불미스러운 일의 발생 시 즉시 비공개 처리됩니다.
※ 플레이 로그, 후기 및 감상, 피드백, 그 외 문의는 @henceihateu의 DM이나 최하단의 폼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래부터 시나리오의 배경(스포일러)이 있습니다. 키퍼(GM)가 아니라면 열람을 삼가주세요!
진상
KPC와 탐사자가 마왕과 용사로 태어나게 된 배경에는, 마물이라 불리는 이세계의 신화생물들과 이 대륙을 통일한 제국 초대 황제의 거래가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사람들로 가득한 이 대륙을 발견하고서 제국의 사람들로 자신의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온갖 실험을 하고 싶어 하거나, 막연히 제국의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싶어 하거나, 그도 아니면 개미떼처럼 보이는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밟아 죽이고 싶었던 이계의 신과 신화생물들을 향해 초대 황제는 필사적으로 거래를 청했습니다. 우리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살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내어드릴 테니, 부디 최대한의 사람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에 응해 이계의 신들의, 말 그대로 갖고 놀기 위한 최소 인원의 장난감으로 선택된 것이 KPC와 탐사자였습니다. 왜 하필 KPC와 탐사자였냐고 묻는다면, 세계가 걷혔을 적에 가장 처음 보인 이들이라는 어찌하여 꼭 들어맞는 우연에 그 기저가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보다는 지금의 용사와 마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둘은 한 사람은 마왕, 한 사람은 용사라는 이름으로 생을 살아갑니다. 마왕은 마물들을 제어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저 마왕성에 홀로 격리되어 살고 있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마물은 실상 그저 제국과 마왕과 용사를 둘러싼 채 ‘봐주고 있는’ 신화생물들이지요. 용사에게 주어졌다고 전해지는 마물과 마왕을 물리칠 ‘성력’ 따위도 이 세상에 원래 없는 개념입니다. 평화를 위한 전제는 오로지 제국에서 마왕을 오로지 죽일 목적으로 떠받들어지고 키워지는 맹목의 용사가 성년이 되는 순간 마왕을 죽이러 마왕성을 찾고, 결국 둘은 몇 번이고 마주하게 되는 잘 짜인 운명 하나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죽이는 순간, 죽은 사람은 새로이 용사로서 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죽인 사람은 그 다음 번의 마왕이 됩니다. KPC와 탐사자가 서로를 번갈아 죽이고 죽는 볼거리가 있는 한 마물―신화생물들은 제국을 결코 침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두, 약속된 연극입니다.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합의.
어느 날은 용사가 길을 헤매어 마왕성에 도달하지 못해도 아주 긴 기간 동안 태어나지 않아도, 마왕도 인간 하나일 뿐이니 용사에게 죽지 않더라도 몇 십 년을 기다리다보면 때로 혼자 스러져 숨 멎었습니다. 그럴 때면 용사는 아무도 없는 마왕성에 도달하여 자연스레 마왕이 되었습니다. 죽은 마왕은 다시금 제 자리를 찾아 제국의 용사로 태어났고요. 대본에 맞추어 동시에 태어나면, 극은 다시 시작입니다. 따라서 죽지 않는 쪽은 매번 죽였던 이가 자신을 죽이러 찾아왔을 적에 그의 앞에서 무너지고, 결국 우리는 몇 번이고 서로의 앞에서만 함몰하고, 둘의 기억은 결코 소멸하지 않고. 그 상태로 몇 십 번을, 몇 백 번을 반복하던 중에,
스쳐지나가는 어느 장면이 있습니다. 지겹도록 우리만 있는 장면이 있어요. 장면 속에서 탐사자가 말했습니다. 어떤 표정으로든 어떤 목소리로든 어떤 마음으로든 말했습니다. 마주한 KPC에게.
“이제 그만하고 싶어.”
지나가듯 하는 말이었든, 진심으로 내놓은 말이었든. 수백의 살해로 점철된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둘 중 한 명의 입에서 언젠가는 나올 말이었으므로 KPC는 알고 있습니다. 하여 몇 백 번째의 생을 부여받은 KPC는 결국 처음으로 이계의 신을 찾아갑니다. 신이시여.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신이시여.
이 운명을 반복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까.
그러자 신들이 대답했습니다.
너희는 애초에 그렇게 태어났다. 이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그 운명은 꼭 필요하다.
실은 자신들의 유희거리에 불과함에도 나온 대답을 KPC는 철석같이 믿습니다.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들의 일, 인간이 정하지 않은 일, 그럼에도 인간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
그렇다면 적어도 이것을 행하며 잊는 방법은 없나요? 몇 번이고 누군가에게 죽고 죽임당하는 기억만이라도 잊고 싶습니다.
그리고 신은 모독적으로 웃습니다. 더없이 잔인한 자비. KPC는, 너희의 뜻이 구태여 그러하다면, 자애롭게 내어지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죽임당하는 쪽, 다시 태어날 ‘용사’만은 모든 기억을 잊게 해주겠노라. 그러니 그에게 망각을 선물하고 싶다면, 모든 기억을 혼자 안고 악역을 맡으라. 그를 죽여.
그러나 스스로가 망각하고 싶다면, 기어이 그에게 죽으라, 악역과 기억을 그에게 떠넘기고.
모든 것을 혼자만 알고 있는 악역을 맡은 마왕에게 내어진 선택지.
그리고 다시, 윤회입니다. 용사와 마왕의 대결입니다. 황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출정을 명하고, 용사 탐사자는 검을 겨누러 오겠지요.
지겹도록 반복된 이 연극. 그토록 바라온 망각이 한 명에게만 닥쳐올 때에, 아무것도 모르는 둘 중 하나가 누구의 것도 아닌 다른 하나의 손으로 마지막을 맞는 모습을 보며, 당신과 나는 차라리 행복할까요?
시나리오 본문
(*키퍼용 정보는 앞에 *을 붙였습니다.
KPC의 모든 대사는 KPC의 성격에 맞게 변용해주세요.)
성년의 날
맑은 날입니다. 제국의 아침은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새가 노래하듯 지저귀고 하늘은 푸른 물감이 번진 듯이 말갛게 파랗습니다. 당신은 호화로운 용사의 방 안에서 기분 좋게 몸을 일으킵니다. 비록 무시무시한 모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지만요. 뭐든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좋은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성년이 되는 오늘, 당신은 마왕성으로 떠나야 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겠지요. 축복과 기대를 함께 받으며, 의무와 권리를 함께 지면서, 당신을 보살피고 가르쳐주는 황성의 사람들과 신전의 사제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세상은 마왕, KPC의 마력에 지배당해 당장 제국의 변방만 나서도 그가 부리는 괴수들로 우글거리고, 세계는 그 마력에 맞설 수 있는 성력을 가진 단 한 사람,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당신은 성년이 되는 날, 사악한 마왕을 마주해야 한다고. 그 마왕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고 돌아온다면, 세계는 당신으로 하여금 비로소 완전한 평화를 되찾을 거라고요. 어릴 적에는 당신에게만 주어지는 그 막중한 의무가 두려웠던 적도 있었지만,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 길러졌습니다. 그것을 배반할 수는 없겠지요. 이 날을 위해 수련도 열심히 해왔습니다. 새삼 다짐합니다. 세계를 위해.
몸을 씻고 정복을 갖춰 입고 나면 누군가가 문을 노크합니다. 열어보니 시종이 머리를 조아리며 당신에게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용사님.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출정하실 시간입니다.”
검을 찹니다. 묵직합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처소에서 황성 내에 있는 작은 신전을 거쳐야 하지요. 이제 마왕을 무찌르고 돌아오기 전까지는 다시 보지 못할 평화로운 풍경들을 새삼스레 눈에 담습니다. 새하얀 햇볕이 신전의 기둥 사이사이로 비칩니다.
화려한 출정식이 거행되는 날, 사제들은 분주합니다. 십중팔구 식에서 당신을 축복하기 위함일 겁니다. 벅적한 목소리들 가운데,
듣기 성공 시▶ 흐트러진 사제복을 가지런히 하며 그들이 중얼이듯, 혹은 속삭이듯. 대화하는 소리가 나직하고도 은밀합니다.
“성력▒은 ▒▒▒고 있네.”
“▒▒▒▒ ▒▒▒▒에 불과하시잖아. 전부 ▒▒▒ 건데.”
“가엾기도 하지. 이제 겨우 성년이신데.”
“평화를 위해서니 어쩌겠나.”
낮게 소리 죽여 말하던 그들이 당신을 발견하고서 얼른 고개 숙입니다.
듣기 실패 시▶ 사제들의 말은 드문드문 잘 들리지 않지만,
“용사님? 이제 겨우 성년이시잖아. 어쩌면 좋아.”
당신이 용사라는 운명에 대해 가여워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하기사 저 사제들도 스물 얼마쯤 되었다지만, 당신은 이제야 성년이 되었으니까요.
*부분부분 가려진 곳을 전부 채우면, ‘성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래봤자 꼭두각시에 불과하시잖아. 전부 꾸며진 건데.’ 가 됩니다.
황성 안의 사람들은 모두 진상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번 대의 ‘용사’인 탐사자가 자라는 데 도움을 줬던 사람들은 모두요. 오로지 황성 안에서만 키워지고 자라는 것은 이번 대의 용사가 진상을 알지 못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기억이 축적되므로 건성으로 식을 준비하고 출정을 보냈던 제국이지만, 이번만큼은 용사가 기억이 없는 첫 용사일 수 있도록. KPC와 황제의 합의가 들어간 부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제국의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 같은 이름, 같은 외모로 태어나므로 용사는 황성으로 데려와집니다. 이 부분은 세션이 끝난 이후 플레이어분과 함께 이야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잠시 느려졌던 걸음을 다시 빠르게 옮깁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볕이 눈부신 대전으로 나아갑니다. 기사단이 열을 지어 각 잡힌 채 서 있고, 옥좌 위에 위엄 있게 앉아있는 존경스런 황제께서 당신을 보고 몸을 일으킵니다.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옥좌 위에서 친히 내려옵니다.
“탐사자.”
“탐사자, 이 제국의 자랑스러운 용사여.”
“부디 바라노니,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심리학 성공 시▶ 그렇게 말하는 황제 폐하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편안해보입니다. 지나치게요. 그만큼 당신을 굳게 믿고 있는 걸까요.
심리학 실패 시▶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당신에게 다가오는 황제는, 누가 봐도 세상의 구세주를 아끼는 군주의 모습입니다.
*초대 황제부터 제국을 지키기 위해 내려져 온 전설이자 진상. 이번 대의 황제 역시 ‘용사’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설사 탐사자가 죽는다 해도 제국은 무사할 테니, 무뎌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손을 간절하게 맞잡은 황제의 손을 보고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요. “부디 세상을 꼭 구해주시오.” 막중한 기대와 염원 속에, 당신은 오랫동안 하지 못할 인사를 그에게 올립니다.
기사단이 일제히 당신에게 머리를 숙이고,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 출정식이 거행됩니다. 당신이 걸음하는 곳마다 평화의 기원을 담은 융단이 깔리고, 아이들이 색색깔의 꽃을 헌화하고. 이윽고 먼 여정을 떠나는 당신. 햇살이 축복처럼 눈부십니다.
변방으로
몇날 며칠을 걸어 변방으로 향합니다. 여기까지는 평화롭게 제국의 사람들에게 환대받으며 왔지만, 이제부터는 다릅니다. 국경에는 마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했으니까요. 과연 저 멀리 불길한 어두운 숲이 보이고, 인적은 점점 드물어집니다.
당신은 검을 빼듭니다. 괜찮습니다. 몇 번이고 수련했으니까요.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시작부터 겁먹어선 안 되는 일이지요. 당신은 용사잖아요. 이 세계의 구세주!
국경에 걸친 마지막 가난한 마을을 뒤로 하고,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갑니다. 나무 그늘은 빽빽하고 바람 소리는 고요합니다. 어둠입니다…….
순간,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가 빛납니다. (2d6)마리의 마물이 당신에게 급작스레 달려옵니다. (SANC 0/1d4) 마왕성으로 향하는 위험한 여정의 시작입니다!
*전투 페이즈. 탐사자-마물 1-마물 2-…-마물 n의 순으로 공격 턴이 돌아갑니다. 마물(최하급 신화생물)의 특성치는 편의상 모두 근력 70, 민첩 70, 크기 70, 체력 6이며, 기능치 회피52%, 근접전 50%으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공격합니다. 피해는 1d2. 그러나 이 생물들의 유희는 탐사자를 죽이는 것에 있지 않으므로, 전투가 너무 오래 진행되거나 (ORPG 기준 1시간 이상) 탐사자의 체력이 5 이상 깎일 시 전투를 강제 종료, 곧바로 다음 부분을 진행해주세요. 혹여 탐사자의 운이 좋아(…) 전투가 빨리 끝날 시 다시 2d6만큼의 마물이 달려듭니다.
“오, 맙소사!”
숨차게 검을 휘두르는 당신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한두 사람의 발소리가 아닙니다. 뒤를 돌아보자, 어쩐지 황성에서 보았던 사제들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제들이라면 성력에 일가견이 있을 텝니다. 마물들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데에 용사인 당신만큼이나 힘쓰고 있는 이들이라 했으니까요.
이들은 용사인 당신을 알아보는 걸까요? 도와주러 온 걸까요?
“오, 탐사자.”
…아무래도 그런가봅니다. 당신이 안심했을 적에,
“바보 같은 제국의 충견이 아니십니까?”
조롱에 가까운 어휘가 고막에 꽂힙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무어라 외자 마물들은 갑자기 다시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감춥니다. 궁정의 하얀 사제복과 달리 새카만 사제복을 입고 있는,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이 광인처럼 낄낄 웃어댑니다.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계의 신을 추종하는 사이비 혹은 이단교도 집단입니다. 본디는 성의 신전 사제였으나 도망쳐나온, 혹은 쫓겨나온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용사와 마왕의 진상을 알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판정을 권장합니다. 관찰이나 심리학 판정 성공 시 탐사자를 가여워하고 있는 동시에 깔보고 있는 듯도 하다는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국의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용사'에게 보이는 반응은 아닙니다.
*대화 예시
당신들은 누구인가? → 우리는 위대하신 '그분들' 앞에 다만 하찮은 존재임을 깨달은 한낱 신자일 뿐.
나는 용사다. 나를 아는가? 제국의 충견이라는 말은 무슨 말? → 알다마다.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가엾고 어리석게 여기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먼 훗날에야 알게 될지 모르지.
마왕을 알고 있나? → 우리보다야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다. 하며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외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광인 같은 반응(!)을 하며 다음으로 진행해주세요. 용사와 마왕에 대한 진상을 깊게 파헤치며 이들은 신화에 대한 지식을 얻었지만 이성을 깎아먹어 정상적인 사람이라 볼 수 없습니다.
"자, 모든 것이 결국 운명의 농간입니다." 가짜 사제는 당신을 치료해주고서 등을 돌립니다. (*탐사자의 체력 3 회복합니다.) "대륙의 끝으로 가시면 비로소 알게 되겠지요." 그 말을 끝으로 자박자박 멀어져가는 발자국. 아무 일 없던 듯 사라집니다.
기분 탓일까요… 눈을 돌리면 숲속의 어둠은 한 겹 더 짙어진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왕성으로 향하는 길
마왕에게 가는 길을 필사의 각오로 막기라도 하듯 괴수들은 발길을 뗄 때마다 달려들었지만, 당신은 어렵사리, 그러나 용맹하게 그들을 처치하고 빛나는 핏물로 그득한 비린 명예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습니다. 대륙의 끝으로 가면 갈수록 땅은 척박해지고, 바람은 거세지고, 발걸음을 떼기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날은 결국에 다가오고야 맙니다.
눈을 들면, 저 멀리 희끗하니 보이는 검은 성채. 잠깐 걸음을 멈춥니다.
저것이, 마왕이 산다는 세계의 끝 죽음의 성.
숨을 삼킵니다.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지독한 중력에 짓눌리는 듯한 힘. 세상의 끝에 선다는 것은 이토록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던 걸까요. 마음 속으로 두려움이 찾아들었습니다. 손끝이 마구 떨렸습니다. 경험해본 적 없는 죽음,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경한 공포가 차올랐습니다. (SANC 0/1)
그러나 당신은 용사지요.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더 두려운 것일까요. 축복해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이 압도적인 적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은, 악을 처단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용사 탐사자는, 숨을 들이킵니다. 문득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면, [[3d6]]마리의 마물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점점 좁혀옵니다, 포위해옵니다.
*전투 페이즈. 탐사자-마물 1-마물 2-…-마물 n의 순으로 공격 턴이 돌아갑니다. 마물(최하급 신화생물)의 특성치는 편의상 모두 근력 70, 민첩 70, 크기 70, 체력 6이며, 회피52%, 근접전 50%으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공격합니다. 피해 1d2. 이번 역시 탐사자의 체력이 3 이하로 남았을 시 전투를 강제 종료, 곧바로 다음 부분을 진행해주세요. 만약 (정말 만에 하나…) 운이 좋은 탐사자가 전투에서 승리할 조짐을 보인다면…… 이하의 지문을 덧붙여주세요.
전부 물리친 줄 알았는데. 이제 끝이 보일 것 같았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박쥐처럼 생긴 마물들이 다시 몰아칩니다. 머릿수를 세어보니 (3d6*2)마리입니다. 아까보다 더 버겁게 느껴지는 건 지친 탓의 착각일까요.
끝이 없이 들이닥칩니다. 비린 피냄새와 몰려오는 숨찬 두려움, 지긋지긋한 살육을 자행하며 검을 휘두릅니다. 키에엑―! 마물이 비명을 지르고, 그럼에도 다시금 달려들어 당신을 물어뜯기 시작하고, 팔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찔한 고통이 두 눈을 감깁니다. 아, 더이상은, 더이상은……
당신의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마물이 시야에 가득 들어차는 것을 마지막으로, 탐사자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마왕성
눈을 뜹니다.
탐사자는 침대에 눕혀져 있습니다. 천장이 희고 눈부신 빛으로 일렁입니다. 붉은 햇빛이 어딘가에서 비쳐 들어오고…. 안락합니다. 마치 돌아온 것처럼요. …기억을 더듬어보면 목줄기를 물어뜯던 짐승의 이빨, 고통이며 감촉이 남은 듯 아직도 선연한데. 꿈이었던 걸까요? 둘러보면 그러나, 용사의 방도 황성 안도 아닌 처음 보는 장소입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움직이자 몸이 삐걱입니다. 정신이 돌아오자 곳곳이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무래도 꿈은 아니었나봅니다. 그래도 몸을 일으킬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테이블, 침대, 거울, 창문, 문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윤회에서 '용사'였던 탐사자 자신이 썼던 방입니다. 직전의 윤회일 수도 있고, 훨씬 옛날의 윤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키퍼님이 자유롭게 설정해주세요.
- 테이블
정갈한 원형의 나무 테이블입니다. 어쩐지 사용감이 좀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탐사자가 내내 휘두르며 베었던 검도 갈무리되어 있네요.
관찰력 성공 시▶ 반쯤 비워져있는 잉크 병과 펜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잘 살펴보면, 까만 잉크는 오래되어 병 속에서 굳어 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네요.
관찰력 실패 시▶ 잉크 병과 펜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쓰고 있었던 걸까요?
*오래 전 탐사자가 썼던 잉크와 펜입니다.
- 침대
탐사자가 누워있던 침대입니다. 희고 푹신합니다. 다만 조금 오래된 것인지 삐걱이는 나무 소리가 나네요.
관찰력 성공 시▶ 침대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들을 발견합니다.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었습니다. 바스라질 듯 종잇장이 바짝 말랐습니다. 마구 휘갈겨진 불친절한 글씨로, '왜', '어째서', '그만두고 싶어…….', '이건 악몽이야.', '세상의 끝?'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어려운 성공 이상 시 추가 서술▶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태어났다면, 마왕은?' 구석에 작게 쓰인 글씨를 발견합니다.
이후 지능 성공 시▶ 휘갈겨 썼는데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익숙한 글씨체이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이곳은 생애 처음 오게 된 곳인데… 왜일까요?
관찰력 실패 시▶ 특별한 점은 없어보이는데. 다시 한 번 침대에 누워봅니다. 침대 위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여전하지만, 그래도 편안하고 아늑합니다.
*과거의 윤회에서 탐사자 자신이 썼던 글입니다. 익숙한 글씨체임은 스스로의 글씨체이기 때문에.
- 거울
무엇인가 오래된 듯한 이 방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며 새 것처럼 빛을 내는 물건입니다. 깨끗하게 비치는 거울 위로 탐사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데,
관찰력 성공 시▶ 문득 거울을 보는 눈길 안으로, 이곳에 선 거울 안의 자신이 낯설지 않음을 느낍니다. 어째서?
관찰력 실패 시▶ 문득 거울을 보는 눈길 안으로, 기시감이 스칩니다. 왜?
- 창문
척 봐도 지상과의 거리가 꽤 되는 높이입니다. 뛰어내려 탈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군요. 비쳐들어오는 햇살이 붉었던 까닭입니다. 바깥은 황무지지만, 그조차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 문
고풍스런 나무 문입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슬쩍 밀거나 당겨보면, 잠겨있지 않아 손쉽게 열립니다.
*이후 탐사자가 판정 재도전, 강행을 원한다면 방 안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시고, 조사가 끝났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주세요. 만약 그럼에도 탐사자가 방 안에 있기를 고집한다면 갑자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며 KPC가 등장합니다. (이 경우 직후의 문단은 제하고 진행해주세요.)
문 바깥으로 나서면, 여전히 하얗게 일렁이는 천장. 높게 솟은 성채의 뾰족한 지붕은 마법처럼 투명하여 눈 안에서 붉은 햇살로 반짝거리고, 성 안은 마치 거대한 온실 같습니다. 여름 햇볕 안에 들어와 있는 마냥 따스하고 안온했습니다. 가운데가 뻥 뚫려 난간에서 홀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중앙 홀은 그 가운데 꽃마저 드문드문 화려하게 피어 있습니다. 당신은 불현듯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흉흉한 마왕성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마왕에게 잡혀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멍한 채로 당신은 발걸음을 옮깁니다. 잘못 찾아온 것일까요? 혹은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꿈 속일까요? 선한 누군가가 당신을 이곳까지 옮겨다준 걸까요? 아니면 이조차 마왕의 술수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입니다.
"탐사자."
호명하는 목소리. 고개를 들면 (KPC의 외모 묘사)가 서 있습니다. 어쩐지 마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황성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두려워하듯 이마에 난 뿔도, 뒤집어쓴 새카만 망토도, 박쥐의 것 같은 날개도 없습니다. 마주치고서 영원처럼 굳었던 당신. 순간 말이 없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당신의 앞에 선 그입니다. "놀랐어?"
"그래, 내가 마왕, KPC야."
그렇게 말하는 마왕은 당신을 보며 어쩐지, 조금 웃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RP. KPC는 현재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의 마왕을 자신이 맡았으니, ‘잊는 쪽’이 ‘둘이 싸우는 과정에서 하나가 죽어 다시 태어나게 되는 용사가 된다’는 정보 또한 자신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KPC 역시 이어져오는 괴로운 기억을 잊고 고작 성년이 되기까지라도 사람들 사이에서 축복받으며 자라는 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거나, 어느 정도 있습니다. 성향이 어떻든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자유로운 판정을 권장합니다. 심리학 다이스를 굴려 성공했을 시, KPC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망설이는 듯한 기색이라는 지문을 넣어주세요.
탐사자를 데려온 것은 자신이 맞다고 순순하게 대답해줄 수도, 그냥 마물들이 나한테 데려왔어~ 라고 능청스럽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용사인 탐사자를 살려둔 이유 또한 성향에 맞게 창의적으로 대꾸해주세요. (ex. 용사와 마왕이 만나는 건 제국의 빅 이벤트인데 이렇게 시시하게 끝낼 수 없지 않느냐! / 소문으로만 듣던 용사가 얼마나 잘생기고 아름다운가 한번 구경했는데… 그러다보니 살려놨다. 진짜 잘났더라. / 나는 정정당당한 승부가 좋다. 네가 그렇게 늘어져 있어서야 공평한 승부가 되지 않지 않느냐. 등…) 선 성향의 KPC라면 세상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제국 사람들의 생은 어렵거나 궁핍하지 않은가. 여전히 사람들은 선을 사랑하고 악을 증오하는가. 등의 마왕답지 않은 질문으로 탐사자를 혼란케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RP를 마쳤다 싶으면 탐사자를 성 안쪽으로 인도해주시고, 다음 지문을 진행해주세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해는 다 지고 완연한 저녁입니다. "괜찮다면 함께 식사를 하지. 마지막 만찬 같아 좋지 않아." 마왕, 그러니까 KPC는 엉뚱한 소리나 하며 당신을 다이닝 룸으로 인도하고……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성찬을 보며 당신은 잠깐, 놀랍습니다. 죽여야 할 상대와 이런 진수성찬을, 사이좋게 식사라니요!
*만약 차려져 있는 만찬의 메뉴 창작이 필요하다면… 힘을 냅시다 키퍼님! 다시 자유로운 RP. 탐사자가 싸우고 싶어하는 기색이라면… 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진정시킵시다. 그 말대로 물어뜯긴 곳마다 여전히 아프다는 지문도 쳐줍시다!
얼결에 이루어진 그 무시무시한 마왕과 용맹한 용사의 오붓한 식사시간을 끝마치고, KPC는 태연하게 말합니다.
"승부는 네가 조금이나마 나아질 내일에 보지, 용사. 나는 정정당당한 걸 좋아하거든."
"그 이전에 성이라도 구경시켜줄까?"
이제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저 치가 사악한 마왕이라니.
마왕은 식사를 끝낸 다이닝 룸과 연결된 홀과 계단을 오르면 당신이 있던 방으로 갈 수 있을 복도와 수많은 방, 그리고 복도 끝에 난 계단을 오르면 성의 탑으로도 갈 수 있노라 말합니다.
*중간중간 RP를 해주셔도 좋아요.
- 홀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실내 정원이 꾸며져 있습니다. 정원이라기엔 작은 규모지만, 어쨌건 무성히 핀 연분홍 장미는 천장과 수많은 창으로 들어오는 노을에 물들어 아름답네요.
교육 성공 시▶ ‘나의 마음 당신만이 아네.’ 별 뜻도 없을 마왕의 정원을 뒤덮은 꽃의 의미입니다. 마왕의 정원이라면 좀 더 악의 어리고 짙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지요. 생각보다 인간적인 그에게 생의 동반자라도 있다면, 혹은 그럴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꺾어 바칠 만도 했을 텐데요. 얕은 감상입니다.
교육 실패 시▶ 마왕의 정원이라면 좀 더 악의어리고 짙은 것들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인 면모. 보통의 사람 같은……. 얕은 감상만 스치고 지나갑니다.
*함께 윤회를 해왔다는 힌트입니다. 분위기상의 힌트이므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 복도
층계를 올라오면, 탐사자가 처음 문을 열고 나왔던 방의 복도입니다. 과연 마왕성이니만큼 크고 넓은 곳, 길게 늘어진 복도들의 방. KPC는 한 방 한 방 문을 가리키며 농을 던집니다. “자고로 마왕이라면 방 하나마다 시체라도 매달아놓았을 것 같지 않나?” 웃는 양에 문을 열어보면 그저 빈 방입니다. KPC는 복도 끝의 마지막 방에 대해서 입을 다뭅니다. “저기는 내 공간이니 들어가지 말았으면 해.” 금기가 걸리면 더욱이 호기심이 동하는 법입니다. 문틈으로 보이는 건……
관찰 성공 시▶ 언뜻, 안쪽에서 샛붉은… 색깔을 본 것도 같습니다. 문득 이곳까지 도달하기 전 자신이 흘리고 마물들이 흘렸던 피가 떠오릅니다. 그의 말대로 시체라도 매달았을까요. 무언가 끔찍한 짓을 자행한 장소가 이곳은 아닐까요. 의구심이 들지만, KPC의 앞에서 지금 열어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관찰 실패 시▶ 어두워 안쪽은 잘 보이지 않는군요. 의구심이 들지만, KPC의 앞에서 지금 열어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후 나오게 될 KPC의 기도실입니다. 탐사자 혹은 KPC가 영원의 회귀를 끊어내고 싶은 욕구에 미쳐 남겼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 탑
복도 끝에 난 계단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탑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뾰족하게 솟은 탑은 이제 별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는 하늘에 맞닿을 듯, 쏟아지는 별을 맞을 듯, 아득하게 높습니다. 성채는 검고 단단하게 막혀있습니다.
지능 성공 시▶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아까 성 안에서 볼 때에는 유리처럼 성의 천장이 투명했잖아요. 마치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은 위가 뚫린 상자처럼. *마왕성은 일종의 극장이라는 힌트로, 들여다보는 이들은 이계의 신들입니다.
지능 실패 시▶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아까 성 안에서 볼 때에는 유리처럼 성의 천장이 투명했는데 말이에요.
바람이 한 차례 붑니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희끗하니 당신이 건너온 숲과 강이 보이고. 날씨가 아주 좋은 날에는 민가가 어렴풋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서 불어온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이고 지나갑니다. 마왕은 묻습니다. 용사로 태어나 마왕을 만나게 된 소감은 어떠하냐고. 새삼스럽습니다. 탐사자가 어떤 대답을 하든 KPC는 그저 세상을 구하는 쪽답게 행동하라며 웃습니다. 기만인지 허세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터무니없는 조언. 마왕이 용사에게.
*KPC는 탐사자를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 이처럼 대합니다. 어느 정도 RP와 둘러보는 시간까지 끝난다면 다음 부분으로 진행해주세요.
“슬슬 피곤한가?” KPC가 묻고, 어깨를 으쓱입니다. “방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승부는 내일 보더라도.”
그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현실성이 없습니다. 이 순간에 당신이 피로할 수 있다는 것도, 돌아갈 방이 있다는 것도, 마왕이라는 자와 정당한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것조차. 당신은 휘적휘적 방으로 향합니다.
밤
침대에 다시 누웠지만 도무지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마왕의 소굴에서 편안하게 잠이 드는 용사라니.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마왕이 이상하게도 친숙한, 그러니까 꼭…… 황성의 이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그들과 똑같은 사람에 불과한 것 같다는 느낌이 차오릅니다.
……아뇨, 이럴 수는 없어요. 이런 건 있을 수 없어요. 당신은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 살아왔습니다. 그것만이 당신 생의 의미이자 목표이자 가치였는데. 마왕이 저런 사람이라면, 저토록 인간적이라면, 그리하여 당신의 '마왕'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저 먼 길을 한 명의 살인자가 되기 위해 온 셈입니다.
+190621
*위 부분을 진행하는 시점에서 탐사자가 곧바로 잠에 들어버려 수첩을 획득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되도록이면 마왕성 안을 둘러본 후 곧바로 밤의 지문을 출력해주시되, 탐사자가 바로 잠에 든다는 행동 지문을 보였다면 아래 회색으로 적힌 지문으로 전개해주세요. 피드백을 남겨주신 키퍼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잠이 든 혼곤한 몽중은 온통 깜깜합니다. 별빛조차 없는 밤에 당신은 오롯이 혼자 서 있습니다. 소리, 무언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네요. 알고 있는 목소리입니다. 용사님. 말합니다. 용사님. 소리칩니다. 마왕을 물리치셔야 해요. 이 제국의 자랑스런 용사여. 마왕을! 용사님! 용사님, 당신은 운명을, 운명을 지고 태어났잖아요. 당신의 생은 오로지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 이어져왔으므로, 그를 처단했을 때에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당신은 용사는 제국은 당신은 마왕은 세계는 운명은 당신은……
숨을 들이킵니다. 눈을 뜨면 아직 푸르게 어두운 하늘이 창밖에 펼쳐진 밤입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흐릅니다. 의무 같은 모든 것들을 떠올립니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된단 말입니까?
아니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불안이 몰려옵니다. 당장 그를 죽여야 한다는 광기에 가까운 강박이 발밑까지 차들어옵니다. 결국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등잔을 들고서 방을 나섭니다.
빛이 가득히 일렁였던 천장은 별빛조차 투과해내지 못하고 검습니다. 이렇게도 다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만치 암흑으로 뒤덮인 성 안. 홀에 피어있던 꽃향내는 기이한 마법 같고, 어슴푸레한 등불에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며 당신은 조심조심 복도를 걷습니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아주 느리게……,
"……서."
목소리입니다. 흠칫 멈춰섭니다. 누구일까요? KPC가 떠올랐으나, 이 넓은 마왕성에 KPC 혼자 뿐일까요? 당신은 기척을 죽이고 어두운 복도를 더듬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나섭니다.
아, 저 방입니다. 복도의 맨 끝에 있는 저 방입니다. 아까 KPC가 보지 말라 막았던 그 방입니다. 문틈으로 촛불처럼 가녀린 빛이 비칩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빛줄기를 따라 문에 바짝 붙어서면,
"……소서."
KPC입니다.
듣기 성공 시▶ "용서하소서. 제발 용서하소서……." 그리고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떨리는 문장 끝, 그가…… 울고 있나요?
듣기 실패 시▶ 무언가를 처절하게 빌고 있는 모습. 옹송그린 등에 발음이 묻혀 먹먹합니다. 왜, 문장 끝이, 젖어 있나요?
KPC가 일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듭니다.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신자가 아니라 제물처럼 초라하게 기도하며 꿇었던 무릎을 펴며 비틀거립니다. 돌아섭니다.
문틈으로 보이는 방 안. 시야가 한정적입니다.
은밀행동 성공 시▶ 열린 틈으로 당신은 방 안으로 들어섭니다. 인기척 없이, 돌아선 KPC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리고 등잔을 들어 방 안을 보면,
자세히 볼 필요도 없습니다.
'제발', '죽어', '죽여줘', '살고 싶어', '죽고 싶어',
……시커멓게 굳은 피입니다. 벽에 피로 온통 낙서가 되어 있습니다. 미치광이가 칠갑을 해 놓은 듯한 이 방에서 KPC는 무얼 기도하고 있던 걸까요. 인간의 피. 어두운 방. 그의 그림자를 다시 봅니다. 마왕. (SANC 0/1)
나아가려 했던, 혹은 물러서려 했던 당신의 발에 무언가 툭 걸립니다. 그 소리에 KPC가 섬뜩한 속도로 돌아봅니다. "너." 발밑을 보면 작은 수첩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든 등잔 아래가 어두워 KPC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떡할까요?
은밀행동 실패 시▶ 열린 틈으로 당신은 방 안으로 들어섭니다. 수월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무언가 발에 툭, 걸려 KPC가 섬뜩한 속도로 당신을 돌아보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너." 아래를 보면 작은 수첩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든 등잔 아래가 어두워 KPC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 (*탐사자가 수첩을 챙길 수 있도록 해주세요.)
KPC는 돌아선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당신을 응시합니다. 그와 마주한 지 처음으로, 생경하게도, 새삼스럽게도, 두려움이 치솟습니다.
정말로, 그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혹은?
*자유로운 RP. KPC는 이때에 탐사자에게 죽어 기억을 잃는 것 혹은 탐사자를 죽여 기억을 이어가는 것, 둘 중 어느 쪽이든 결정을 한 상태입니다. 심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굳이 신에게 비는 대사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예로 제 탁에서의 KPC는 ‘내가 이제 정말 마왕이라는 이름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누구도 내 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대사로 ‘나를 용서해’를 대체하였습니다. 저녁식사 때의 KPC보다 더 감정적인 롤플레잉을 해주시면 됩니다.
어느 정도 RP를 진행했다 싶으면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주세요.
“해가 뜰 거야.”
분노 어린 목소리가 내리누르듯 말합니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그믐입니다. 등불의 빛만이 아른거리는 성 안.
“그때 결말을 내지, 용사.”
이토록 많은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당신은 들어본 적 있습니까? KPC가 말을 잇습니다. 고개를 돌립니다. 시선의 방향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
……지금 당신, 무슨 마음인가요?
다시 방
당신은 방으로 돌아옵니다. 새벽은 아스라이 밝아지려 하는데. 등잔의 불은 여전히 미약하기만 합니다.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적은 기분입니다.
옹송그린 등, 보통의 사람, 마왕과 용사,
…문득,
지능 성공 시▶ 의문점이 밀려옵니다. 왜 세상의 끝이 이곳이라고 규정되었지. 마물들이 한 번이라도 여타 제국의 사람들을 공격한 적이 있나? 마물로 인한 실제 피해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나? 마왕은 꼭 나를 아는 것 같았다. 왜 그 오랜 세월 동안, 용사는 나 하나뿐이었나?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태어났다면, 마왕은?
수첩을 쥡니다. 등불에 비춰봅니다. 아주 오래된 종이냄새.
지능 실패 시▶ 아까의 수첩, 마왕의 것이었을까요. 수첩 안의 내용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펼쳐보면, 수첩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다음 내용은 KPC의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개변해주세요.
왜 나와 네가 선택되었는지의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운이 없어서라고.
……
마왕성은 너무 외로워. 아무도 없어.
……
축복받는 용사.
……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부러워하게 돼.
……
한 사람은 죽여 마왕이 되고 한 사람은 죽어 용사로 태어난다. 용사는 잊고 마왕은 기억한다.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지? 왜 하필 내가 그걸 물어봤을까. 왜 나만이 이걸 알고 있어 괴로울까. 왜 내가 너를 배신해서…… 나는…… 나는……
……
차라리 이러지 말았어야지. 자꾸 화가 나. 억울해. 몇 백 번의 삶을 이런 식으로 죽고 죽이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이 지긋지긋한 교환되는 운명. 이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 해도, 내가 용사가 되고 네가 마왕이 되는 것도, 내가 마왕이 되고 네가 용사가 되는 것도 너무 싫어. 우리가 죽고 죽어야만 모든 평화가 유지된다는 게 끔찍해. 그러나, 그러나……
……
나 네가 불쌍해. 나 내가 불쌍해. 탐사자.
……
탐사자.
네가 축복받는 용사가 아니라면.
네가 마왕이 된다면.
……
탐사자.
……
이건 영원한 저주야.
……
탐사자.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태어난다면, 마왕은? (SANC 1/1d3)
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습니다. 반대로 무언가로 꽉 차 버린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도구. 용사와 마왕이라 이름 붙여진 연극의 배우. 결코 무대 밖으로 내려갈 수 없는 인형극.
옛날 옛날에, 어떤 용사가 있었습니다. 용사의 사명은 마왕을 무찌르는 것이었고, 그 용사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면 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햇빛이 눈부시고, 찬연하게 비쳐오는 빛줄기를 따라서 시선 또한 따라갑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당신의 검을 스치고, 그 눈길 끝에,
어느새 열린 문 앞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마왕이 서 있습니다.
관찰 성공 시▶ 그의 손에 검이 들려 있습니다. 이것이 어떠한 용도인지, 당신이 모를 리 없을 텝니다.
관찰 실패 시▶ 그의 얼굴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던가요.
*엔딩 분기. 자유로운 RP를 권장합니다. KPC는 탐사자가 자신의 수첩을 보았음을 목격하였고, 진상을 어느 정도 파악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탐사자가 설명을 요구한다면 본인이 아는 만큼의 진상을 말해줍니다. 탐사자가 죽기로 결정했다면 Ending 1, 탐사자가 KPC를 죽인다면 Ending 2, 둘이 함께 죽기로 결정한다면 Ending 3으로 진행해주세요. 탐사자가 원한다면 전투를 진행하여 다이스값에 따라 엔딩을 갈라도 괜찮습니다! 오랜 RP 이후에도 탐사자가 결정하지 못하거나, KPC를 죽이지 않겠다 선언한다면 Ending 4 진행입니다.
엔딩
1. KPC가 탐사자를 죽이거나, 탐사자가 스스로를 찔렀을 경우
검날이 살갗을 가르고, 내장을 찢고, 피가 솟구치고, 고통이, 고통이, 고통이, 새카맣게 뇌리를 뒤덮습니다.
이걸 몇 번이고 반복해온 걸까요. 몇 번째 맞는지 모를 죽음은 여전히 아득하고 두렵습니다. 까무룩 어둠에 잠겨가며 당신, 당신의 모습만을 눈에 담습니다. 눈꺼풀 안쪽에 화상처럼 남깁니다. 내게 영원히 머물 상처여. 왜 눈물이 날까요. 이제와서. 영영 이어져온 기억.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갈 기억.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정해진 결말이라는 게 없었는데. 이렇게 또다시 뻔한 끝을 맞이함에도, 더없이 서럽다는 게 다만 기이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마왕이여. 내가 오래도록 배워온 악이여. KPC는 울지도 않는 얼굴로 무너지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기쁘겠지요. 결국 그가 바라는 대로, 혹은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그만하고 싶어. 처절한 문장이 심장 안에서 운명처럼 박동합니다. 죽어갑니다. 그 바람대로, 이번의 '용사'는 자신의 사명을 그만두었습니다.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당신은 태어나겠지요.
KPC가 문득 미련하게 웃습니다. 동이 틉니다. 하늘이 빛으로 밝아옵니다.
"다음에도 너는 축복받는 영웅이겠네."
때로 웃음이 눈물보다 더 묵직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표정 하지 마. 곧 잊을 거잖아."
나지막히 잠겨가는 마지막 순간.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이 세상이 끝나도 맞이하지 못할 평범하고 찬연한 순간들을. 고작 그것들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는데.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잃어버립니다. 영원히.
그리고 KPC가 건네는 말.
"다음 생에 만나자."
그때에 만난다면 나, 정의의 이름으로 당신을,
Ending 1. 용서치 않으니.
탐사자 ?, KPC 생존,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게……
2. 탐사자가 KPC를 죽일 경우
당신, 검을 들고 한순간 망설였던가요. 검을 쥔 손이 떨렸던가요. 속도 모르고 검날은 그의 살갗을 가르고, 내장을 찢고, 피가 솟구치고, …… 더운 피가 얼굴에 마구 튑니다. 아찔하게 붉은색입니다. 당신의 몸 안에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색의, 같은 온도의.
피로 점철되어 더럽혀진 시야를 깜빡이면 KPC는 천천히 무너집니다. 나무가 쓰러지듯 느리게. 영원처럼 느껴지는 찰나였지만 당신은 진짜 영원을 겪고 있잖아요. 이 정도는 결국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이 틉니다. 하늘이 빛으로 밝아옵니다. 그 빛나는 하늘을 받들듯 서서, 기실은 오롯하게 무너지는 당신의 모습만을 눈에 담습니다. 눈꺼풀 안쪽에 화상처럼 남깁니다. 내게 영원히 머물 상처여. 왜 눈물이 날까요. 이제와서. 영영 이어져온 기억.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갈 기억.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정해진 결말이라는 게 없었는데. 이렇게 또다시 뻔한 끝을 맞이함에도, 더없이 서럽다는 게 다만 기이합니다.
쿵,
그리고 시선을 떨구면, 마왕이여. 내가 오래도록 배워온 악이여. KPC는, 당신은, 울듯이 웃는데, 그 눈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무엇이 빠져 있는지, 이제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탐사자, 말해주세요.
우린 영원이잖아요.
다음 생을 또 운명처럼 맞이할 거잖아요.
마왕성이 밝아옵니다. 새로운 악, 마왕 탐사자가 고개를 듭니다. 눈을 감고 피에 젖은 시체를 다만 품에 끌어당기며,
나, 이제 죄악의 이름으로 당신을,
Ending 2. 함부로 끌어안노니.
KPC ?, 탐사자 생존,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게……
3. 탐사자와 KPC가 동반자살할 경우
우리는 함께 죽기로 했습니다. 검날은 그의 살갗을 가르고, 나의 내장을 찢고, 피가 솟구치고, …… 더운 피가 얼굴에 마구 튑니다. 아찔하게 붉은색입니다. 당신의 몸 안에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색의, 같은 온도의. 울컥이는 고통이 참담하게 가슴을 찢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온전하게 하나입니다.
동이 틉니다. 하늘이 빛으로 밝아옵니다. 그 빛나는 하늘을 받들듯 서서, 기실은 나와 함께 무너지는 당신의 모습만을 눈에 담습니다. 눈꺼풀 안쪽에 화상처럼 남깁니다. 내게 이 순간만 머물 상처여. 왜 눈물이 날까요. 이제와서. 영영 이어져온 기억.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정해진 결말이라는 게 없었는데. 죽음의 순간이 이토록 고통스럽고 기쁜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진작에."
KPC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어보이고.
"진작에 이럴 걸 그랬는데."
세계의 평화도 사람들의 행복도 우리의 영겁의 고통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수많은 생들이 우스웠던가요, 눈물이 나던가요, 그도 아니면……
"탐사자."
……문득 웅크려 기도하던 KPC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참혹 속에서 홀로 초라하게 손을 맞잡고 있던 당신. 여태 우리는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나요.
웃고 싶은 기분입니다. 왈칵 바보처럼 웃어버리고픈 기분입니다.
"다시는 보지 말자."
그러니 이것이 해피엔딩입니다.
영원이 고통이었다면 그 영원이 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없이 눈부신 결말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목숨이여, 나아가 세계여, 부디 용서하소서.
나, ■■의 이름으로 당신과,
Ending 3. 함께 몰락하겠나니.
탐사자, KPC 로스트. 세상으로 들이닥치는 마물―신화생물들.
4. 탐사자가 살해도 자살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
검을 떨어뜨립니다. 금속질의 소리가 바닥에 나뒹굽니다. 짧은 평생을 숱하게 무너지지 않게 세웠던 맹세는 저 검과 함께 바닥까지 추락하고 없습니다. 마왕도, 용사도 우리에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참담한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요? 도대체 왜, 우리가 왜 죽어야 하나요.
동이 틉니다. 아침은 속절없이 밝아오고, 하늘은 속도 모르고 환합니다. 그 빛나는 하늘을 받들듯 서서, 당신의 모습만을 눈에 담습니다. 눈꺼풀 안쪽에 화상처럼 남깁니다. 내 이 생 안에 머물 상처여. 생각해보면 당신과 나는 정해진 결말이라는 게 없었는데. 둘 중 하나를 살해해도 끝나지 않는 영원이라면 다 팽개칠 텝니다. 전부 버려버릴 겁니다.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걸요.
묵언의 의미를 KPC 역시도 이해한 것일까요. 토해내는 숨이 묵직합니다.
"그래."
KPC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어보이고.
"차라리 살자. 이렇게 살아."
이렇게 살아, 나와 같이, 나와 함께……. 세계의 평화도 사람들의 행복도 우리의 영겁의 고통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수많은 생들이 우스웠던가요? 왜 우리는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건가요.
"탐사자."
……문득 웅크려 기도하던 KPC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참혹 속에서 홀로 초라하게 손을 맞잡고 있던 당신. 여태 우리는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나요.
웃고 싶은 기분입니다. 왈칵 바보처럼 웃어버리고픈 기분입니다.
"나랑 살아."
Happily, ever, after. 현실에는 없는 결말을 행복하게Happily, 그 하나만 남겨놓고서라도 지워냅니다.
영원이 고통이고 닥쳐오는 것이 수많은 죽음이라한들 지금은 살아있을 테잖아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처음, 서툴게 도망칩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목숨이여, 나아가 세계여, 부디 용서하소서.
■■의 이름으로 당신도, 나도.
Ending 4. 지금만은 살아 숨쉬노니.
탐사자, KPC ? 세상은 언제까지 평화로울 것인가?
추천 BGM
DELTARUNE - The Legend (Orchestral Cover) :: https://www.youtube.com/watch?v=BJKzfdpCQDs (성)
Tristan Gray - Undertale Undyne The Undying (Epic Orchestral Suite) :: https://www.youtube.com/watch?v=yhNOXJxg_wE (변방)
Blessing Shrine - The Legend of Zelda Breath of the Wild Soundtrack :: https://www.youtube.com/watch?v=NWw8HWevTKA (탐사자의 방)
Bicameral Mind (Westworld Soundtrack :: https://www.youtube.com/watch?v=1Rf35iFeuI0 (마왕성)
All For One - Dark Wouls 3 Abyss Watchers Remix :: https://www.youtube.com/watch?v=5qY-gWF9AF8 (밤)
Vah Medoh Shrine B (The Legend of Zelda Breath of the Wild OST) :: https://www.youtube.com/watch?v=Pv3VxpKlXiU (복도 끝 방 안)
The Witcher 3 OST - Lullaby of Woe (A Night to Remember Song) :: https://www.youtube.com/watch?v=JFUsPfuwjpw (일기)
Kara Main Theme Detroit Become Human OST :: https://www.youtube.com/watch?v=uU7rnTG9QOA (엔딩 분기)
NieR Automata OST - Kainé Salvation :: https://www.youtube.com/watch?v=viDKam_hmGM OR 15 Nightmares & Arrange Tracks - Kaine / Duet ver :: https://www.youtube.com/watch?v=1zHS0RxcSDE (엔딩)
BGM을 추천해주신 페캣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__)
플레이하신 뒤 여유가 있으시다면 작성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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