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눈부셔서 그래
CoC 1:12020. 4. 25. 13:39최후는 가장 그리웠던 이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는데.
우리가 이 눈부신 아침에 그리운 얼굴을 한 운명을 맞는다면,
기어코 그 아침이 왔을 때,
내가 너로 인해 울게 된다면,
개요
어느 날이라고 말하기에도 무색한 날입니다. 당신에게는 이상하게도 연속성이 없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이름 없는 단면에서 갑자기 뚝, 잘려져 나온 것처럼. 무언가 끝이 났다는 조짐도, 시작했다는 기억도 없는 채로 당신은 문득 눈을 들었습니다. 새파랗게 물든 하늘, 새하얗게 번지는 햇빛,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눈을 깜빡입니다, 그리고 마주합니다. 영문을 모르는 눈으로 당신의 눈앞에 선 KPC. 그 손에 몹시 아름다운 꽃다발이 들렸습니다.
일순 당신은 깨닫습니다. 아,
나는 네 곁에 있어야 하는데. 네가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도 모르면서…….
CoC 7판 룰 기준
1:1 타이만 시나리오
인원 : PC 1인+KPC 1인
배경 : 현대 (별달리 시대를 타지는 않습니다.)
플레이 타임 : (ORPG 기준) 3~6시간
플레이 난이도 : 낮음
키퍼링 난이도 : 낮음~중간
권장 기능 : 관찰, 듣기
준 권장 기능 : 민첩 혹은 근력
※ 첫 팬 시나리오입니다…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키퍼링 및 플레이 예정인 분들께 감사의 말씀과 함께 양해를 구합니다.
※ 키퍼분께서는 플레이어분께 꼭 개요와 주의사항을 말씀드린 후 플레이 부탁드립니다. 플레이어를 속이고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 본 시나리오의 노룰북 키퍼링 및 키퍼링 커미션을 금지합니다. 본 시나리오에 연관되어 금전 거래가 오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세션카드에 한해 커미션 및 금전 거래를 허용합니다.
※ 롤플레이 위주의 시나리오이며, 크툴루 신화의 신화생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분위기 또한 원작 CoC나 기존 크툴루 시나리오에서 요구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전체적으로 잔잔함을 지향합니다.
※ 키퍼링 해주실 분을 따로 두고, KPC 역할을 하는 PC를 포함한 PC 2인으로의 개변이 가능합니다.
※ KPC와 PC의 백스토리에 기반한 자유로운 개변을 적극 권장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개변하여 플레이해주세요. 이에 대한 문의는 송구하오나 답변 드리지 않습니다.
※ 삶의 이유가 있는 PC를 추천드립니다. 또한 PC가 아무런 기억이 없는 상태로 시나리오가 시작됩니다.
※ PC와 KPC의 관계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관계라면 플레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친한 친구 정도면 무난한 플레이가, 혐오관계는 관계와 백스토리에 맞게 개변을 거친다면 색다른 플레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완벽한 해피엔딩이 없습니다. 또한, 다이스 결과에 따라 엔딩이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 본 시나리오에는 사망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시나리오에 대한 공계에서의 무례한 언행, 스포일러성 혹은 자작 발언의 발견 등 불미스러운 일의 발생 시 즉시 비공개 처리됩니다.
※ 플레이 로그, 후기 및 감상, 피드백, 그 외 문의는 @henceihateu의 DM이나 최하단의 폼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래부터 시나리오의 배경(스포일러)이 있습니다. 키퍼(GM)가 아니라면 열람을 삼가주세요.
진상
탐사자는 이미 한 번 죽었으며, 간절히 살아나기를 바랐습니다. 다시 봐야 할 사람이 있건, 전해야 할 말을 전하지 못해서건,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건, 그저 삶이 고팠기 때문이건. 그리고 기적은 늘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이가 바로 탐사자가 된 것일까요. 그는 정말로, '살아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억겁의 억겁에 한 번 주어지는, 한 개체가 아무런 조건 없이 가질 수 있는. 망자가 제 삶을 찾게 될 우연한 기회. 그러나 이 기회가 무산되지 않고 삶을 되찾으려면, 탐사자는 운명에 순응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보는 한 가지의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운명 앞에 선 인간의 최우선으로 여겨지는 덕목은 무엇일까요. 생명에의 선의일까요, 신실한 바람일까요, 혹은 신에의 신뢰일까요. 전부 틀렸습니다. 운명의 앞에서 인간이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한 발 물러선 방관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도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고 관조만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바꾸지 않고 그저 나 있는 길만을 걸어갈 수 있는지.
타의로 주어진 기회. 탐사자는 시험에 들어 살아있을 적의 모든 기억을 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래는 없어야 할, 없었어야 할 세상에서, 다시금 땅을 밟게 됩니다. 주어진 기간은 단 하루, 스물네 시간. 그동안 탐사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아무것도 하면 안 되며, KPC를 지켜봐야 한다는, 누가 내려주었는지조차 막연한 의무 그 둘만 기억하고서 자신이 죽은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KPC를 대하고, 마지막까지 곁에서 지켜봐야만 합니다. 바로 그 하루 안에 죽을 것이라 정해진 운명의 소유자이자 탐사자의 삶을 함께 했던 KPC를요.
이제 곧 살아날 탐사자가 맞게 될 운명은, 바로 KPC의 죽음입니다.
시나리오 본문
(키퍼용 정보는 앞에 *을 붙였습니다.
KPC의 모든 대사는 KPC의 성격에 맞게 변용해주세요.)
새벽, 동틀 무렵
감은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기어이 들어서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당신에게는 이상하게도 연속성이 없는 시간입니다. 무언가 끝이 났다는 조짐도, 시작했다는 기억도 없는 채로 당신은 문득 부신 눈을 들었습니다. 왜 이곳에 서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눈을 완전히 뜹니다. 낯선 곳입니다. 아니, 낯설다는 개념조차 지금의 당신에게는 낯설 테지요. 그야말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요.
당신이 그저 황망히 서 있는 그때, 목소리는 들려왔습니다.
"탐사자?"
모르는 이름을 부르는 KPC입니다. 시야에 붙박히듯 다가오는 표정이 어쩐지……. 무슨 표정인지 짐작하기도 이전에 눈앞에 선 사람의 이름이 먼저 떠오릅니다. 당연지사 그조차 낯설어야할진대 이 익숙한 얼굴이며 유일처럼 알고 있는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시선을 내려보면, KPC의 손에는 몹시 아름다운 꽃다발이 들려있습니다.
*KPC는 이미 죽은 줄로 알고 있는 탐사자의 묘지로 찾아가던 도중이었습니다.(죽음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자유롭게 조정해주세요.) 탐사자와의 관계가 어떠했건 놀랄 수밖에 없겠지요. KPC는 탐사자의 'KPC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말과 '그럼에도 KPC의 이름은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만큼 롤플해주시고, 탐사자가 죽었다는 사실은 감추거나 얼버무려주세요. 탐사자와의 관계가 어떠했다는 것은 이 부분이 아닌 이후에 '낮~저녁' 부분에서 언급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기억은 없지만 눈앞에 선 이의 이름만은 알고 있는 당신. 아마도 KPC가 부르던 '탐사자'는 당신의 이름인데다, KPC는 이전의 당신과 알고 있는 사이였던 모양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KPC의 낯 뒤로 당신은 문득 시선을 던집니다. 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떠오르는 해, 번지는 햇살, 밝아오는 하늘로 가닿은 것을 깨닫고서 KPC 역시 고개를 돌립니다. 우리는 꼭 이전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볕 속에 안온히 몸을 맡기고 먼 곳을 바라보고. …둘은 아주 잠깐 말이 없습니다. 평화롭습니다. 갑자기 어떤 이름 없는 단면에서 갑자기 뚝, 잘려져 나온 것처럼 낯설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 단편적인 세상 한 구석에서도, 당신은 알고 있는 이름을 꼭 운명처럼 만났지요.
운명처럼?
당신은 불현듯 머리가 찡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낍니다. 통증에 못 이겨 잠깐 비틀거리자, KPC가 당신을 다시 돌아봅니다. 왜 그래? 묻는 목소리 뒤로,
듣기 판정 성공▶ 당신은 선명하게 들었습니다. KPC의 것과는 전혀 다른 온도의 목소리가 겹치는 것을.
"―나는 네 곁에 있어야 하는데. 너는 내가 마주해야 할……"
……분명,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탐사자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SANC 0/1)
듣기 판정 실패▶ 당신은 흐릿하게나마 들을 밖에 없습니다. KPC의 것과는 전혀 다른 온도의 목소리가 겹치는 것을.
"―나는 네 곁에 있어야 하는데. 너는……"
……그건 대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요. (SANC 0/1)
*탐사자에게만 들리는 신의 시험 지령입니다. 무슨 말이나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고 탐사자가 묻는다면, KPC는 듣지 못했다고 대답합니다.
아침
희붐하게 밝아오는 하늘을 뒤로 하고, 둘은 거리를 나란히 걷습니다. 자신의 목적지를 탐사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로, 그저 오고 있었던 듯한 길을 이제 탐사자와 함께 되돌아가는 KPC는, 불현듯 탐사자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네줍니다.
"네 거야."
관찰 성공 시▶그런 말을 하며 건네는 꽃다발 뒤로, KPC의 얼굴이 복잡합니다. 슬픔? 아닌 것 같습니다. 당혹? 이것도 조금 틀린 것 같네요. 무엇이 KPC를 심란하게 만든 걸까요?
관찰 실패 시▶ 아름다운 꽃입니다. 향내가 옅으니 은은합니다. 어쩌면 KPC가 좋아하는 꽃일지도 모르겠네요.
*탐사자가 생전 좋아하던 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알고 계시다면 키퍼님께서는 꽃 이름을 넣어주셔도 무방합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침이니까요. 새벽 내내 뜸했던 바쁜 발자국 소리들도 하나둘씩 들리는군요.
"이제 그만 돌아가볼까. 할 일이 없어졌으니……."
탐사자, 너도 이제 돌아가자. KPC가 말합니다. 그러나 탐사자, 당신은 어디를 가야하는 거죠?
지능 성공 시▶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KPC와 자신이 돌아갈 곳이 어쩌면 완전히 반대방향이리라는 생각만 듭니다. 그리고 그곳은 당신이나 KPC의 집이 아닌, 좀 더 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자신이 KPC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직관과 함께.
어려운 성공 이상 시▶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KPC와 자신이 돌아갈 곳이 완전히 반대방향이리라는 생각만 듭니다. 그리고 그곳은 당신이나 KPC의 집이 아닌, 좀 더 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자신이 KPC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직관과 함께. 어쩌면 우리는 영영 함께 있을 수 있는 게 아닌 걸까요. 꼭 주어진 시간만큼만은 함께여야 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지능 실패 시▶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내내 자신이 KPC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직관 뿐.
멍청히 꽃다발을 들고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으려니 KPC가 묻습니다.
"…여기에 대한 기억도 아무것도 없어?"
그럴 수밖에 없지요. 탐사자가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하고 막연한 의무와, KPC의 이름뿐이니까. 머릿속에서는 아까의 그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립니다. 나는 있어야만 해. 네 곁에. 탐사자는 혼란스럽습니다. 다짜고짜 들려오는 이 목소리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그리고 자신이 함께 해야 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름뿐인 KPC라는 것도요. 왜 당신은 하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 사람을 만난 걸까요.
KPC는 탐사자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립니다.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기도 했지요.
"익숙했던 것들을 보면 기억이 날 지도 몰라."
"우선 길에만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
"…네가 기억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는 KPC는 먼저 발길을 돌립니다. 탐사자는 걸음을 옮기는 등을 보다가 그 뒤를 따릅니다. 어쨌든 지금 당신이 믿고 따라갈 이는 그밖에 없으니까요.
거리를 걷고 있자니 햇살이 곳곳에 쏟아집니다. 건네받아 손에 든 꽃다발의 향기는 썩 향기롭습니다. 그늘이 옮기는 걸음걸음마다 내려앉는 것이 평화롭고, 어쩐지 익숙합니다. 아니, 어쩌면 이 거리 전체가 기억이 있던 제게는 익숙한 것일지도 모르죠.
*이후 자유로운 롤플레이 시간을 줍니다. KPC의 태도는 여전히 미심쩍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탐사자를 완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기억 없이 살아돌아왔으니,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나, 오히려 KPC가 이성 롤을 해야 할(!) 상황임이 당연하지요. 그러나 태도에 탐사자가 끝끝내 아까까지 향하던 곳이 어디였나, 네가 숨기고 있는 것이 뭐냐, 추궁한다면 딱 잘라 잡아떼거나 하는 식으로 대답하지 말아주세요. 파이팅!
바람이 한 차례 붑니다. 그러고보면 거리 곳곳 심어진 나무에 꽃망울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니 딛고 선 계절은 봄이던가요. 꽃잎이 흩날리고, 향기가 코끝에 스치고, 당신은 앞서 걸어가는 이의 그림자를 봅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쳐가는 꽃잎들이 바닥에 그림자로 비치고. 흔들림없이 걷는 보폭과 달리 그림자가 흐려집니다. 노이즈 낀 형태처럼 불안하게 흩어집니다. (SANC 0/1)
관찰 성공 시▶ 그리고 그 그림자는, 이내 글자를 만들어냅니다. 들쑥날쑥하나 꽤 긴 문장입니다.
"Absurdum est ut alios regat, qui seipsum regere nescit."
이후 지능 성공 시▶ 라틴어 격언 중 이런 문장이 있었던 것 같지요. "자기 자신도 다스릴 줄 모르면서 다른 이를 다스린다는 것은 모순이다."
관찰 실패 시▶ 그림자가 이내 글자를 만들어냅니다. 짧은 문장입니다.
"Alea iacta est."
이후 지능 성공 시▶ 라틴어 격언 중 이런 문장이 있었던 것 같지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타인의 운명을 바꿀 수 없으리라는 신의 단언이자 탐사자의 의무에 대한 상기입니다. 주관적으로… 실패 시의 문장이 조금 더 두루뭉술한 접근이라 여겨 문장을 달리했습니다.
"왜 그래?"
KPC가 뒤돌아봅니다. 어느새 당신이 멈춰선 탓입니다. 그 사이 글자로 흩어졌던 그와 꽃잎들의 그림자는 간 데 없고, 오롯이 평온합니다.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KPC는, 손짓합니다.
"가자."
아, 기시감. 기꺼이 함께 오라 손짓하는 네 곁에 있어야 한다는 운명 같은 의무감이, 귓가에 속삭입니다. 혼란 속에 당신은 그럼에도, 발을 뗍니다. 그 곁을 향하여.
아까의 글자들은 무엇에 대한 전언이었을까요?
당신은 왜 그의 곁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낮
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이른 낮입니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허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걷다보면 드문드문 느껴지는 봄바람이 새삼스럽고, 바닥에 내리쬐는 햇빛이 눈부십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림자 끝을 밟듯 걷고 있던 차에 KPC는 갑자기 앞에서 멈춰섭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의 기색을 살피지만 당신을 돌아보는 표정이 그다지 심각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건너서 좀 더 가다보면 내 집이야."
KPC의 말에 앞을 보면, 아름다운 다리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장관이네요. 역시 앞서서 다시 걸어가는 KPC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눈에 담는 다리 위의 풍경이 사랑스럽습니다.
관찰 성공 시▶ 그러나 다리가 최근에 신설된 것 같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척 봐도 낡아보이는 데다 저기 난간이 군데군데 부서진 걸 보면 말입니다. 뭐,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있지만요. 다만 난간 너머를 보면 높이가 아찔합니다.
어려운 성공 이상 시▶ 그러나 다리가 최근에 신설된 것 같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척 봐도 낡아보이는 구석구석, 저기 난간은 군데군데 부서진 데다 아예 무너져 뻥 뚫린 곳까지 있으니까요. 뭐,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있지만요. 다만 난간 너머를 보면 높이가 아찔합니다.
관찰 실패 시▶ 다만, 낡은 난간 너머를 보면 높이가 아찔합니다.
"탐사자?"
어느새 멈춰서서 보고 있자니 KPC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고개를 들면 아름다운 낭떠러지 앞에 그가 황망한 얼굴로 탐사자를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할 말이 많아보이는 얼굴로 당신을 보았다가, 그만 입을 다뭅니다.
"위험하잖아." 한 마디만 남기고 다시 돌아섭니다.
*이후 엔딩 분기점에서 KPC가 떨어지게 될 지점(!)입니다. 또한 KPC가 관계상의 어떤 이유로든 탐사자의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임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KPC의 성격에 따라 자유롭게 개변하고 롤플레이할 것을 권장합니다.
KPC의 말대로 다리를 건너고, 또 어느 정도 거리를 지나다보니 늘어선 집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좁아지는 골목을 따라 모퉁이를 돌고, 걷다가, 계단을 오르고 나면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에 집 하나가 보이네요.
"저기야."
아무래도 이곳이 KPC의 거처인 모양입니다. KPC는 여상스레 문을 열고, 먼저 집 안으로 들어섭니다.
"들어와, 탐사자."
KPC는 탐사자가 들어오면 먹을 것을 내오겠다며 부엌으로 자리를 비웁니다. 거실과 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거실
깔끔합니다. (*KPC의 성격에 따라 어지럽혀져 있어도 좋습니다.) 소파와 테이블, 진열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소파
안락해보이는 소파입니다. 음… 어쩐지 잠이 옵니다.
정신력 성공 시▶ KPC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어놓고는 당신을 봅니다. "…나중에 여기서 자든가." 어쩐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입니다…….
정신력 실패 시▶ 탐사자는 그만 5분 동안 깜빡 졸아버립니다! 눈을 뜨면 KPC가 꾸벅 존 당신을 빤히 보고 있습니다. "소파가 맘에 들어?"
- 테이블
KPC가 쓰던 물건으로 보이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몇 개 얹혀져 있습니다.
관찰 성공 시▶ 찢어진 달력을 발견합니다. 동그라미 쳐진 날짜가 보입니다. 아래에는 (탐사자의 이름 첫 이니셜)이 적혀있네요. 그러고보니 오늘이 며칠이었죠?
(*방의 서랍을 봤을 경우) 아이디어 성공 시▶서랍에 있던 (물건)에 새겨진 이니셜과 같은 글자를 갖네요.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찰 실패 시▶ 먹다 남은 사탕 포장지를 발견합니다. KPC, 테이블 위 청소는 하는 걸까요.
*동그라미 쳐진 날짜는 탐사자의 기일이자, 오늘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KPC는 탐사자의 기일을 맞아 일찍 묘지를 다녀오려고 했습니다. 허사 아닌 허사가 되어버렸지만요. 관찰 실패 시 보게 되는 물건은 KPC의 성격이나 습관에 맞게 담배꽁초 남은 재떨이, 말라붙은 커피잔, 귤 껍질 등등…으로 바꾸어주셔도 좋습니다.
- 진열장
안쪽이 거울로 된 진열장입니다. 얼핏 거울 너머의 얼굴과 시선이 마주칩니다.
관찰 성공 시▶ 스스로의 눈. 같은 표정을 한다 싶더니, 창을 넘어온 햇빛이 얼굴에 닿습니다. 그 순간 기이하게 낯이 일그러집니다. 당신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는데. 뒤틀린 입술이 씹어뱉듯 입모양으로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어떻게? 무엇을? (SANC 1/1d2)
관찰 실패 시▶ 다름 아닌 스스로의 눈동자입니다.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 생소합니다.
*운명을 거스르지 말라는 신의 전언입니다.
- 방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가운데, (*마찬가지로, KPC의 성격에 따라 어질러져 있어도 좋습니다.) 침대와 책상, 책장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침대
안락해보이는 침대입니다. 음… 어쩐지 잠이 옵니다.
정신력 성공 시▶ 얼른 침대에서 일어납니다! 후, 하마터면 졸 뻔했어요.
정신력 실패 시▶ 탐사자는 깜빡 꿈을 꿉니다. 선잠입니다. 잠깐 눈을 감았을 때 펼쳐진 곳은 다름 아닌 안온한…… 묘지? 여긴 누구의 묘지죠? 다시 눈을 뜹니다. 돌아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숨을 들이킵니다. 잠깐인데도 이상한 꿈을 꿨네요. (*탐사자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힌트입니다.)
- 책상
서랍은 두 개입니다. 두 번째 서랍을 열어보니 안쪽에서 (탐사자의 이니셜)이 새겨진 (물건)을 발견합니다. (*탐사자의 유품입니다. KPC가 멋대로 가져왔다거나 죽기 전 탐사자가 줬다거나의 설정은 둘의 관계에 따라 재량껏 마련해주세요. 어차피 탐사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달력을 봤을 경우) 아이디어 성공 시▶ 달력에 적혀있던 이니셜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네요. 달력 역시도 물건의 주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책장
관찰/자료조사 성공 시▶ 수없이 꽂힌 (*혹은 듬성듬성 꽂힌, 역시 KPC의 성격에 따라 자유롭게 개변해주세요.) 책들 사이에서, 아까 길 위에서 본 격언, Absurdum est ut alios regat, qui seipsum regere nescit. / Alea iacta est. 이 책등에 새겨진 책 하나를 발견합니다. 펼쳐보니, 두께가 무색하게도 온통 백지입니다. 아, 맨 뒷장에만 내용이 있네요. 쓰인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쓰디쓴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믿는 것, 숙명에 복종하는 것, 시간이 항상 파괴라는 비극적 과정을 시작하려고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자, 이것이 바로 실존의 냉혹한 표현들이다. 그렇다면 없음이 구원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어떤 구원이 가능하겠는가? 존재 속에서 거의 불가능한 구원이 어떻게 존재 밖에서 이루어지겠는가?
(*에밀 시오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p49. 숙명에 복종하는 것이 탐사자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답이라는 힌트입니다.)
얼추 집 안을 둘러봤다고 생각했을 때에 KPC는 부엌에서 쟁반을 들고 나옵니다. 입맛을 달랠 만한 군것질거리들입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햇볕이 따사롭고, 한낮의 공기는 나른하고. 어쩐지 꿈결 같습니다. KPC의 분위기도 처음 마주쳤을 때보다 한층 풀어져 보이네요.
(*자유로운 RP. 탐사자에 관해 탐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제외, 무슨 이야기를 하셔도 좋습니다. 이 물건은 네 물건이었다,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언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 관계였다… 등. 탐사자의 죽음에 관해서는 다만 언제부턴가 네가 보이지 않았다는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려주세요. 저녁 시간이 오기까지 오래… 끌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190407
(*플레이 중 키퍼 분께서 유품을 탐사자의 소지품으로 설정했으나, 탐사자가 이미 해당 소지품을 가지고 있어 복제품을 가진 상황이 벌어졌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탐사자의 것은 '형태'에 지나지 않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어째서 같은 것이 두 개가 있는지, 의문스러운 지문을 넌지시 던져주셔도 괜찮습니다. 피드백을 남겨주신 키퍼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녁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어스름 다 지는 저녁입니다. 이제는 식어버린 찻잔을 쥐고서 테이블 위 올려놓은 꽃다발, 꽃잎을 투명하게 비추는 붉은 햇살을 바라봅니다. 쿵, 쿵, 여상스러워야 할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요란할까요. 왜 이다지도 이 하루는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새삼스러울까요.
"오늘은 여기 있다 가."
KPC가 해 다 지는 하늘을 봤다가 고개를 돌립니다. 한 명은 여기서 자면 되기도 하고……. 소파를 턱짓으로 가리키더니, 이제 빈 쟁반을 다시 들어올려 부엌으로 향했다가, 문득 탐사자를 돌아봅니다.
"탐사자."
"아픈 데는… 없지? 괜찮은 거 맞지?"
(*KPC의, 탐사자가 이제는 정말 살아있다고 믿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탐사자의 대답 이후 자유로운 RP. 함께 저녁을 만드는 설정이어도 좋겠네요!)
아무렇지 않게 저녁식사를 하고, 그릇을 씻고…… 지나치게 일상적인 오늘 하루. 창문 너머를 보면 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전의 것들을 알려주려고 하는 KPC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막연한 안도감에 싸인 채 당신은 잠에 듭니다.
밤
밤은 적요합니다. 달빛이 어슴푸레 창으로 들어옵니다. 아니, 창인가요? 당신은 문득 당신이 더이상 KPC의 집 안이 아니라 이슬 맺힌 잔디밭이 맨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어두운 바깥에 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 기억이 끊긴 걸까요? 언제 이곳까지 오게 된 걸까요?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듯 아침에 지나온 그 거리보다도 이 어둠에 잠긴 그늘 속이 익숙하다는 것을 불현듯 느낍니다. 이상하지요.
관찰 성공 시▶ 안개 속 흐릿한 시야에 묘비가 둘 보입니다. 오래된 묘비 앞에 꽃다발이 올려진, 그러나 파헤쳐진 묘지가 하나, 그리고 그 옆에는 출생 날짜는 적혀 있으나 사망 날짜가 적히지 않은 묘비가 하나.
어려운 성공 이상 시▶ 안개 속 흐릿한 시야에 묘비가 둘 보입니다. 오래된 묘비 앞에 꽃다발이 올려진, 그러나 파헤쳐진 묘지가 하나, 그리고 그 옆에는 사망 날짜를 살펴보면 그 주인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묘비가 하나. …올려진 꽃다발이 어쩐지 기시감이 듭니다. 네 거야, 라고 KPC가 건네지 않았던가요. 오늘 아침에 그가 주었던 바로 그 꽃다발처럼 보이는데.
관찰 실패 시▶ 안개 속 흐릿한 시야에 묘비가 둘 보입니다. 하나의 무덤은 파헤쳐져 있는 것 같은데……?
(*진실을 보여주는 환상. 파헤쳐진 묘지는 탐사자의 것, 날짜가 적히지 않은 묘지는 곧 죽게 될 KPC의 것입니다.)
헉, 하고 숨을 들이킵니다. 눈을 뜨자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이 새카맣게 밤에 젖은 천장이 보이네요. 몸을 일으키면 등줄기에 땀이 흐릅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안합니다. 쿵, 쿵, 생소하게 뛰는 심장. 노을이 질 때에 느꼈던 안도감은 어디 가고, 당신은 유령처럼 초조감에 바깥으로 나옵니다.
봄밤은 아직 상냥치 않아 차갑고, 그저 적요합니다. 꼭 몽중에 겪은 것처럼요. 달빛이 어슴푸레 길 위에 흩어지고, 당신은 KPC와 함께 걸었던 길을 기억하며 되돌아갑니다. 아니, 기억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아마도 KPC가 끝까지 걸어가려고 했을 길을 걷게 되었으니까요. 어쩐지 운명처럼. 또다시, 운명처럼. 왜 운명이라는 단어는 이다지도 불시에 다가와서 받아들이게 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발길이 멈춥니다. 거짓말처럼, 꿈속에서 본 듯 같은 풍경입니다. 흐린 안개 너머…… 그러나 묘지는 그 어느 곳도 파헤쳐진 데 없이 온전하네요.
당신의 이름.
KPC가 불렀던 당신의 이름이 묘비에 새겨진 것만 제외하면, 그 무엇도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평화롭습니다. (SANC 1/1d3)
그래요, 당신은 망령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늘 내내 KPC의 손을 제대로 잡아본 적이나 있었던지요. 그는 살고, 나는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왜 하필? 심장박동처럼 의문이 뇌리로 쿵 쿵 찾아들고,
휘청휘청 돌아가는 길 내내 달빛이 하얗게 이울어집니다.
다시 새벽
…당신은 KPC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동틀 무렵은 가까워져 가는데, 잠들어 가만히 숨쉬는 양을 보고 있자니 심경이 복잡합니다. 왜 그는 말하지 않았을까요. 당신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구태여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애써 상기하지 않으려 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을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 KPC 자신을 위해서였을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는 왜 다시 살아올 수 있게 된 것일까요. 신의 변덕이라도 되는 걸까요. 내내 머릿속을 떠돌던 막연한 의무는 무엇이었을까요.
창틈으로 들어온 새벽 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훑고 지나가고,
그 순간, KPC가 일어납니다. 당신과 눈이 마주쳤나요?
……아니, 그는 곧바로 시선을 돌립니다. 탐사자? 당신을 호명합니다.
"탐사자?"
어디 있어? 여기 있다고, 내가 보이지 않느냐고, 아무리 말해도 그에게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 데서도 당신을 찾지 못하고, 혹은 모든 곳에서 당신을 외면하고서, 어이없이 KPC는 급하게 겉옷을 주워입고 나갑니다. 당신은 서둘러 그를 따라 나갑니다. 새하얗게 번져오는 장밋빛 하늘, 아름다운 새벽.
그리고 움트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빠르게 걷다 멈추고, 다시 걷다 또 멈추고, 당신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KPC의 옷자락이 흔들립니다. 당신은 어느덧 당신보다 앞선 그가 낡은 다리 가장자리를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리저리 옮기는 시선이 그가 나아가는 걸음과 정반대를 향했던가요.
―,
당신을 호명하는 목소리가 한 마디 잘립니다. 숨이 멎는 것 같습니다.
그 발이,
부서진 난간 사이 거짓말처럼 허공을 딛었습니다. 보았습니다. 낭떠러지입니다. 저 너머는 죽음입니다. 까마득하게 추락합니다.
충격적으로 눈이 마주칩니다. 왜 이제서야 보였을까요. KPC가 당신에게 손을 뻗습니다. 머릿속이 미친 듯이 환상으로 혹은 보았던 것으로 점철됩니다. KPC가 건넸던 꽃다발, 운명, 낡은 다리에 쏟아지는 볕과 꿈속에서 보았던 또 하나의 묘비,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마, 아무것도," …….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 당신은―
*엔딩 분기입니다. KPC는 추락하기 직전에 탐사자를 향해 손을 뻗는 지문을 올려주세요. 이 때 탐사자가 KPC를 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ENDING 1, 구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민첩/근력 다이스를 굴리게 해주세요. 성공했을 시 ENDING 2, 실패했을 시 ENDING 3으로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엔딩
1. 탐사자가 KPC를 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거나 못했을 시
숨이 멎는 것 같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눈앞이 흐립니다. 상기합니다. 내게 쏟아지던 모든 메시지들을. 운명을.
나는 죽지 못하여 혹은 살지 못하여 네 눈앞에 나타난 망령이고, 그리하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이 눈부신 날에 KPC 당신은 내 눈앞에서 죽는 거라고. 신의 변덕이든 장난이든 혹은 원래 그런 이야기든, 그래서, 그럼에도, 그리하여, 우리는 애초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하필 마지막 호명이 나여서, 그것만이, 서러운 것이라고.
뒤늦게 손을 뻗어보지만 손끝이 닿을 리 만무합니다. 햇빛이 눈부시게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는데,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아닌 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온 세상을 전부 울리는 듯이 크게, 당신의 귀에만 속삭이는 듯이 작게.
"정답을 택했구나."
곧이어 모든 기억이 밀물처럼 들이칩니다. 죽은 당신,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은 당신, 시험에 든 당신, '운명 앞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던'…….
이 사랑스러운 날에 운명으로, 그는 죽고 당신은 삶을 되찾습니다.
몸이 빛납니다. 햇빛 속에 녹아들듯, 그러나 다시 숨쉬듯 돌아오는 감각이 눈물나게 익숙합니다. 그립습니다. 이제 그리운 것은 다만 생뿐만이 아니게 되었으나,
눈 감습니다. 선서하듯이 욉니다. 기도하듯 맹세합니다. 삶의 어느 저편에서라도, 오래도록, 나는.
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증언할게.
Ending 1. 내가 네 앞에서 울게 된다 해도
탐사자 생존, KPC 로스트.
2. 탐사자가 KPC를 구하려 했고, 민첩/근력 성공 시
땅을 박찹니다. 아무 이유도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손을 뻗습니다. 탐사자. KPC의 호명이 귓가에 들어차고, 그 다음 순간, 손이 손을 끌어당겼던가요. KPC가 숨을 들이킵니다. 와락 품에 안기는 체온, 지면 위로 극적으로 쓰러집니다.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아, 꽃향내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눈부신 봄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햇빛은 눈부시게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는데,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아닌 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온 세상을 전부 울리는 듯이 크게, 당신의 귀에만 속삭이는 듯이 작게…… "기어이 운명을 바꿨구나."
모든 기억이 밀물처럼 들이칩니다. 죽은 당신,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은 당신, 시험에 든 당신, '운명 앞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던'……. 문득 당신은 당신의 모습이 발끝부터 흐려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KPC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나요, 혹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당신을 잡으려 하나요. 어느 쪽이든 결말이 뻔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웃음이 납니다. 이 사랑스러운 날에 운명을 거슬러, 그는 생을 걷고 나는 다시 돌아갑니다.
"탐사자."
명징하게 새겨지듯 박히는 이 이름을 듣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봄 아침,
네가 눈물이 난다면,
그건 그저 아침이 눈부셔서 그런 거라고.
Ending 2. 네가 내 앞에서 울게 된다 해도
탐사자 로스트, KPC 생존.
3. 탐사자가 KPC를 구하려 했고, 민첩/근력 실패 시
땅을 박찹니다. 아무 이유도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손을 뻗습니다. 탐사자. KPC의 호명이 귓가에 들어차고, 그 다음 순간, 끌어안았던가요. 그러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우리는 엉겨붙어 함께 추락합니다. 운명처럼, 운명처럼……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아, 꽃향내입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눈부신 봄입니다. 이 눈부신 봄에…….
다리 위로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햇빛은 눈부시게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는데,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아닌 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온 세상을 전부 울리는 듯이 크게, 당신의 귀에만 속삭이는 듯이 작게. "그건 틀렸어. 너는 영원히,"
모든 기억이 밀물처럼 들이칩니다. 죽은 당신,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은 당신, 시험에 든 당신, '운명 앞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했던'…….
"탐사자."
호명이 들려오면,
… 다음 순간 우리는 그 날입니다.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무언가 끝이 났다는 절망도, 시작했다는 초조도 분명 여기에 있었는데. 당신은 문득 눈을 들었습니다. 새파랗게 물든 하늘, 새하얗게 번지는 햇빛, 눈을 깜빡입니다, 그리고 마주합니다. 영문을 모르는 눈으로 당신의 눈앞에 선 KPC. 그 손에 몹시 아름다운 꽃다발이 들렸습니다.
아,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은 생만큼이나 찬란하고, 너는 낯선데, 낯선 만큼 그립고, 그리운 만큼 살아 숨쉬는 것이 당연한데…….
왜 우리의 기도는 끝나지 않을까요.
Ending 3. 다만 햇살이 눈부셔서, 눈물나서
탐사자, KPC 로스트. KPC가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 안의 루프의 시작.
추천 BGM
고희든 - LAPUTA :: https://www.youtube.com/watch?v=1M5A6b0_1UY (전반적 테마. 들으면서 썼습니다…)
Chouchou - Anemone (piano ver.) :: https://www.youtube.com/watch?v=SBS7IJxKYvA (아침 부분)
Paniyolo - Color :: https://www.youtube.com/watch?v=Cl8a9b76GMg (낮 KPC의 집~저녁 부분)
Hiroyuki Sawano - floWER :: https://www.youtube.com/watch?v=kLj_lsFb5Us (밤 묘지~끝부분)
플레이하신 뒤 여유가 있으시다면 작성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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