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est, Tempest (UD)

Unsung Duet2021. 6. 22. 22:02
그 누가 치는 파도를 얼어붙게 할 수 있나요
누가 데인 자국을 사라지게 할 수 있나요
누구도 나만큼 그대를 사랑할 순 없어요 미워할 수 없어요

심규선, 폭풍의 언덕 中

 

 

 

@TaoistFariy님이 제작해주신 카드입니다.

 

 

 

플레이어 개요

 

 

단 한 순간도 마음에 들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발을 내딛는 곳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세계관이 정립됩니다. 푸른 하늘을 원하면 그 무엇보다 청명한 창공이 펼쳐지고, 바다가 보고 싶어지면 그저 몇 발 더 걸어가 쓸려오는 파도 끝에 포말이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곧장 옆에 있고, 갖고 싶은 것은 발에 흔하게 채일 때에. 당신이 무엇을 원해도 이루어주는 세상이 언제부터 이러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두가 당신을 애정하고 아낍니다. 단 한 명만 빼고요. 당신이 그 이름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하늘이 찢어지고 바다가 갈라져 소용돌이치는 폭풍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습니다. 정신까지 어지럽히는 흉포한 바람을 마주했을 때, 들었습니까. 그 목소리를.

"바인더." 당신은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압니까. 모릅니까. 기억할 수 있습니까.   

 

 

 

 

 

 

 

 

 

Unsung Duet 팬 시나리오

배경 : ?

예상 소요 시간 : 3시간 내외 

이계의 발생 원인 : 미지의 존재의 고의성과 바인더

시프터×바인더 추천 관계 : 애증 혹은 혐오

 

 

 

 

 

 

 

※ 본 시나리오는 드라코니언 및 주식회사 KADOKAWA가 권리를 보유하는 UNSUNG DUET의 라이선스를 도서출판 초여명이 받아 만든 언성 듀엣 한국어판의 2차 창작입니다. 여전히 미숙한 부분 양해 부탁드립니다.

※ 본 시나리오에 연관되어 금전 거래가 오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세션카드에 한해 커미션 및 금전 거래를 허용합니다. 물론 이미지는 절대 필수가 아니며 부담되지 않게 즐기는 게임이라는 점 꼭 명심해주세요.

※ 시프터와 바인더의 백스토리에 기반한 자유로운 개변을 권장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개변하여 플레이해주세요. 이에 대한 문의는 송구하오나 답변 드리지 않습니다.

※ GM분이 바인더의 백스토리에 관해 잘 알고 있으시다면 진행이 수월합니다.

※ 시프터와 바인더의 관계는 애증, 쌍방 혐오, 일방 혐오 등 어느 정도의 껄끄러움이 있거나 적어도 시프터가 바인더를 온전히 애정하지만은 않는 관계를 추천합니다. 물론, 개변을 통하여 상기한 관계가 아닌 캐릭터들로 플레이하시는 것은 늘 그러했듯 자유롭습니다. 시나리오 내에서 캐릭터들의 감정과 태도가 다소 강제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기존 캐릭터들이라면 AU 개념으로 가볍게 즐겨주세요.

※ 본 시나리오는 싱어송라이터 심규선(Lucia) 씨의 노래 <폭풍의 언덕>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해당 곡이 전반적 분위기를 설정하는 데 토대가 되고 가사의 일부를 변용하였으나, 이로써 원작자의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침해할 의도가 일절 없음을 밝힙니다. 한번씩 들어보시고 마음에 드셨다면 음원을 구매하시는 것을 매우 추천드립니다! 같은 이유로 본 시나리오는 불미스러운 일이 없는 한 영구 배포로 둘 생각입니다.

※ 한쪽은 무조건 로스트합니다. 관점에 따라 완벽한 해피엔딩이 없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없는 것 같습니다.)

※ 테스트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않은 대신, 시나리오 하단에 플레이 타임 수집 폼이 있습니다. 플레이를 하셨을 시 평균 플레이 타임 명시와 이외 더 나은 방향으로의 수정을 위해 작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본 시나리오에서는 이계와 미지의 존재에 대해 독자적으로 창작, 해석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 본 시나리오에 대한 공계에서의 무례한 언행, 스포일러성 혹은 자작 발언의 발견 등 불미스러운 일의 발생 시 즉시 비공개 처리됩니다.

※ 플레이 로그, 후기 및 감상, 피드백, 그 외 문의는 @henceihateu의 DM이나 최하단의 폼으로 부탁드립니다.

 

 

 

 

 

 

 

 

 


아래부터 시나리오의 배경(스포일러)이 있습니다. GM이 아니라면 열람을 삼가주세요!

 

 

 

 

 

 

 

배경(이야기)

 

 

 

여기, 미지의 존재가 사랑한 바인더가 있습니다. 이계를 보는 눈을 가진 시프터가 아닌, 평범한 사람인 바인더를 사랑하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터무니없습니다. 그가 무엇에 감응하는지 한낱 인간의 식견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바인더가 이계에게 먹힌 이후, 이계심도 5의 챕터부터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바인더는 이계에 이미 삼켜졌습니다. 미지의 존재는 이계를 새로 구축하며 바인더에게 마약 같은 환각을 선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랑 하나로 세계를 전부 새로 만들어내고 변형시키거나 혹은 파괴하여 자신 안의 바인더를 위한 환경을, '새로운 이계'를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바인더는 이계의 안에서만큼은 세계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환락 속에 죽어가는 것은 얼마만큼의 행복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바인더의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이야기의 기쁨만큼은 바인더가 가져가나, 싸구려 비극적인 부분부터는 바인더, 당신의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나머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인더가 그것에게 삼켜진 직후 바인더보다 한 발 늦게 그것에게 휘말린 시프터입니다. 시프터는 삼켜지는 탐사자를 목도하여 아주 당연한 인간의 도리로 당신을 구하기 위해 손을 뻗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인해 위험에 처해지는 당신을 보지 못하겠다는 증오스러운 이유로 기인했을 수도 있겠죠. 어쩌면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운 없이 가까이에 있었기에 함께 휘말려버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건 당신, 당신에 의해 시프터는 우연으로 이계에 빨려들어갔고, 그리고 당신에게와 달리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환희와 사랑으로 가득 찬 세계 안에서 시프터는 늦게 찢어지고 망가지고 으깨지고 조각조각 빨리면서…… 당신을 저주하면서…… 마침내는.

그것처럼, 혹은 그것이 만든 세계처럼,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세계에 의해 죽어가며 세계에 강제해 그 세계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고문입니까. 그리하여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세계관이란 것은 도대체 어떤 법칙입니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세계가 당신을 위해 치는 파도와 타는 불꽃을 얼어붙게 하고, 당신의 데인 자국을 사라지게 하고, 오로지 당신을 위해서 꺾인 꽃들이 춤을 추게 하여도, 그럼에도. 같은 세상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던 시프터만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당신을 진실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일 겁니다.

비이성적인 감정을 감지하고 시프터는 페이즈시프터의 눈으로 자신과 바인더를 죽이는 이 세계의 중심에 바인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롯이 이 세상이 바인더를 위한 것임을 마침내 지각했습니다. 바인더를 사랑해 마지않는 세계 속에서 자신이 아직 바인더를 완전히 사랑하지 않음을, 혹은 사랑하면서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증오할 수 있음을 증거로 삼으며 시프터는 이 세계에서 나가기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탈출구를 찾았으나, 그것은 시프터를 위한 이계는 아니고, 마침 들어온 시프터를 양분 삼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므로, 결코 시프터를 위해 출구를 열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바인더가 원한다 해도 바인더를 내보내지는 않을 테지만, 사랑하는 바인더가 이 세계의 '불순물'인 시프터가 추방되기를 원한다면, 아직 덜 씹어먹은 그를 자신의 바깥으로 내보내줄 수는 있겠지요. 

이제 알겠습니까. 이 사랑스러운 세계의 신은 당신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그를 이계에 붙잡아두며 함께 추락할 수도 있을 겁니다. 미워하므로 나락에 묶어둘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당신을 미워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하도록 폭풍의 바깥으로 영영 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도 아니면 사랑하므로 기꺼이 안온한 진짜 세상으로 살려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찢기고 흔들려도 당신은 폭풍 속에서,

 

 

 

 

 

 

 

 

 

 

시나리오 본문

(*마스터용 정보, 롤플레이 지침에는 앞에 *을 붙였습니다.
시프터의 모든 대사는 시프터의 성격에 맞게 변용해주세요.)

 

 

 

 

 

 

 *시나리오 특성상 바인더만 판정해야 하는 구간이 잦습니다.

 

 

 

CHAPTER 1: 별빛이 낮은 언덕 위를 휘감아 돌 때면

이계심도 5


 

 

 상황설명

 

당신은 밤의 언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믐입니다. 달 없이 낮은 언덕 위에 별빛만 하염없이 쏟아집니다. 당신이 선 길은 오로지 외줄로만 나 있습니다.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터라 어디까지인지도 짐작되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단 한 순간도 마음에 들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발을 내딛는 곳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세계관이 정립됩니다. 푸른 하늘을 원하면 그 무엇보다 청명한 창공이 펼쳐지고, 바다가 보고 싶어지면 그저 몇 발 더 걸어가 쓸려오는 파도 끝에 포말이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곧장 옆에 있고, 갖고 싶은 것은 발에 흔하게 채일 때에. 당신이 무엇을 원해도 이루어주는 세상이 언제부터 이러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이 밤을 원했기 때문에 밤이 온 것처럼 세상이 어둡습니다. 별은 빛나며 하늘로부터 부서져내립니다. 적요한 밤, 당신, 걷습니다. 밤의 세상은 어두운 대로 또 아름답습니다. 

이토록 세상의 모두가 당신을 애정하고 아낍니다. 단 한 명만 빼고요. 

 

……단 한 명?

 

당신이 그 이름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몰아쳐오는 소용돌이치는 폭풍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은 전부 소멸되고 정신까지 어지럽히는 흉포한 바람을 마주했을 때, 들었습니까. 그 목소리를.

 

"바인더." 

 

들은 음성은, 누구의 것입니까?

떠올린 것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당신은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압니까. 모릅니까. 기억할 수 있습니까. 바람이 붑니다. 음성인지 바람인지 모를 것이 청각에 여과 없이 스밉니다. "―바인더!"

 

당신,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압니다. 이다지도 증오스럽게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하늘 아래 단 한 명뿐이지 않습니까.

 

바람에 섞여 다시 한 번, "시프터," 호명하는 목소리는 다음 순간이면 그 숨이 끊어질 것 같고, 한 차례 미친 듯한 바람이 주변의 모든 것을 흩뜨리고 나면 정적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폭풍이 한 차례 쓸고 간 길 위는 언제 평화로웠냐는 듯이 온통 쓰러진 억새와 풀들, 찢긴 꽃과 파인 구덩이로 엉망입니다. 그러나 시선을 계속 거기에 두면, 곧 알게 됩니다. 서서히 찢겨진 꽃잎은 떠올라 붙고 누운 풀은 다시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흙무더기가 유령처럼 길 위에 쌓여 원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을 말입니다. 소리 없이, 스르륵 스르륵…… 그 모양이 한 번쯤은 상상했을 시간을 되돌리는 것과는 또 달라 기이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정처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요. 문득 소리 없이 빛이 번쩍입니다. 검은 하늘의 번개입니다. 오래도록 번쩍이던 것이 왜 붙박힌 자국처럼 같은 자리에만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번개는 위에서 내리꽂듯이 한 번 그어진 채로, 계속 그곳에 있다가 검게 물들듯 밤하늘에 녹아 사라집니다. …원래 저런 식의 현상이던가요?

 

시프터를 비롯한 무언가를 떠올리려 한다면▷ 언제부터 이 세계가 이런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까. 정확히 어떤 시점부터 그러했는지. 태어날 때부터 이러지는 않았잖아요. 당신의 기억, 스쳐갔던 사람들의 목소리, 겪어온 어떤,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들……, (*바인더의 백스토리를 묘사해주세요. 고난이 있는 바인더라면 그 불운이나 불행을 중점으로, 마냥 사랑받지 못한 기억을 특징적으로 묘사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온전히 사랑만 받는 이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도록요. 대신 시프터와 연관되는 기억이라면 어느 정도는 후반을 위해 아껴주세요.)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은 이토록 온 세상의 친애를 받고 있단 말입니까? 혼재하는 세계관이 어지럽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 폭풍처럼 순식간에 당신을 휩쓸었다 사라진 그 음성. 분명 주인을 알 수 없는 그 호명에 담긴 감정의 이름을 당신은 압니다, 밤하늘보다 검고, 폭풍보다 거세고, 별빛보다도 더 먼 데서 오는, 지독한 증오.

 

순간, 다시 번개가 번쩍입니다. 울리는 비명 같은, 울음 같은, 천둥 소리가 뒤늦게 따라옵니다. 귀가 아파요. 어쩌면 마음이 아파요. 단 한 번의 빛줄기가 내리꽂힌 끝에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사그라든 평화로운 밤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집니다.

다시금 흩뿌려진 소금 같은 별들이 반짝이면,

 

당신은 당신에게의 전언 같은 한 문장을 읽습니다. 그믐의 검은 하늘에 별빛으로 수놓아진 글자가 기이하게 읽힐 수밖에 없는 질문입니다. 

 

무슨 생각해?

 

읽어내자마자 검게 타오른 몇몇 별은 소멸한 듯 하늘에서 사라지고, 또 다른 문장이 떠오릅니다.

 

기억하고 싶어?

 

 

 판정

 

【다음 장면으로 나아간다】 : 난이도 5

 

판정 성공 시▶ 단편적이고 불친절한 물음조에도 무엇을 가리키는지 당신,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당신에게 주어진 것은 애정 어린 것들 뿐이고 정작 당신의 텅 빈 기억을 채워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질문에는 응당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 법입니다. 바인더, 대답해줄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저 하늘에게.

판정 실패 시▶ 단편적이고 불친절한 물음조에 무엇을 가리키는지 당신,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텅 빈 기억을 채워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질문에는 응당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 법입니다. 바인더, 대답해줄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저 하늘에게. 

프래그먼트 박스에서 프래그먼트를 하나 골라 【망각】에 체크합니다. 바인더는 【변이: 기억의 부재】로 변이시킵니다. RP를 진행합니다. 

 

 

 

 결말

 

밤의 언덕 위에서 눈을 깜빡이면, 풍경은 반전됩니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바인더가 수긍의 대답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를 취했을 때에, 다음 부분으로 진행합니다.

 시나리오 내에서 폭풍과 번개 등의 기상이변은 시프터의 바인더를 사랑하는 이 세계에 대한 반발, 바인더에 대한 증오심 혹은 그에 가까운 껄끄러운 마음이 빚어낸 것으로, 유일하게 이 세계에서 바인더를 위한 것이 아닌 현상입니다. 이후 부분에서도 시프터는 나타날 때마다 거센 바람과 폭풍을(…) 몰고 출현합니다. 바인더를 삼킨 '이계'는 바인더에게 던지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시프터에 대해서이기도 하고, 바인더가 원래 살고 있던 세상과 바인더의 생애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는 바인더를 사랑하므로, 상냥히도 그에게 원하는 것을 전부 보여줄 의향이 있습니다. 

 

 

 

 

 

 

 

 

CHAPTER 2: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난 그곳에 있죠

이계심도 6


 

 

 상황 설명

 

소금 같은 별빛이 흩뿌려지던 검은 하늘과 억새를 흔들던 밤바람은 간 데 없고 이곳은 그저 황량합니다. 청명하나 창백한 하늘, 척박한 황무지. 이곳에서 눈에 띄는 것이라곤 오로지, 아까의 외길처럼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선로입니다. 당신이 선 그곳부터 선로는 쭉 뻗어있습니다. 기차라곤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인데도 말입니다.

 

선로를 살펴보면▷ 선로는 제법 낡았습니다. 적어도 십수 해 정도는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았을까, 짐작되는 정도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단 한 걸음 옮기지 않은 당신이 선 그곳에서부터 선로가 시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줄로 난 길처럼, 온전한 시작점처럼, 종점은 몰라도 출발점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바로 당신이라고요.

 

한참을 기다려도 기차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긴, 끊긴 선로에서 기차가 올 리가 없지요. 바인더는 걷기 시작합니다. 선로를 따라서. 창백한 하늘은 구름 없이 흐르고 허무한 땅 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아주 느린 열차처럼, 목적지 없는 여행자처럼. 어쩌면 잃어버린 아직 의미를 모르는 것들과 되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걷다보면, 바람이 붑니다. 아. 

간이역입니다. 역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초라함이 시야에 한 번에 들어옵니다. 낡은 가벽을 세우고 다 떨어져가는 표지판을 붙인, 겨우 지붕 아래 비 정도나 피할 수 있을 규모의. 

바인더는 역의 벽과 표지판을 살필 수 있습니다.

 

역의 벽을 살펴볼 경우▷ 판자를 기워 세운 낡은 가벽입니다. 오래되었습니다. 가벽의 안쪽에는 더덕더덕 전단지가 틈도 없이 붙어있어 다소 지저분한 모습입니다.


전단지를 살펴볼 경우▷ 어렵지 않게 문장을 읽어냅니다. 그 과정은 당신에게 정말로 손쉬웠습니다. 그야, 전단지에는 같은 문장이 반복해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짧은 한 문장만이요. 사랑해. 
사랑해. 
순간 수많은 기괴한 목소리가 당신의 발목에 우악스레 들러붙는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아이인지 인간이긴 한 건지 설마 천사이기라도 한지 혹은 악마라도 되는지 모를 목소리들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사랑해.」


표지판을 살필 경우▷ 초라하게 붙은 것은 표지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곧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모습으로 바인더를 맞습니다. 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화살표가 여러 개 붙은 형태의 표지판은 벽에 부착된 채로 아마도 선로가 뻗은 끝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표지판의 글을 읽을 경우▷ 한 방향만 가리키고 있는 표지이건만, 아래로 늘어선 글자들은 전부 다른 내용입니다. 위에서부터 읽으면, 終末, End, das Ende, окончание, 끝, sự kết thúc, extrémum, кіне́ць…… 덜거덕, 당신이 알아볼 수 있는 단어로 적힌 표지판이 무게를, 혹은 시간을 못 이기고 매달려 있던 데서 떨어집니다. 

 

다시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울음 같은 바람이 낡은 벽과 표지판을 뒤흔듭니다. 소란한 바람이 마음까지 뒤흔들 쯤이 되어서야 기억 하나가 스밉니다. 나를 온전히 애정하지 못하는 그 얼굴이 떠올랐다는 뜻입니다. (*시프터의 외모와 바인더 앞에서 보이는 태도를 간략히 묘사합니다.) 검고 축축하게 살아있는 고통에 찬 눈, …… 왜 당신, 이런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습니까. 

 

멀리 하늘을 보면 검은 구름이 몰려듭니다. 당신의 뇌리에 마침내 그 얼굴이, 미워 어쩔 줄 모르는 증오스러운 낯이 선연하게 자리잡았을 때에,

… 쿠르릉,

불길한 소리는 하늘 위에서 들렸습니다. 구름의 색깔이 지독하게 짙습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하늘에서 다시금,

 

기억났어? 

 

기억났어? 기억, 났어? 기억, 났나요? 바인더. 질문에는 응당 대답이 따라와야 합니다. 대답해보세요, 기억합니까. 떠올려보세요. 바인더. 그의 눈동자는 어떤 색깔을 띠고 있는지. 당신을 향한 시선이 어떻게 일그러졌는지. 뒤틀린 입술이 어떤 말을 씹어뱉으며 당신을 불렀었는지. 지금처럼 혼란하게 부는 바람에 머리칼은 어떤 빛을 받으며 흔들렸는지.

 

 *바인더가 시프터의 외양이나 태도, 여하간 그에 관한 모든 기억에 대해 떠올리는 지문을 한 줄 한 문장이라도 출력했을 때에, 곧바로 폭풍치는 다음 부분으로 진행합니다! 바인더의 안에서 시프터의 기억이 확립되면 확립될수록 폭풍은 심해집니다.

 

바람이 더 심해집니다. 사방은 비구름이 무겁게 부딪히는 불안한 소리로 가득하고, 마디마디 살갗 아래로 파고드는 듯한 서늘한 온도가 왜 통증처럼 느껴지는지. 처음 겪어본 고통처럼 화뜩하니 여겨지는 거센 바람이 간이역을 마구 흔듭니다.

이 폭풍이 혹독해질수록 마음이 왜 이다지도 혼란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던 백지 같은 마음 위로 어지러이 수 해의 기억이 덧칠됩니다. 생에 살아오며 겪었던 불운, 사랑과는 거리가 먼 부닥쳐오는 감정들, (*바인더의 백스토리를 묘사해주세요.) 

……그리고, 시프터. 

쾅! 지붕이 기어이 무너집니다. 당신은 무너지는 지붕을 피해 벽으로 주저앉고, 사랑한다는 말이 빼곡히 적혔던 벽이 드드득, 끔찍한 소리를 내며 기울어지고,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당신에게 직격합니다. 아, 그래요. 드디어 기억났습니다.

물속에 처박힌 머리가 끄집어내어지듯, 숨을 막았던 바람이 거칠게 눈을 뜨게 하면,

 

"이제야 만났어……."

 

폭풍 한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낸 그가 울듯이 웃습니다. 기억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띠고 있는 눈동자의 색깔도, 나를 향한 시선이 일그러진 시선도, "바인더." 뒤틀린 채 호명하는 목소리도. 그가 나를 부릅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잊고 있었을까요. 당신을. 너를.

세상을 뒤엎을 것처럼 부는 새카만 바람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시프터는 너무나, 너무나 애정 어리고 증오스러운 눈길로 한참 마주하다, …… 무너지듯 무릎을 꿇으며 손을 뻗습니다.

 

손을 잡으면▷ 접촉할 시 바인더의 주변에서 다시 들려옵니다. 사랑도 증오도 어느 쪽도 무릎 꿇은 당신이 건넬 말이 아님을 나는 압니다. 애초에 내게 무릎을 꿇고서 할 말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붑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집니다.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습니다.

 

 

 판정

 

【폭풍을 멎게 하고 다음 장면으로 나아간다】 : 난이도 6

 

둘 다 성공 시▶ 질문에는 응당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 법입니다. 기억 났어요? 기억 났습니까? 바인더, 대답해줄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저 하늘에게.

둘 중 하나만 성공 시▶ 기억 났어요? 기억 났습니까? 질문에는 응당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 법입니다. 바인더, 대답해줄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저 하늘에게. 

프래그먼트 박스에서 프래그먼트를 하나 골라 【망각】에 체크합니다. 시프터 【변이: 이계에의 동화, 다음 판정에서 -1의 수정치】, 바인더는 【변이: 기억의 부재】로 변이시킵니다. RP를 진행합니다.

둘 다 실패 시▶ 알아들을 수도 없는 감정이 마구 뱉어질 때에, 폭풍이 거세게 둘을 갈라놓습니다. 당신의 텅 빈 기억을 채워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질문에는 응당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 법입니다. 바인더, 대답해줄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저 하늘에게. 

프래그먼트 박스에서 프래그먼트를 하나 골라 【망각】에 체크합니다. 시프터 【변이: 이계에의 동화, 다음 판정에서 -1의 수정치】, 바인더는 【변이: 기억의 부재】로 변이시킵니다. RP를 진행합니다.  

 

 

 결말

 

"한 마디만 해줘. 한 마디만……" 처절한 바람이 시프터의 몸을 찢듯 휘청거리게 만들고, 검은 바람이 다시금 허공에 녹아들듯 자취를 감추기 직전에. 몰아치는 빗속에서 그가 말했습니다.

바인더가 이윽고 참았던 숨을 토하면, 비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시프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센 바람에 무너진 역과 온통 젖은 얼굴이며 몸만이, 영문도 모를 말로 잔뜩 할퀴어진 마음만이 그 폭풍 속에 있었음을 증거할 뿐입니다.

구름이 드리워졌던 하늘 사이사이에서 번쩍, 빛이 발합니다. 번개입니다. 울리는 비명 같은, 울음 같은, 천둥 소리가 뒤늦게 따라옵니다. 귀가 아파요. 어쩌면 마음이 아파요. 단 한 번의 빛줄기가 내리꽂힌 끝에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사그라든 평화로운 파란 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지고.

볕이 황량한 검은 땅 위로 일렁이면, 

당신은 당신에게의 전언 같은 한 단어를 읽습니다. 검은 대지에 햇볕으로 일렁이는 글자가 기이하게 읽힐 수밖에 없는, 이름 하나입니다.

 

시프터.

 

읽어내자마자 그늘로 가려진 빛 글자가 일그러지며 땅 위로 다시 그려집니다. 

 

그를 미워해?

 

질문에는 응당 답이 따라와야 하는 법이나, 바인더.

당신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습니까?

 

 

 *시프터는 이 시점에서 이미 고문과 같은 이계, 이 세계의 안에서 제정신을 아주 간신히 붙잡고 있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입니다. 세계의 중심을 구축하고 있는 바인더를 찾아다녔으나, '불순물'로 여겨지는 데다 바인더를 온전하게 사랑할 수도 없는 반발심, 증오심을 가진 시프터로서는 바인더를 사랑하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바인더에게 가 닿기 위해서 숱한 고난과 고통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 내에서 바인더를 만난 시프터의 태도는 한결같을 수도, 일관이라곤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강제하고 있는 세계관 내에서 바인더를 정말 죽도록 미워할 수도 있고, 세계에 무릎 꿇어 사랑한다고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단 한 가지 시프터가 원하는 것은 '이 고통을 끝내는 것'입니다. 바인더를 향한 강제된 자신의 사랑을 끝내든, 그만 미움을 버리고 완전히 바인더를 사랑함으로써 마음의 반발을 끝내든, 이 세계 안에서 먹혀가는 자신의 생을 끝내든. 세계 안의 바이러스처럼 존재하는 시프터는 바인더의 앞에서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CHAPTER 3: 무언가가 너의 이름을 속삭여 부르면

이계심도 7


 

 

 상황 설명

 

바인더는 계속 걷습니다. 끝. 표지판에 따르면, 종점인 종말을 향해서. 선로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당신이 향할 곳이 그곳밖에 없습니다. 바람은 언제 불었냐는 듯이 한 점 움직임도 없고, 정적 속에 당신의 발자국만 하릴없이 남습니다.

당신이 좋아했던 날씨가 있습니다.
바인더. 사랑해.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거닐었던 익숙한 거리가 있습니다.
사랑해. 바인더.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인사를 나눴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사랑해. 바인더.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고백이,

그리고 당신이 겪었던 사소하거나 거창한 불행이 있습니다.
사랑해!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처절한 고백이,

그리고 시프터와 마주했던 당신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사랑해! 바인더, 사랑해! 침범하는 주인 잃은 고백이 귓가에서 역류합니다.

 

숨통이 턱 막힙니다. 걸음이 기어이 무엇에 이끌린 듯 멈춰버립니다. 왜 잊고 있었는지 설명조차 불가한 것들이 불가해한 고해와 함께 발치에 자꾸만 걸립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살아 숨쉬는 이 세계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가 모든 불행과 비극을 잊고도 멀쩡했던 이 세계는? 나는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단 말입니까?

바다를 상상하면 금세 파도가 발목까지 차들어옵니다. 여름을 떠올리면 쨍한 볕이 직선으로 목덜미를 긋습니다. 눈이 내리고, 꽃이 피고, 아침이 오고, 밤이 내리고,

마음에, 들, 어? 천사인지 악마인지 인간인지 구분하지 못할 목소리가 속닥입니다. 

걸음이 완전히 멈춥니다. 그래요. 모든 것이 당신의 뜻대로입니다.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처럼요.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당신에게 몰락처럼 다가오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가 무릎 꿇었던 아까의 순간을 떠올리면 숨이 막힙니다.

 

불온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알겠습니까, 그 순간을 떠올린다는 것은 폭풍이 다가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근원도 모르는 세계에서 그가 나를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나에게로.

쿠르릉, 비구름이 무겁게 부딪힙니다. 눈이 내리고 꽃이 피고 파도가 치고 불꽃이 일렁입니다. 세차게 부는 폭풍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면서 환영처럼 자꾸 흔들리는 광경이 한 치 앞 보이기 힘든 목전에 점멸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익숙했던 거리이기도 하고, 아주 안온해보이는 방 안이기도 했고, 너르게 펼쳐진 해변이기도 하고, 발밑에 구름이 뭉그러지는 창공이기도 했습니다. 공통점은 단 하나입니다. 차마 눈을 뜰 수 없는 폭풍이 당신에게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그 안에 시프터가 서 있다는 것.

 

 

 판정

 

【서로와 조우한다】 : 난이도 7

 

둘 다 성공 시▶ 그가 말합니다. "바인더." 호명은 통각처럼 다가오고, 폭풍우가 숨 막히게, 무섭도록 세상을 흩뜨립니다. 모순처럼 당신과 내가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세상을 찢고 흔들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이 폭풍 속에서.

둘 중 하나만 성공 시▶ 그가 말합니다. "바인더." 호명은 통각처럼 다가오고, 폭풍우가 숨 막히게, 무섭도록 세상을 흩뜨립니다. 모순처럼 당신과 내가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세상을 찢고 흔들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이 폭풍 속에서.

프래그먼트 박스에서 프래그먼트를 하나 골라 【망각】에 체크합니다. 시프터는 【변이: 이계에의 동화, 투명해지는 손발끝, 다음 판정에서 -1의 수정치】, 바인더는 【변이: 기억의 부재】로 변이시킵니다. RP를 진행합니다.

둘 다 실패 시▶ 그가 말합니다. "바인더." 호명은 통각처럼 다가오고, 폭풍우가 숨 막히게, 무섭도록 세상을 흩뜨립니다. 모순처럼 당신과 내가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세상을 찢고 흔들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이 폭풍 속에서.

프래그먼트 박스에서 프래그먼트를 하나 골라 【망각】에 체크합니다. 시프터는 【변이: 이계에의 동화, 투명해지는 손발끝, 다음 판정에서 -1의 수정치】, 바인더는 【변이: 기억의 부재】로 변이시킵니다. RP를 진행합니다.

 

 

 

 

 결말

 

 

서로를 파괴할 때에 황홀히 눈부신 것 같은 우리 사이에 긋고 부수고 뱉고 던져지는 말마디. 폭풍이 거세게 둘을 갈라놓습니다. "한 마디만 해줘! 한 마디만! ……" 무자비한 바람이 시프터를 휘청거리듯이 찢어버리는 듯하고, 검은 빗줄기가 또 다시 허공에 녹아들듯 자취를 감추기 직전. 몰아치는 빗속에서 그가 말했습니다. 사라집니다.

당신의 귓가에 남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제발. 이제는 그만하게 해줘.

 

 *진행부의 RP는 자유롭습니다. 이 세계의 기이함을 감지한 바인더는 시프터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으나, 시프터가 그에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상태일지는 GM님께 맡깁니다. 적대심이나 혼란스러운 감정이 드러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되도록 다음 부분을 위하여 진상은 아껴두시는 게 좋으나, 시프터와 탁의 성격에 따라 언제나 자유롭습니다. 다음은 RP 예시입니다.

여기가 어디인가.
- 너를 위한 곳인데 네가 모르면 되겠나.

나는 왜 여기 있는가.
- 나는 모른다.

너는 왜 여기 있는가.
- 너 때문에.

아까는 왜 그랬나. 아까의 사랑한다는/미워한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맥락에서 나온 건가.
- 너처럼 뻔뻔하다면 차라리 좋겠다.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꼴을 당하며 네가 어떤 지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내게 그런 걸 물을 수 있다니, 대단하다. 말 그대로다.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미워한다.

하고자 하는 말이 뭔가.
- 이 모든 게, 전부 다. 무너져버렸으면 좋겠다.

 

 

 

 

 

 

 

CHAPTER 4: 이 모든 게 다 무너져버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이계심도 8


 

 

 상황 설명

 

당신이 이윽고 참았던 숨을 토하면, 비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시프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이상 보이지 않는 환각과 온통 젖은 얼굴이며 몸만이, 깊게 통증 느끼는 마음만이 그 폭풍 속에 있었음을 증거할 뿐입니다.

구름이 드리워졌던 하늘 사이사이에서 번쩍, 빛이 발합니다. 번개입니다. 울리는 비명 같은, 울음 같은, 절규 같은 천둥 소리가 늦게 따라옵니다. 가슴이 아파요. 살갗이, 영혼이 닿는 모든 곳이 아파요. 단 한 번의 빛줄기가 내리꽂힌 끝에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사그라든 평화로운 함박눈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볕이 눈 덮인 하얀 지면 위로 내리쬐어지면, 

당신은 당신에게의 전언 같은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름 하나입니다.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이름이 근원지도 모르고 호흡처럼 내어집니다.

 

시프터.

시프터를 사랑해?

 

당신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습니까?

 *바인더의 대답을 들을 시간입니다. 어떤 지문으로든 대답을 하거나, 대답 비슷한 생각을 했거나, 혹은 망설이더라도. 다음 부분으로 진행합니다.

 

당신의 대답/망설임에 대꾸라도 하듯, 뱀처럼 속살이는 음성이 귓가에 끝내 눌러붙습니다. 마치 온건하지 못한 거래를 제안하는 악마처럼,

 

그를 이해하는 게 네 욕망이라면,

 

다음 순간, 당신, 추락합니다.

 

 

 

 판정

 

【추락에서 살아남는다】 : 난이도 8

 

판정 성공 시▶ 풍덩!

아, 소리로 미루어보건대 여기는 물속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바뀌는 사위, 숨이 급작스레 막히고 새파란 물결에 흔들리는 손, 부글거리는 기포가 호흡을 대신하여 위로, 위로 올라가고 나는 발버둥칩니다. 그때에,

판정 실패 시▶ 풍덩!

아, 소리로 미루어보건대 여기는 물속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바뀌는 사위, 숨이 급작스레 막히고 새파란 물결에 흔들리는 손, 부글거리는 기포가 호흡을 대신하여 위로, 위로 올라가고 나는 대신 추락합니다. 한없이 침잠하다가 끝내 숨이 부족하여 정신을 놓으면,

프래그먼트 박스에서 프래그먼트를 하나 골라 【망각】에 체크합니다. 바인더는 【변이: ???】로 변이시킵니다. RP를 진행합니다. 

 

 

 

 결말

 

눈앞이 하얗게 번지며 어떤 영상을 투영합니다.

 

……

시야에 보이는 것은 당신입니다. 바인더. 바로 '나' 말이에요. 그곳은 익숙한 거리입니다. 원한다 해서 비가 내리거나 눈이 오거나 꽃이 피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럭저럭 좋아했던 날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루할 정도로 낯설지 않은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은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아주 보통의 세계입니다. 내가 원래 살아가던 세계. 모든 기억을 묶어둔 중력이 존재하는 곳.

공기가 변한 것은 다음입니다. 이 세계에서 봐왔던 폭풍의 색깔을 닮은 검고 투명한 틈이 사람들 사이를 스칩니다. 누군가가 알아채고 비명을 질렀을 때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아악―! 대기를 팽팽히 가른 비명이 나에게로 닿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걸렸을까요. 사랑해. '틈새'는 조금 웃은 것 같습니다. 끔찍하게도,

나를 삼킨 채로요.

찢어지고 으깨집니다. 산산조각나고 또 부서집니다. 그것의 속에서 내가, 웃고 있나요? 파도가 밀려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리는 것을 보는 것처럼, 몽롱하게 웃는 생애 가장 익숙한 낯이 순식간에 낯설어질 때에,

"바인더?" 이름을 부른 것은 '당신'입니다. 시프터가 끔찍한 형상을 보고서 반사적으로 손을 뻗습니다. 반쯤 삼켜진 나를 호명했다가, 아.

당신마저 삼켜집니다.

 

시점은 옮겨집니다. 시프터, 당신의 것으로. 당신은 뒤죽박죽으로 섞이는 검은 포말 속에서 부서지는 나를 봅니다. 당신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붉게, 붉게, 투명하게 부서지는 나를 보면서 당신, 절망했습니까? 환희했습니까? 당신의 가슴 속으로 무언가가 침투합니다. 차라리 죽여줬으면 하는 고통이 당신의 온몸을 조이고, 나보다는 한 발 늦게 으깨어지는 당신의 마음에 깃드는 목소리를 나는 이제야 듣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바인더, 사랑해. 

아! 죽고 싶을 만치 죽이고 싶을 만치 당신은 고통스럽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채로.

 

의식이 까무룩 멀어집니다. 

 

 *본 지문은 시프터가 어떤 이유로든 바인더를 구하려 시도했을 시의 진상을 보여주는 지문입니다. 둘의 관계에 맞게 설정한 진상에 따라 알맞게 지문을 개변해주세요. 진상-이야기의 배경 부분을 핸드아웃으로 출력하여 보여드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FINAL CHAPTER: 그러니 자비로우신 신이여, 내 도망칠 길을 열어주소서

이계심도 9

 


 

 

 상황 설명

 

을 뜨면,

나는 처음 섰던 밤의 언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믐입니다. 달 없이 낮은 언덕 위에 별빛만 하염없이 쏟아집니다. 내가 선 길은 오로지 외줄로만 나 있습니다.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터라 어디까지인지도 짐작되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뒤쪽은 깎아지른 절벽입니다. 바닥도 보이지 않는 암흑입니다.

그리고 불온한 바람.

이제 당위처럼 당신을 떠올리면 폭풍으로서 당신은 나타납니다. 산산이 부서지는 마음이 별빛같이 찬란합니다. 시프터. 모순처럼 나를 바라보던 당신은,

이내, 또 다시 그 순간처럼. 무릎을 꿇습니다.

 

"빌려고 왔어. 네게 마지막으로 빌어보려고."

"이 세계에 삼켜진 후부터 주저도 없이 네 이름은 날 침범하고,"

"나는 이제 스스로 너를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못하니까."

 

별빛이 낮은 언덕 위를 휘감아 도는, 이 사랑스러운 세계의 신은 당신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그를 이곳에 붙잡아두며 함께 추락할 수도 있을 겁니다. 미워하므로 나락에 묶어둘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당신을 미워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하도록 폭풍의 바깥으로 영영 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도 아니면 사랑하므로 기꺼이 안온한 진짜 세상으로 살려보낼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찢기고 흔들려도 당신은 폭풍 속에서,

 

 *자유로운 RP를 권장합니다. 이계심도 9이기 때문에 판정은 불가, 이계의 주인이 된 바인더는 확정적으로 로스트하며, 바인더가 원하지 않는 이상 시프터는 나갈 수 없습니다. GM은 플레이어 분께 직접 혹은 시프터를 통해 이 사실을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시프터는 바인더에게 제발 내보내달라 애걸할 수도 있고 너를 죽도록 미워하는 게 우선이라 비난하고 분개할 수도 있습니다. 바인더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시프터를 이 세계에서 추방하여 살려보내거나 붙잡아둬 함께 로스트하는 것, 양자입니다.

 

 

 

 결말

 

Ending 1: 시프터를 추방

―나를 위하여 비가 내리고 눈이 나리고 꽃이 피고 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마지않는 세계 속에서 당신은 나를 고문처럼 사랑하느라 얼마나 증오스러웠겠습니까. 깊은 유감일까요, 혹은 나조차 함부로 느끼는 고통일까요, 뒤섞인 감정에 마음은 혼탁하여 그저 어지럽습니다. 다만 울지 마, 울지 말라고. 내게 빌지도 울지도 아프지도 말아달라고. 당신이 겪는 어떤 지난한 시간에 나마저 마모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를 미치게 어지럽힌 폭풍이여. 이는 당신을 위한 작별입니다.

내가 원하기에 하늘이 찢어지고 바다가 갈라집니다. 꺾인 꽃이 흩날려 춤을 추며 상처가 전부 사라집니다. 바람을 막고 숨을 참고, 돌아서며,

나, 웃습니다.

이제 당신, 온전한 당신의 세상으로 돌아가요.

그럼에도 욕심을 낸다면 나를 끝내는 잊지 말아 달라고.

―나를 위하여 비가 내리고 눈이 나리고 꽃이 피고 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마지않는 세계 속에서 당신은 나를 고문처럼 사랑하느라 얼마나 증오스러웠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무너져버리게 해 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을 나도 알겠습니다. 당신이 죽도록 밉습니다. 끝내 내게 이토록, 스스로만 살고자 애원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며 증오만 씹어뱉은 당신이.

나를 미치게 어지럽힌 폭풍이여. 이는 나를 위한 작별입니다.

내가 원하기에 하늘이 찢어지고 바다가 갈라집니다. 꺾인 꽃이 흩날려 춤을 추며 상처가 전부 사라집니다. 바람을 막고 숨을 참고, 돌아서며,

나, 웃습니다.

이제 당신, 온전한 당신의 세상으로 돌아가요.

기도합니다. 돌아가 결코 나를 잊지 말기를. 가능하다면 나의 이름이 영영 당신의 가장 최악의 상처로 남기를.

 

Ending 2. 시프터를 속박

나를 위하여 비가 내리고 눈이 나리고 꽃이 피고 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마지않는 세계 속에서 그러나 내가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다만 당신 뿐이므로, 울지 마, 울지 말라고. 내게 빌지도 울지도 아프지도 말아달라고. 당신이 겪는 어떤 지난한 시간에 나마저 마모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독한 사람아, 나를 환희처럼 무너지게 만드는 사람아. 나는 당신과 헤어지질 못하겠습니다. 

나를 미치게 어지럽힌 폭풍이여. 나는 그러므로 끝내 폭풍 속에서 숨막혀 죽어가겠습니다.

당신을 단단히 붙듭니다. 나갈 수 없습니다. 당신, 보내지 못합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되고 휘청거리는 모순이 되어 내가 마침내는 주저앉도록 하는, 미워하는 만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악마 같은 그대여.

폭풍이여. 이제 나의 영혼을 가져가세요.

사랑해.

그러니 함께 몰락합시다, 우리. 

―나를 위하여 비가 내리고 눈이 나리고 꽃이 피고 지는 세계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마지않는 세계 속에서 나를 고문처럼 사랑하느라 얼마나 증오스러웠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무너져버리게 해 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을 나도 알겠습니다. 당신이 죽도록 밉습니다. 끝내 이 세계에서도 나를 사랑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며 증오만 씹어뱉은 당신이. 지독한 사람아, 나를 절망처럼 쓰러지게 만드는 사람아. 나는 당신과 헤어지질 못하겠습니다. 

나를 미치게 어지럽힌 폭풍이여. 나는 그러므로 끝내 폭풍 속에서 숨막혀 죽어가겠습니다.

당신을 단단히 붙듭니다. 나갈 수 없습니다. 당신, 보내지 못합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되고 휘청거리는 모순이 되어 내가 마침내는 주저앉도록 하는, 사랑함보다 증오할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그대여.

폭풍이여. 이제 당신의 영혼만 붙들고 눈 감습니다.

당신을 증오하니,

함께 몰락합시다, 우리. 

 

 

 

 

 

후일담

 

*바인더와 시프터 양쪽의 【망각】이 체크되지 않은 프래그먼트에 상관없이, 바인더는 로스트, 시프터는 바인더의 선택에 따라 생환합니다.

*프래그먼트 추가, 변이에 대한 저항: 룰북 p.119-121를 참고합니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또다른 시프터를 삼킨 이계이자 바인더가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야기는 언제나 자유입니다.

 

 

 

 

 

 

추천 BGM

심규선(Lucia) - 폭풍의 언덕 :: https://www.youtube.com/watch?v=kZ6Qp5tn2q4&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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